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가사노동과 젠더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5:49

만약 조선시대보다 현재가 더 낫지않냐고 따지면서 현 상황의 문제점을 희석하는 경우엔 이 문서에 나와있는 내용과 자료로 반박하자.

조선시대에는 남성이 요리를 적극적으로 했다.

조선시대엔 남성도 요리하는 데 많이 참여했다. 오히려 사대부들은 요리를 개발까지 했다.[주 1]

실제로 조선시대 궁중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모두 남자인 대령숙수였으며, 오히려 궁녀들은 음식을 하지 않았다. 의안대군의 아들 이교는 워낙 음식을 잘 만들기로 유명해서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오로지 대접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상경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 율곡 이이, 정약용, 서거정, 박지원, 박제가 등 이름난 사대부들도 스스럼없이 음식을 만들고 즐겼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있다.

특히 박제가는 대식가이면서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기도 했는데, 친한 사이였던 정약용에게 자신의 개고기 조리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그걸 다시 정약용이 형 정약전에게 알려주는 편지가 남아있다. 이는 일부 유별난 양반들의 행적인 것이 아닌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것이기에 사대부인 이들이 직접 나물을 캐거나 농사를 짓고 음식을 했다는 것이다.

남자도 육아에 참여 했다.

육아도 조선시대 사대부였던 이문건양아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과한 기대치를 내걸며 부담시킬 것을 염려해서 교육은 주로 조부모가 맡았다. 이미 자식들을 키운 경험이 있는 데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쌓인 지혜를 손자들에게 전수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갓 쓴 선비나 남자들이 아기를 업거나 자식을 데리고 장을 보는 등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심청전에서도 홀아비가 심청이를 봉양했다는 내용이 있다.

제사 때 여성이 요리하는 것도 드물었다.

조선시대에는 제사 때 반드시 여성이 요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제사는 지금처럼 과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음식을 가정 형편에 맞게 올렸으며, 평소 먹던 반찬을 그대로 올려도 문제 되지 않았다. 또한 우한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건 상식적으로도 형편이 안 좋은데 상다리 부러지게 제사상 차리거나 우환 있는데 무리해서 제사 지내는 꼴을 조상님들이 보고 싶어 하실까? 만약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이런다면 오히려 말리고 싶지 않을까?

즉, 제사의 의의 자체가 후손으로서 조상께 예를 다하는 것이기에 그 후손인 남자들이 직접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렸다. 그 집안 후손이 아닌 며느리들은 원래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임진왜란 전까지는 딸도 제사에 참여했다. 시집간 누나가 자신의 집에서 제사상 차리고 남동생이 누나의 집으로 방문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추가로 사실 조선 시대에는 제사상을 차리는 건 노비들이 했지 며느리들이 한 게 아니었다. 제사에 대한 왜곡된 생각으로 이렇게 변질된 것이다.

부연 설명

  1. 영조의 탕평채가 그 예.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