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주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통솔력이 뛰어나고 부하들을 지극히 아끼는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
군 경력
- 1950년: 소위 임관
- 1961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계장(중령)
- 1967년: 제1공수여단장(대령)
- 1968년: 준장 진급
- 1971년-1974년: 5사단장
- 1974년: 소장 진급, 특수전사령관 보임
12. 12 군사반란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전두환 등 반란군 세력에게 대항한 군인들 중 한 명이다.
반란군 세력의 주축인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정호용은 사령관 시절 정병주 장군의 부하들이었다.
3공수여단장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은 여단장 최세창의 지시를 받아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군인들을 데려왔다. 정병주 사령관이 끝내 연행되는 과정에서 저항하던 김오랑 비서실장이 총탄에 숨졌고, 정병주 사령관은 왼팔에 총탄으로 인한 부상을 입었다.
이후
강제 예편된 정병주 장군은 은둔생활을 해왔다. 구파발과 서오릉 일대를 거닐며 울분을 삭였다고 한다.[3]
“하루 세끼 밥 먹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땅이 있으니 걷고 그리고는 잠자고… 제가 걷기를 무척 좋아해요. 울화가 치밀 때는 술병을 들고 구파발 서오릉 주변을 온종일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 북쪽의 검문소 앞을 지날 때는 ‘노태우씨가 저곳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고….”(1987년 언론 인터뷰)[4]
매년 현충일과 12월 12일에는 김오랑 소령의 묘를 찾아 슬퍼했다고 한다.[5]
1983년 가톨릭에 입교하였다.
정병주 장군은 군인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야당으로부터 입당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1988년 10월 행방불명되었다. 1989년 3월 4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송추산에서 목을 매어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장례를 치른 뒤 정병주 장군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