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천경자(千鏡子, 1924년 11월 11일 ~ 2015년 8월 6일)는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 온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수필가, 대학교수이다. 본명은 천옥자(玉子)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상설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생애

  • 1924: 11월 11일 전남 고흥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출생.
  • 1931: 고흥보통학교(현 고흥초등학교) 입학.
  • 1937: 광주공립여자보통고등학교(현 전남여고)에 입학.
  • 1941: 동경에 있는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 이 때부터 천경자라는 이름을 사용.
  • 1944: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하고 귀국하여 결혼.
  • 1946: 모교인 전남여고의 미술교사가 됨.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
  • 1954 ~ 197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 1955: 첫 수필집 «여인소묘»를 출간하고, 이후 여러 권의 수필집 출간.
  • 1978: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 됨.
  • 1998: 미국 뉴욕으로 이주. 서울시에 채색화와 드로잉 93점 기증.
  • 2002: 서울시립미술관에 상설전시실 개관.
  • 2015: 8월 6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별세.

3 입상

  • 1943: 외조부를 그린 <조부>로 제 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 1944: 외조모를 그린 <노부>로 제 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 1983: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4 위작논란

1991년 <미인도>의 위작 논란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하는 등 시련을 겪는다.

5 기증

1998년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1940년 대부터 1990년 대까지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6 작품세계

천경자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여인상이 도상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1970년을 전후로 7.80년대를 전성기로 보고있다.

꽃, 동물 등의 소재를 주제로 전환 이를 자연주의적으로 모방하기 보다는 상징주의적 상상과 환상에 의존하고 이는 "꿈과 사랑의 모정"이라는 여성적 낭만과 환상으로서, 인간 자체보다는 자연계의 신비나 인생의 덧없음에 주목한다.

7 페미니즘과 연관성

천경자는 가부장적 통념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미술사적 비평의 시선이 여성적이라는 유형으로 분류하고 열등한 이미지로 구분해 비평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했던 모티브들을 전면에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미학적 특성으로 승화시켰다. 소재부터 여성적인 미술을 부흥시키고자 한 본질주의 페미니스트 미술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에 여성성을 강조하고 여성을 주제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며, 여성의 신분으로 당시 보수적인 수묵화단에서 왜색풍이라 적대시하는 채색화를 끝까지 고집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내었다.[1]

8 참고

  •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상설전시관 작품해설
  1. 천경자 회화의 페미니즘 연구 = A Study of feminism in Chun Gyeong Ja's painting, 박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