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최근 편집: 2023년 7월 19일 (수) 20:23

책 소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정신질환 당사자이자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을 만나온 저자가 쓴, 정신질환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보고다. 저자 리단은 그 자신이 매일 스무 알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양극성장애 환자인 동시에, 자조모임을 조직하며 다른 환자들을 만나오고 수년간 정신질환에 관해 쓰고 그려온 작가다. 저자는 스스로 경험한 바와 다른 이들을 통해 배운 바를 토대로, 우울증에서 경계선 인격장애조현병까지, 처음 정신과를 찾는 방법에서부터 지지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법까지 '정신질환이라는 세계'에 대한 통합적인 세밀화를 그려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신병'이라는, 때로는 정신질환에 대한 멸칭으로도 쓰이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까닭을 "‘마음의 병’ 같은 말로 돌려 말하는 대신, 말 그대로 정신에 ‘병’이 생긴 상태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정신질환에 덧씌워진 흥미 위주의 속설이나 오해를 걷어내고 '질병'으로서 정신질환이 갖는 현실적인 면모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저자가 살펴보는 이 현실적인 면모들은 우울증 환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증 상태에서 겪는 경험의 실체는 단순히 기분이 들뜨는 상태와 무엇이 다른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인간관계가 처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폐쇄병동에 입원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인지 등을 아우른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온' 안내자라고 할 수 있을 이 책은, 정신과에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초발 환자부터 평생질환으로 관리할 각오를 하고 있는 환자, 그리고 주변의 정신질환자를 이해하고 싶은 이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단계와 입장에 서 있는 독자들 모두를 도울 수 있는 책이다.[1]

목차

프롤로그

이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1부 어떤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병의 세계

1장 네가 다 잃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장 처음 정신병이라는 세계에 발 딛는 당신에게

3장 병자는 돕는 것: 병식, 병체성, 그리고 자조모임

4장 고양이처럼: 우울증 환자가 삶을 운영하려면

5장 정직한 자들이 가는 지옥, 조증

6장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슬픔

7장 조현병: 현을 조율하는 사람들


2부 병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8장 병이 낫지 않는 사람들

9장 약물의 이해: 기초

10장 정신과 의사와 대화하는 법: 치료 계획 수립

11장 우울증 회복을 위한 활동 지침

12장 양극성장애를 운영하기

13장 취미: 시간의 모방자

14장 정신병과 가난

15장 직장과 학교에 적응하기

16장 약물의 이해: 심화

17장 폐쇄견문록

18장 기억하는 자, 기록하는 자

19장 자해하는 사람들

20장 자살을 하려는 이들을 위한 탐구서

21장 섬 연애: 떠나지 못하는 섬, 끝나지 않는 연애

22장 부모 그리고 의사: 모든 걸 모르고 모든 걸 아는

23장 정신질환자를 지지하는 것

에필로그

책 속으로

이 책에는 약 스무 챕터 남짓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초발한 초기 정신질환자부터 평생관리 질환으로 정신병을 안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글들을 함께 실었다. 글을 읽는 이들이 염두에 둘 것은, 이 글을 작성한 저자인 나 또한 하루에 스무 알씩의 처방 약물을 복용하는 정신병자이며, 내가 중점을 두는 것은 ‘병의 관리’이고,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예를 들어 폐쇄병동을 다룬 챕터에서는 병동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회에 복귀하는 과정도 함께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p.8)

이 책은 많은 정신질환자들의 생태를 조사하고 분석한 바탕 위에 쓰인 책이다. 책에서 묘사되는 여러 삶과 이야기에 대해 당신은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당신과 정반대라고 느낄 수 있다. 혹은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모든 병자의 삶은 고유하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 외에 다른 수많은 병자들이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앞날을 그리는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개인적인 답을 구해보자. (p.8~9)

마지막으로, 정신병이 없는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것이 단순히 정신병자들의 난동기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조정하려고 애썼는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그도 아니면 절망했거나 고통받았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독해가 현실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p.9)

