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음료)

최근 편집: 2017년 11월 28일 (화) 14:15

개요

차나무의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만든 음료의 총칭. 차(TEA) 전통적으로 차라고 하면 중국에서 발원한 동백나무 속에 속하는 나무의 잎으로 만드는 차를 말한다. 인류의 기호, 미각을 자극하는 상품. 차는 영국 중상주의 이후에 18,19세기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차나무

  • 아열대 상록 활엽관목, Camellia(동백나무속) sinensis
  • 강한 번식력, 병충해에 강함.
  • 기후조건 : 연평균 기온 13도C 이상, 강우량 1300~1500mm, 해발 고도 200m 아열대 기후에 적합하다.

차의 분류

찻잎 수확시기

찻잎 수확시기에 따라 차는 떯은 정도(탄닌의 정도)가 달라진다.

  • 첫물차 : 처음 수확하는 잎으로 끓인 차
  • 두물차 : 두번째 수확하는 잎으로 끓인 차
  • 세물차 : 세번째 수확하는 잎으로 끓인 차
  • 네물차 : 네번째 수확하는 잎으로 끓인 차

발효 정도

  • 녹차
  • 반발효차:우롱차/황차, 중국에서 반 발효차를 많이 마신다. 옅은 갈색빛깔이 난다.
  • 발효차: 홍차/흑차 홍차(음료) 문서로 이동.

가공 상태

  • 부초차 : 그냥 말려서 마시는 것. 풀의 떫은 맛과 비린 맛이 난다. 보관기간이 짧다.
  • 증제차 : 풀의 비린 맛과 떫은 맛을 제거하기 위해 뜨거운 물에 찻잎을 찌거나 덕어서 만드는 차. 고소함이 가미된다.
  • 발효차 : 증제한 차를 발효한 차. 보관 기간이 길다.
  • 병차(전차) : 발효한 차를 형태적으로 벽돌같다고 해서 병차 혹은 전차라고 한다. 오래도록 보관을 할 수 있다. 중국의 운남성 일대, 남부 지역 등 따뜻한 곳에서만 차가 자생을 하기 때문에 이외 지역으로 차가 나가면서 장거리 운반을 하다보니 개발된 차이다. 보관 기간이 매우 길다.
  • 말차 : 신선한 녹차를 가루로 내서 마시는 차. 일본은 다도를 해서 말차를 우려먹는 방식이 따로 있다.
  • 분쇄차 : 찻잎을 말려서 분쇄한다음 망에다 엮어놓은 것.

원산지

  • 인도 북동부, 미얀마 북부, 중국 남서부 파촉
  • 가장 오래된 중국의 차 재배 유적 : 중국 저장성 Tianluo 산맥. 중국의 신석기 유적 지금으로부터 8~9000년 전에 차 재배 유적이 발굴되었다. 본래는 차의 재배를 3~4000년 전으로 추정하였는데 이 발견으로 차의 기원이 크게 앞당겨졌다.
  • 중국 신농씨 설화에 차 복용 설화 등장. 신농씨는 삼황 중 한 명이자 농경의 신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적 기록이고 차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차 문화의 기원

  • 중국 당 시인 육우 다경 :”차는 남방의 좋은 나무” 현재의 기록에 따르면 차는 인도 북동부, 미얀마 북부, 중국 남서부 쓰촨성 파촉이라고 하는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 중국의 파촉 지방 -> 진나라 혜문왕 시대 정복됨(316 B.C.E.)-> 차 문화 중원(지금의 위수) 전파 : 파촉 지방은 물이 풍부하고 고온 다습하여서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전한 지역이다. 바로 그 아열대성 기후의 파촉 지방으로부터 차 문화가 시작되었고 이게 퍼지게 된 것은 진나라의 혜문왕 시대다.
  • 한대 약용 복용 : 화타 식론 : 차의 약리 효과 기술/사람을 진정시키고 등등, 차의 효과가 기술되어 있다.
  • 중국 남북조 시대 : 이 시대에는 남중국 시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늘어나 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이것이 차의 대중화를 불러온다. 또한 외래 종교인 불교의 유입을 통해 새로운 철학적 조류들이 생겨난다. 이 때문에 자기 수양을 위해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 수당 시대 : 수나라 때 만든 대운하 덕분에 차의 유통 구조가 매우 활발해져서 전국적인 차 상용이 이루어진다. 또한 수당 시대에는 동아시아에 중국의 영향력이 매우 컸는데, 이 때 한국, 일본, 베트남으로도 차 문화 전파가 이루어진다.

