전월선(독립운동가)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15:13
국립대전현충원의 전월선의 묘.

전월선(全月善) 혹은 전월순(全月順)

생애

1923년 2월 6일 경북 상주에서 2녀로 태어났다.[1] 주로 북쪽인 북경 등에서 활동하던 중 16세였던 1939년 9월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린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을 했다.[2][3]

1942년 임시정부 국무회의의 결정에 따라 광복군에 편입됐다.[2][4] 그 해 4월 20일부터 광복 직전까지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4] 1942년 백범 김구가 19살 전월선과 30살 김근수의 결혼을 주선했다.[5] 1944년 아들 김원웅을 낳았다.[5]

전월선은 독립운동에 대해 "여성의 몸으로 독립군이 되는 것은 쉬운 삶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이것은 나 한사람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한사람의 운동가가 나오기에는 수많은 주변사람들의 고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5]

1945년 해방 후 남편과 함께 부산에 도착한 후 서울 마포구에 자리잡고 생계를 위해 갖가지 행상을 하며 살았고,[1] 아들은 어머니가 가난한 집에서 고생만 하셨다, 자신이 큰 시험을 앞둘 적엔 어머니가 절에 가 백일기도를 드렸다 등으로 회상했다.[6][7] 1976년 10.26 사건 이후 용인군 구성면 보정리 87번지로 이사하여 국가에서 지급하는 원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1992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부터는 독신생활을 하였다.[2][1]

2009년 4월 중환자실에 입원,[8] 5월 25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2]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에 안장됐다.[4] 안장식은 아들은 김원웅을 비롯한 가족과 이덕남 등 조문객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조사, 헌화 및 분향, 하관 순으로 진행됐다. [9]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2]
  • 1993년 국가유공자증(증 제13-41호)

기념

기타

출처

  1. 1.0 1.1 1.2 “전월순”. 《용인문화원》. <참고:독립운동사 6권, 독립유공자공훈록>, 이인영 
  2. 2.0 2.1 2.2 2.3 2.4 “부고/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 별세”. 《한국일보》. 2009년 5월 26일. 
  3. 이민봉 기자 (2019년 5월 7일). “김원웅 전 의원, “광복회장 당선 되면…‘친일찬양 금지법’만들겠다”밝혀”. 《경인매일》. 
  4. 4.0 4.1 4.2 4.3 이용환 기자 (2018년 7월 31일). “국립대전현충원, 8월의 현충인물로 여성 광복군 전월선 애국지사 선정”. 《뉴스티앤티》. 
  5. 5.0 5.1 5.2 5.3 박주연 기자 (2011년 8월 10일). “[한국의 정치명가⑤]독립운동가 김근수-전월선 부부”. 《뉴시스》. 
  6. 원희복 선임기자 (2019년 6월 3일). “[원희복의 인물탐구]새 광복회장 김원웅 “우리 친일청산 없이 일본 비난 못 해””. 《주간경향》. 
  7. 김원웅/ 국회의원 (2006년 7월 15일). “김원웅/“無言의 가르침 주신 나의 하늘””. 《불교신문》. 
  8.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 타계”. 《민족문제연구소》. 2009년 5월 25일. 2019년 12월 23일에 확인함. 
  9. 박광원 기자 (2009년 5월 28일). “여성독립군 故전월선여사 국립현충원 안장.”. 《파이낸셜신문》. 
  10. 오영운 기자 (2019년 9월 18일). “9월의 독립운동가 김봉식·전월순 선생 선정”. 《모던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