나는 정신질환이 가진 질병(disease)으로서의 실제적인 위험성과 그 현실적인 파괴력을 강조하고자 ‘정신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적절한 때 발견되고 치료되지 못한 정신병이 어떻게 중증으로 불어나 한 사람의 일생을 차근차근 장악하는지, 어떻게 이미 가진 것도 빼앗고, 주위와 관계가 단절되게 하는지, 이전에는 흥미나 기쁨을 주었던 것들도 무감하게 느껴지게 하고, 이윽고 누구도 찾지 않고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가둬버리는지. (p.11)

초발 삽화 이후 삶은 달라졌지만, 삶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독해력이나 문해력, 언어와 외국어 능력, 대인관계 스킬 같은 것들이 파괴와 종말을 맞았지만 동시에 한편에선 또 왕성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정신병의 여러 병증들과 자해나 자살 같은 자기파괴적 사고들이 이른바 ‘상식선의’ 사고들과 함께 공존했다. 여전히 파괴적인 생각을 했지만 주어진 과제를 해낼 수 있었다. 이 기묘한 공생에 대해 나는 불쾌감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뛸 때와 비할 수 없이 멀리 갈 수 있지. 이런 생각은 병에게 형태를 부여해주는 행동이었으나 그때는 몰랐다. 나는 덜 외로워 기뻤을 뿐이다. (p.23~24)

나는 종종 배신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멀어지는 거리감을 느낀다. 사회에 반쪽짜리 소속감을 느낀다. 나는 물론 사회에 소속돼 직업 활동을 하고 임금을 받고 소비를 하고 생활환경을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소속되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독한 기분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병의 세계. 왜 그런 얘기를 꺼내냐고 반문하는 세계의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네가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을 잇기 위해 뛰어드는 이들을 생각한다. (p.29)

재미있는 건 조증자의 육신은 이러한 막무가내의 요구에 태업을 하거나 손을 놓고 따라가길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증이 온 사람이 갖은 일을 다 저지르고 밤을 새우고 또 새워도 몸은 끝없이 따라갈 수 있음을 어필한다. 이는 초반에 조증을 잡지 못하는 큰 이유가 된다. 조증의 육신은 잠을 자지 않아야 하고, 허기를 느끼지 않아야 하고, 심지어 음료를 섭취하고 배설을 하는 기본 중의 기본도 실행하지 않는 극히 불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정신이 제시하는 곳으로 온순히 따른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며칠을 생활하다 보면 계속해서 정신을 자극해 조증이 가속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이런 생활이 월 단위로 지속되다 보면 신체가 셧다운되는 일이 일어난다. (p.88)

마지막으로 이것은 내가 만나는 모든 BPD에게 드리는 팁인데, 강력한 인격장애를 흔들 수 있는 힘은 바로 유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병은 우리 곁에 언제나 머물고 있으며, 우리의 사고를 더욱 딱딱하게 만들어 자살과 자해와 그 밖에 타인에 위해를 주는 일들에게 논리를 부여하고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장애적 사고의 위병(衛兵)이 아니며, 병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웃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병을 모시고 사는 것만큼이나 병을 버려두고 놀러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병과 대항할 수 있는 최후의 힘이다. 나는 BPD가 남에게 피해만 끼치는 악마적 존재도, 그렇다고 유년의 고통스러운 환경이 창조한 가여운 피해자도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일단, 그저 병이다. 정해진 습속, 정해진 패턴, 호오가 확고한 병이다. 그리고 웃긴 것과 병적인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만약 병을 두고 웃을 일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종이 한 장을 넘기면 그만이다. (p.114~115)

우울증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남들처럼’ 움직이고 비장애인의 습속을 모방함으로써 견뎌내는 것이 아니다. 이 실험 과정은 자신만 알 것이고, 자기만이 이 재활의 고충을 알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몇 배로 노력하는 데에 어려움과 억울함을 느끼기 쉽다. 남들이 쉬는 걸 당신은 쉬어줘야 할 것이며, 남들이 먹는 걸 당신은 먹어줘야 할 것이고 남들이 잠드는 걸 당신은 잠들려고 노력을 해야 이룰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비교하면 박탈감만 심해질 뿐이다. 링에 올라 싸우는 둘은 당신과 당신의 병이지 남들이 아니다. 타인과 겨루는 것은 기나긴 재활 실험 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떤 시점에는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우수해질 수도 있다. 당신의 지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변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p.180)