차 문화의 동아시아 전파

한반도 전파

  • 고구려 고분, 차 출토: 삼국시대 고구려 승려 통해 차 전파 추정
  • 신라 선덕여왕 재위 시대: 차 음용 시작
  • 신라 흥덕왕(826~836) : 당 문종에게 차나무 종자 하사 받음 -> 지리산 재배 시작 ->음가 성행
  • 고려 성종: 관청 다방 설치 -> 차와 관련된 왕가의 의식, 약과 술 등 관리

차 문화와 도자기 발달의 관계

도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자기는 당나라 시대부터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도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말려서 굽는 것이고, 자기는 유약을 발라 더 높은 온도에서 굽는 것이다.

  • 동아시아 도자기 문화 : 다기와 깊은 관련
  • 자기 : 당 제국 시대 처음 생산 : 신라 말 한반도 생산, 고려 청자 70% 다완(차를 마시는 사발)

고려 때에는 당나라의 자기 생산 기술을 받아들인다. 송대 청자의 영향을 받은 고려 청자는 세계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데, 고려 청자의 초기 형태는 다기였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자기 생산이 동아시아 전체로 퍼지게 된다.

차 문화의 유럽 전파

첫 차 문화 접촉 유럽인 : 포르투갈

아프리카 항로를 처음 개척한 것이 포르투갈 이다 보니, 포르투갈에서 처음으로 차 문화를 접하게 된다.12,13c에 유럽인들의 차 음용 기록은 없다.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돌아서 콜커타에 간 것이 1500년대 초반, 중국 까지 가는데 거기서 10년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마카오까지 진출하여 1513년 알바레스라는 선원이 명 제국의 광저우에 도착을 해서 교역을 맺게 된다.

  • 알바레스(Jorge Alvares) : 명 제국 광저우 도착(1513)
  • 중국에 관한 연구(가스파르 다 크루즈) : 홍차 소개(1556), 특히 건강과 관련해 홍차가 건강에 좋다는 기록을 남긴다.
  • 유럽과 일본의 문화 차이(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63) : 오다 노부나가 저택에서 일본 차 문화 경험

커피 등을 음용하던 시기에 차 문화는 유럽인들에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유럽 지역 차 전파 : 네덜란드

그러던 와중 유럽인들이 차를 마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 1610, 중국 마카오/일본 히라도 : 녹차 구입 -> 자바 섬 반탐 -> 헤이그 (유럽에서 차를 음용한 첫 기록이다)
  • 중국의 도자기(다기) 수입
  • 네덜란드 귀족과 부르주아 : 일본의 다도 소개 : 네덜란드 귀부인 : Tea party 문화 창조

일본의 다도에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의 다도 문화가 만들어진다. 도자기를 사용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다도 문화가 창출이 된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 1630년대 프랑스에 차 수출, 1650년대 발트해 국가 차 수출

네덜란드는 이 시기에 커피와 향신료가 주된 수출품이었다. 또한 네덜란드는 이 시기 중국과 일본에 대항할만한 힘이 없었다. 차를 구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커피와 향신료가 주된 부의 창출 수단이었다.

영국의 중상주의 무역 시작

17세기 네덜란드 vs 영국: 올리버 크롬웰 집권 시기(1648~1658)

항해법 : 영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무조건 영국 배로 수송을 해야 한다. 네덜란드 상선대들이 상품을 많이 운반했는데,중개 무역에 네덜란드의 역할을 파괴하기 위해서 제정한 법이다. 이것을 구실로 국가가 공인한 영국 해적들이 항해법을 빌미로 네덜란드 상선을 공격한다. 이 충돌을 빌미로 1차 영란(영국vs네덜란드)전쟁이 벌어진다. 이 때의 접촉으로 인해 영국에 처음으로 차가 도입된다.

