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차별의 역사

최근 편집: 2024년 2월 13일 (화) 10:52

종차별(speciesism)은 단지 생물학적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가하는 행동이나 사고를 말한다. 이 용어는 1970년 영국의 심리학자 리차드 라이더가 처음 고안하였고, 1975년호주 출신 영국의 도덕철학자피터 싱어동물해방을 출간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종차별의 역사

동물권 논의에서 인간중심적 사고의 역사를 살펴본다. 동양 사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양 사상이 더 인간중심적이고 종차별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피터 싱어는 종차별의 사상적 기원을 크게 기독교 이전, 기독교, 계몽주의 및 그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분류에 더해 종차별적인 견해를 가진 유명한 철학자와 전통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했다.

고대 인도 전통

인도와 중국 일부 종교 전통은 다른 지역에서 기원한 종교에 비해 동물의 중요성을 보다 높게 평가한다. 한 예로 인도의 고전 베다Vedas에 나오는 비폭력ahimsa에 대한 가르침은 불교, 힌두교자이나교의 기본 교리로 계속 전승되고 있다. 이때 '비폭력'은 비살상을 넘어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 나쁜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의 윤회설은 전생의 업보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의 후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윤회설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일깨우며, 생명존중 사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 종교 전통은 사실상 동물과 인간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1]

기독교 이전

고대 그리스 전통

고대 그리스의 사상은 종차별 관점에서 둘로 나뉜다. 하나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전통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 성격이 강했고 특히 죽은 인간의 영혼이 동물에 깃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물에게 자애로운 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고 보았다. 아쉽게도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이 서양 철학의 주류가 된다.

유대교 전통

지리적 관점으로는 동양의 종교라고 볼 수 있지만, 이후 서양 사회의 중심 종교가 된 유대교와 기독교 및 이슬람교는 비인간동물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유대교 전통의 창조 설화인 기독교 구약 창세기 편은 동물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창조되었으며, 인간과 동물의 상호 종속적 관계 및 신분적 차이가 있음을 적시한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장 26절)
  •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음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9장 3절)

이외에도 인간 남성이 동물과 여자 때문에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타락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되어 "동물 가죽" 옷을 입고, 추방된 인간의 자손들은 동물을 신에게 제물로 넘기고, 신은 동물을 홍수와 유황불로 죽인다. 동물을, 죄가 있으며 따라서 벌을 받아 마땅했던 존재로 그리는 유대 경전은 심각하게 종차별적이다. 이 점은 추후 기독교 전통에서도 이어진다.

유대-기독교 전통의 주류는 신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창조된 인간만이 영성을 가지며, 동식물과 달리 인간만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모두 장악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마디로 동식물은 인간보다 낮은 차원의 존재자이며, 따라서 인간은 동식물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1]

기독교 전통

피터 싱어에 따르면, 로마 제국군사주의적 문화(약자/노예/포로/동물은 무가치)와 유대교 및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이 결합되면서 우리가 소위 기독교 문화라고 하는 줄기가 만들어졌다. 로마 제국에는 원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이 싸워서 서로 죽이는 걸 스포츠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유대교 및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영향으로 4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워서 서로 죽이는 형태의 스포츠는 없어졌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이르면 기독교 철학이 크게 발전하는데, 동물권과 관련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 아퀴나스의 윤리 체계에 의하면 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신에 대한 죄, 자신에 대한 죄, 다른 사람에 대한 죄. 문제는 이 분류에 의하면 동물에 대한 학대는, 인간과 관련이 없다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사상의 영향은 오래 지속되는데, 1800년대 중반 교황청의 입장문도 이 사상에 기반해서 동물권 관련 입법을 반대했다. 교황청의 입장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러서야 변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 및 그 이후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도래하면서 신 대신 인간 중심의 사유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동물권 관점에서 인본주의란 말 그대로 "사람"에 대한 것일 뿐 둥물이랑은 상관이 없으니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주목할만한 사례들이 없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그는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을 하였다.

데카르트

동물권 관점에서 이 시기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이다. 그는 기계론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이었다. 따라서 기계론과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원론(물질과 영혼)을 주장하게 되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세상 만물은 기계인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에게 부여받은 영혼을 가진다. 만약 영혼이 없으면 의식이 없고, 의식이 없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사고와 언어 능력을 갖춘 인간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동물은 감각, 곧 쾌락이나 고통조차 느낄 수 없는 '생물학적 로봇'이나 '기계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도덕적 고려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자 곁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죽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아마 그는 이성을 갖추지 못한 아기나 발달장애아도 동물처럼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기준은 이성적이지 못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차별적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부터 동물 실험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의 동물실험은 현대의 동물실험과 마찬가지로 잔혹했지만, 그 덕분에 "동물이 정말 기계일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칸트

칸트 또한 인간의 도덕적 지위를 동물의 도덕적 지위보다 우위에 두고, 비인간동물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부터 제외한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명이다. 다만 그 이유는 데카르트와 다르다. 그는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동물을 인격체로 여기지는 않았다. 칸트에 따르면 인격이 있는 존재자는 사물을 판단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동물은 이성적인 사유 능력을 결여하므로 도덕적 영역을 벗어난 존재자이다. 즉, 동물은 이성을 활용한 추론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선의지도 갖추지 못한 비인격체에 불과하다.[1] 다만 그는 인간의 바람직한 도덕성 함양이라는 간접적 교육 효과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기보다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연쇄살인범들이 동물을 대상으로 살해를 시작한다.

사회계약론

서양 윤리학사의 또다른 전통인 사회계약론에서도 동물은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된다. 사회계약론에서는 비공식적 합의가 모든 도덕적 의무의 원천이 된다. 즉, 우리는 상호 합의에 참여한 상대방에게 도덕적인 의무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물은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어 사회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사람)는 동물에게 아무런 도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 다만 동물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동물 소유자의 사적 재산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동물에게 도덕적 의무를 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애완견에게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이유는 애완견은 타인의 재산에 속하는 물건이며, 우리는 그에 따른 재산권 보호의 의무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을 인간과 같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이미 확립된 계약에 구속되는 비자발적 존재자로 간주하는 것은 서양 문화의 오랜 전통이다.[1]

다윈주의

1859년에는 찰스 다윈종의 기원이 출간된다. 그리고 약 10년 후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표하고 조금 지나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출판한다. 이 세 책의 메시지를 합치면, 모든 현생종은 하나 혹은 소수의 종에서 시작하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분화되었고(종의 기원),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며(인간의 유래), 인간과 대형 영장류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유사성이 있다(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사상적 변화를 보통 다윈주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1900년대에 이르면 상당수의 대중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음을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알게 되지만,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해온 오랜 종차별적 습관을 현실에서 없애지는 못한 채로 애매하게 지내게 되는데, 이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게 싱어의 견해이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1975)

해당 책의 출간은 서구에서 동물권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