정신질환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은 병이 파고드는 취약한 부분들 중 하나다.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려온 이들을 관찰하면 그들의 위축, 수동성 등을 포착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차악일 때 안도감을 느낀다. 최선을 목적으로 놓고 차선을 이루려 노력하며 성취감을 얻는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다. 그들이 절망하는 것은 현재 어떠한 곤경에 처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든 빌리든 무엇을 하든 삶이 나아질 일이 없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벼랑 같은 가난에 내몰린 이들이 이상사고나 사고장애를 겪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p.220)

약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으며 부작용이 작용보다 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약물을 믿는 이유는 그것이 향후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이나 2주 정도를 장악하기 때문은 아니다. 병에 의해 나는 단절되지만 약물은 계속된다는 건 재미있다. 전에 어느 날 처방전을 약국에 건네고 앉아 있는데 그들이 나누는 소근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리튬 네 알 왔어.”라는.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다음에는 생각할 때마다 웃겼다. 나의 정체성은 사람이라기보다 리튬 네 알에 가깝지 않은가. 종종 약물의 의인화나 약물의 자기화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우울 삽화일 때 기분조절제와 항우울제 두 종을 각기 최고용량으로 복용해야 최소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나에게 약물은 무엇인가. (p.269~270)

언어, 바로 모국어가 자신을 버린 느낌이야말로 정신질환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순간 중 하나다. 이미 죽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단순한 ‘죽고 싶다’쯤은 죽음의 레이스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입속으로 죽음을 곱씹으며 다니지만, 더는 자신이 표현하는 죽음에 무게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죽음을 자조하며 우스꽝스럽게 말하지만 경박해 보일 뿐이다. 당신의 ‘죽고 싶다’는 이미 널리 통용되는 ‘죽고 싶다’ 아래에서 흐드러진다. 본인이 느끼는 바로 그 특별하고 특유한, 자신을 절망케 하는 유일한 ‘죽고 싶다’를 아는 사람은 없다. (p.292~293)

우리는 자해를 통해 두 번 존재한다. 첫째, 육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둘째, 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음을 확인한다. 자해로 인한 심신의 변형(흉터, 정신적인 흥분 고조)이 생긴다면 육체와 정신 사이에 직통으로 오가는 철도를 만든 것과 같다. 자해는 육체를 장악할 수 있게 하며, 거덜 난 육체성은 자기 자신의 무능력과 무력감을 해소해주고, 우리는 자해 후 잔해를 돌보면서 다시 한번 육체를 장악한다. 우리는 자해를 통해 신체에 상처를 입히고 훼손하며, 행위로 인한 상해를 수선하고 회복하며 육체성을 획득한다. (p.304)

추천사

정신병의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지침서

  • 정신과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변 사람에게 알려야 할까?
  •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 책은 내가 이제까지 읽은 정신질환에 관한 책 중 가장 적확한 보고이자 실제적인 지침을 담고 있는 책이다. 같은 ‘건강 약자’로서 내가 극복하지 못한 호소, 분노, 자기 연민을 넘어선 글쓰기는 정신질환에 관한 글쓰기의 도약, 이정표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당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퀴어 - 정신병 - 섬 연애라는 3단 콤보는 그 파괴적인 면모에 비해 의외로 흔하게 존재한다.”라고 썼지만, 내 생각에는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병에 짓눌리지 않고 병을 탐구한 당사자의 문장은 정확하고 구체적이면서 사려 깊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것은 일단, 그저 병”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아야 한다. 아프면 치료받고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필요하면 입원하는 병. 그것을 제대로 인지해야만 편견과 혐오, 차별을 없앨 수 있다. ‘정신병자’에게도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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