  • 항해법(1651년 10월) 제정 -> 항해법 구실로 영국 해적들의 네덜란드 무역선 공격 -> 영국/네덜란드 전쟁(1652년 7월) -> 웨스트민스터 조약 체결(1654년 5월) : 네덜란드의 항해법 인정

영국의 차 문화

  • 커피하우스 개러웨이스 : 첫 차 광고 : 현대 영양학적 효능과 거의 일치
  • 귀족이나 대부르주아 계급의 소비품 : 워낙 들어오는 양이 적어서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대 부르주아 계급의 소비품으로 이용되었다.

영국의 차 문화 및 교역의 전환점

찰스 2세 복위(1660년)

찰스 2세는 네덜란드와 관계가 좋았지만 동맹을 찾아야 했다. 에스파냐와는 워낙 사이가 안 좋아서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 포르투갈 공주 카타리나(Catarina de Breganca) : 이때의 혼수품은 차 한 덩어리, 설탕을 가득 실은 7척의 배와 인도의 땅 뭄바이였다. 그만큼 차의 가치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은 차 문화가 일반적인 곳은 아니었음에도 카타리나가 차를 가져온 것은 풍토가 안맞는 영국으로 가면서 건강을 걱정해서 왕실에서 걱정을 해서 차를 한 덩어리 준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국 왕실에 차 문화가 점점 퍼져 나가게 된다. 1664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영국의 국왕에게 선물하기 위해 바타비아에서 네덜란드 상인에게 차를 구매한다. 이는 영국의 최초 공식 차 수입 기록이다.
  • 제 2차 영국 – 네덜란드 전쟁(1665-1667)

알링턴 경,과 요크 공작 제임스, 그들의 개인적 야욕과 중상주의적 야욕이 결합되서 네덜란드와 2차 영란전쟁을 벌인다. 문제는 전쟁을 벌인 것은 처음 아메리카였다. 북쪽에 있는 영국 식민지인들을 대동하여 그 당시 네덜란드 령이었던 뉴 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을 공격한다. 영국이 이렇게 먼저 공격을 했는데 바로 네덜란드의 반격을 받고 전쟁은 영국 측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네덜란드의 자본력, 해상 세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메드웨이 전투에서 영국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이후 영국은 뉴암스테르담, 네덜란드는 수리남을 점령한 채로 브레다 조약(1667년 7월)을 맺고 전쟁을 끝맺는다.

영국의 차 무역

  • 1669년, 영국: 네덜란드 차 수입 금지, 영국 동인도회사 중국과 직접 차 교역 시작
  • 3차 영국-네덜란드 전쟁(1672-1674) : 프랑스 루이 14세 +영국 찰스 2세 : 도버 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해서 이 둘의 연합하에 프랑스가 플랑드르 지역으로 전쟁을 시작해 들어간다. 루이는 40만, 네덜란드는 2~3만 이라서 네덜란드가 완전히 크게 타격을 입는다.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압도했고, 네덜란드의 병력이 깎여나가게 된 전쟁이다.
  • 1672년 4월 영국과 프랑스의 대네덜란드 선전포고
  • 1674년 2월, 2차 웨스트민스트 조약 체결
  • 1685년 , 제임스 2세 즉위 -> 명예혁명(1689) : 청나라 강희제 해금 일부 해제(1685): 오문(마카오), 장주, 영파, 운태산 항구 개항 -> 중국과 영국의 차 교역 본격화되기 시작. 그런데 제임스 2세는 즉위하면서 문제를 일으켰고, 장녀인 메리가 윌리엄 3세와 결혼( 둘 모두 신교) 을 하였다. 그 당시 의회파 입장에서는 제임스 2세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의회파는 명예혁명을 일으켜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킨다.
  • 명예혁명(1689): 윌리엄 3세, 메리 2세가 동시에 왕이 됨 -> 대륙의 차 문화 영국 본격 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