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20:19

전체주의(영어: Totalitarianism, 全體主義)는 공동체 또는 이념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 또는 제도를 의미한다.

용어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지오바니 아멘돌라(Giovanni Amendola)가 192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을 묘사하기 위해 최초로 사용하였다. 전체주의를 표현하는 단적인 문장으로는 파쇼 정치인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연설에서 말하였던, "모두는 국가 안에 있으며, 국가를 떠나서는 아무도 있을 수 없고,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1]

개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초기 연합군 진영에 속했던 국가는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대대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이 개념을 공산주의와 엮어, 반공주의에 유리하게 연결하였다. 이후 전체주의는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나타난 파시즘과, 소련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권 형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전체주의 개념은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 그 정의가 분분하다.

루돌프 힐퍼딩의 정의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이론가이자 수정주의자인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은 사망하기 2년 전(1939년)부터 전체주의 현상을 연구하였다. 그는 국가자본주의와 전체주의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견해를 비판한 동시에 국가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전체주의 정부는 민주주의 경로에서 이탈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독재'가 성립된 정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발전 경로를 거치지 않고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선전을 통해 통제되는 경제가 바로 전체주의 경제체의 근본이며, 이러한 전체주의 경제체는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에 의해 세워졌다고 지적하였다.[2]

이 이론에 기반하여 힐퍼딩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야말로 최초의 전체주의 정부라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학파가 소련 정부를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정부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과 연결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정의

오스트리아 출신의 빈 학파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에서 전체주의의 일반적인 성격을 규정하였다. 그는 『노예의 길』에서 사회주의하 집산주의가 전체주의의 본질이라고 봤으며, 계획과 통제를 통하여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전체주의를 발생하게 한 근본 원인이라고 하였다. 이 저서에 따르면, 전체주의하 인간은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노예(Slave)라고 할 수는 없으나, 완벽에 가까운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농노(Serfdom)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봤다. 또한, 『치명적 자만』에서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인정하였고, 인간이 순수한 진리에 접근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자만과 이러한 것에 의존한 계획이 바로 사회주의 및 전체주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의는 영국의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Karl Popper)의 정의와도 상당히 겹치는 것인데, 칼 포퍼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계획과 이상을 근원논리와 동일시하는 시도와 이것을 현상계와 보편계의 양분을 통해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전체주의라고 분석하였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근본적인 테마를 제공한 철학자는 고대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Platon)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사회주의 실험은 사실상 플라톤주의적 철인정치의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주로 전체주의를 설명할 때 위와 같은 정의에 기초한다.

이 정의에 기초한다면,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보다 더욱 전체주의 성격을 짙게 가진 정체는 몽테뉴파 독재 치하의 프랑스와 소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정의

독일 출신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가 갖는 세 가지 특징을 규정하였고, 이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고 있던 정체가 바로 볼셰비키 정부,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이라고 하였다. 세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3]

  1. 대중의 열의를 쉬운 개념으로 묶어서 간단하게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도 표어화하여 대중을 동원한다.
  2. 스스로의 집단이 유일하며, 특수한 역사적 사명감을 지녔으며, 대중이 '커다란 사건'에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4][5]
  3.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비밀경찰을 운영한다.

이 상태에서 대중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 주체가 아닌, 거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지는 도구가 되며, 스스로가 이러한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이 전체주의가 갖는 세 가지 특징이 근대 이후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으며, 전근대에도 있었던 대중의 열의 및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칼 요아힘 프리드리히의 정의

독일계 미국인 교수인 칼 요아힘 프리드리히(Carl Joachim Friedrich, 1901 - 1984)는 전체주의 정부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6]

  1. 유일 사상이 존재한다.
  2. 유일 합법 정당이 존재한다.
  3. 비밀경찰에 의한 테러 정치가 이루어진다.
  4. 정비된 무기에 관한 독점이 이루어진다.
  5. 문화 및 미디어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6. 국가 계획에 의한 통제 경제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개념에 기반하여 전체주의를 이해하는 양상은 흔히 일컬어지는 자유 진영에서 나타났다.

프랑수아 퓌레의 정의

프랑스의 수정주의 역사학자인 프랑수아 퓌레(Francois Furet)는 전체주의를 정치 제도의 일면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역사 현장에서 발현되는 특정한 사상과 연결을 지었다. "전체주의는 폭력과 계획을 통해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상가들의 사고로부터 시작된다."는 그의 말이 그가 전체주의를 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압축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유주의 혁명'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비판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몽테뉴파 정부가 최초의 전체주의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은 볼셰비키 정부(소련)가 두 번째 전체주의 정부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역시 파시즘도 전체주의의 일종이라고 보았는데, 감정에 기반하여 정교한 계획이 없었던 파시즘과 달리, 정교한 계획에 기반한 볼셰비키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전체주의 사상의 대표라고 하였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파시즘을 전체주의 쌍둥이(프랑스어: jumeaux totalitaires)라고 칭하였다.[7]

여성과 전체주의

전체주의 정부는 비밀경찰에 의한 테러와 대중 선전을 통하여 정권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이 갖고 있는 지배적 사고를 최대한 정권에 유리하게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와 같은 기반이 깔려져 있는 정서를 이용하고 동시에 확대, 고착화시킨다. 스페인 프랑코 정부의 강제 임신 정책과, 나치 독일의 여성 정책 및 스탈린의 낙태 금지, 모성영웅 상훈 제도 신설 등은 모두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마오쩌둥 치하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대대적인 문화 파괴로 인해 기존 중국이 갖고 있었던 가부장적 사고가 크게 사라지기도 하였다. 또한, 엔베르 호자 치하의 알바니아는 기독교와 이슬람 제거 운동을 통하여 여권이 신장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파시즘이 반여성적이라는 것은 쉽게 인정되는 사실이나, 범위를 더 넓힌 전체주의가 여성해방에 대해 갖는 성격을 규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각주

  1. Richard Pipes (1995), Russia Under the Bolshevik Regime, New York: Vintage Books, Random House Inc., p. 243,
  2. State Capitalism or Totalitarian State Economy(Rudolf Hilferding)
  3. Dana Richard Villa (2000), The Cambridge Companion to Hannah Arendt.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2–3.
  4.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노동계급은 이 계급 투쟁의 최일선에 있다."(마르크스-레닌주의)
  5. "게르만족은 우수한 인종이며, 게르만 인종에게는 유럽의 불순한 인종을 제거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나치즘)
  6. Friedrich, Carl and Brzezinski, Zbigniew Totalitarian Dictatorship and Autocracy Harvard University Press, 1956
  7. Federico Finchelstein (2017). 《From Fascism to Populism in History》. Univ of California Press.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