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역사

최근 편집: 2023년 6월 11일 (일) 10:24
한국의 역사
상고 시대 고조선 · 진국 우산국 탐라국
원삼국 시대 부여 · 고구려 · 옥저 · 동예 · 삼한(마한 · 진한 · 변한)
고대 삼국 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남북국 시대 신라 · 발해
후삼국 시대 신라 · 후고구려 · 후백제
중세 고려
근세 조선
근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일본제국 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현대 해방기 조선인민공화국
미군정 소련군정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조선반도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소련의 군정기를 거쳐 1948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과 한국(남한)으로 나뉘게 되었다.

소련은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통해 경흥군 웅기를 거쳐 청진시를 공격하고 계속 남하하여 38선 북쪽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소련은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맞이하여 6개월간 소련군정을 실시했다. 1946년 2월 16일부터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어 1948년 9월 9일까지 계속되었다.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로동당에 의해 1946년 2월 9일에 38도선 이북 소군정 지역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건설되었다. 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9일에 조직하여 약 1년 동안 활동하였다. 위원장 김일성(金日成), 부위원장 김두봉(金枓奉), 서기장 강양욱(姜良煜) 외에 여러 부서의 국장을 두어 사실상의 정부조직이었다.

1946년 3월 8일부터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무상 몰수, 무상 분배하는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등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 후 남북한 지역 간에는 상호 접촉이 두절되었고, 각각의 사회 내에서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단체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소련 간에는 냉전으로 불리는 전세계적인 체제 경쟁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구조는 초기에 남로당 계열, 갑산파 계열, 소련파 계열, 연안파 계열 등으로 이루어진 연립내각 체제였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은 당시 정적들이였던 박헌영, 리승엽 등 남로당 간부들을 대거 숙청했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의 지반은 계속 확대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들이 지도자 위치에 있던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던 시도(8월 종파 사건)를 했지만, 무산되면서 얼마 후 주동세력인 소련파와 연안파는 숙청되었다. 이로 인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어서 김일성은 갑산파계열내에 온건세력들을 숙청함으로써, 정치구도는 김일성 유일 체제가 확립되었다.

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0년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과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여 김정일이 사실상의 지도자가 되었다.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면서 사실상 김정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3일,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장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출범했다.

2017년 9월 3일에 12시 경 김정은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에서 6차 핵실험에 감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합중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작하면서 비핵화를 촉구를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대북 제재와 함께 포용정책을 병행하면서 김정은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고 이후 아이스하키팀 등에서 단일팀과 예술단 공연 등을 하면서 2018년 4월 27일에 대한민국과 정상회담을, 그리고 이어 6월 13일에는 미국과 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