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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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1993년 7월 23일 일본에서 이루어 진 중의원 총선거이다. 처음으로 자유민주당이 집권하지 못하게 된 선거이며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이루어 진 중대선거구 중의원 선거였다.


1 선거 정보

  • 해산일 : 1993년 6월 18일
  • 해산 명칭 : 거짓말쟁이 해산
  • 선거 명칭 : 정치 개혁 선거
  • 공시일 : 1993년 7월 4일
  • 투표일 : 1993년 7월 23일
  • 선출 의원 수 : 511석
  • 투표율 : 67.26%

2 선거 쟁점

  • 정치 개혁
  • 신당들을 중심으로 한 정권교체

3 선거까지의 상황

전년의 제16회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획득한 일본신당과 선거 직전에 자민당으로부터 탈당한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신생당이나 신당 사키가케가 약진해 "신당 붐"이 일어났다. 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 등 5개 당은 선거 전부터 연립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4 선거 결과

정당 지도자 획득 의석 의석 증감 득표율
선거 결과
일본자민당.png
자유민주당
미야자와기이이치.jpg
미야자와 기이이치
(히로시마 3구)
223석 감소1석 36.62%
일본사회당.jpg
일본사회당
야마하나 사다오.jpg
야마하나 사다오
(도쿄 11구)
70석 감소66석 15.43%
신생당.png
신생당
하다쓰토무.jpg
하타 쓰토무
(나가노 2구)
55석 증가19석 10.10%
공명당 로고.png
공명당
이시다고지로.png
이시다 고시로
(아이치 6구)
51석 증가6석 8.14%
일본신당.png
일본신당
호소카와모리히로.png
호소카와 모리히로
(구마모토 1구)
35석 증가35석 8.05%
일본민사당.png
일본민사당
오오우치케이고.jpg
오오우치 게이고
(도쿄 2구)
15석 증가1석 4.84%
일본공산당.png
일본공산당
후와테츠조.png
후와 테츠조
(도쿄 6구)
15석 감소1석 7.70%
신당사키가케.jpg
신당 사키가케
타케무라마사요시.png
타케무라 마사요시
(시가 전역구)
13석 증가3석 2.54%
사회민주연합.png
사회민주연합
에다사츠키.jpg
에다 사츠키
(오카아먀 1구)
4석 보합증감없음 0.78%
무소속 X 30석 증가1석 5.87%

5 선거 후

당의 분열로 인한 자민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지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치러진 총선거였기 때문에 신생당이나 신당 사키카케로 당적을 바꾼 전직의 구멍을 메울 후보자(이른바 자객)의 선출이 늦었던 자민당은 총선 전 의석을 유지하는 것에 그쳐 결국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한편 일본 사회당은 "신당 붐"에 묻혀 55년체제 이후 최소 의석 수로 감소되는 치욕을 겪었다. 일본공산당이 1석 감소한 것 외에, 타 당은 모두 동일하거나 의석이 늘어 사회당의 의석수 감소가 두드러지는 형태가 되었다. 양 당이 모두 목표 의석을 큰 폭으로 밑돌아,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증명하는 결과가 되었다.

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 등 5개 당은 선거 전부터 연립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합계 195석으로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자민당도 223석에 그쳐 과반에 실패했기 때문에,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카케가 캐스팅보트를 잡았다. 쌍방 교섭의 결과, 양당은 비자민 세력·민주개혁연합(일본신당, 일본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신당 사키가케, 사회민주연합, 민주개혁연합) 등이 가세한 8개당에 의한 연립 정권 수립에 합의하였다. 이 결과 55년 체제가 붕괴, 일본신당 대표의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수반으로 하는 호소카와 내각이 성립했다. 그러나 성립 후 무려 8개 정당이 연립한 한계로 인해 균열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회당, 신당 사키가케의 비토 선언으로 인해 10개월만에 연립정권이 붕괴되었다.

자민당은 공시 전 의석을 유지해, 중의원 제 1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당 이후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했다. 한편 사회당은, 좌우 통일이래 최저 의석수를 기록하였으나 제1야당 지위를 유지하였으므로 중의원의장 등 주요 지위를 획득했다. 사회당에 있어서는 타 당과의 협조가 당의 존재 의의를 퇴색시키거나 노선 변경을 강요하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집권 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양대 정당으로서 역할을 상실하는 치명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비자민당세의 대약진으로 주목을 끈 선거이지만 투표율은 과거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

40회 중의원의원 총선거에서는 일본신당에서 에다노 유키오, 마에하라 세이지, 노다 요시히코, 가이에다 반리 등 이후 민주당 정권에 입각하는 정치인들이 처음 당선되었고, 자민당에서도 아베 신조, 시오자키 야스히사, 노다 세이코 등이 초선이 되며 후에 일본공산당 대표가 되는 시이 가즈오가 당선되는 등 등 여야 불문하고 이후 일본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물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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