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1911년 11월 24일 강원도 홍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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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9년 8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본관 | 해주 최씨 |
학력 |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직업 | 무용가, 가수 |
상훈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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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는 무용가, 가수이다. 현재는 신여성으로도 평가받는다. [1]
생애
1911년 강원도 홍천군에서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가난속에 유년기를 보냈다. 보통 보수적이라 당시 여성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을 시대이기도 하지만, 허난설헌 사례처럼 여성에게도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숙명여학고,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소학교 시절에는 전교 1등만 하다 2번이나 월반으로 2년 조기졸업 하였다.
하지만 숙명여학교 재학 당시 가세가 기울어 장학금을 받아가며 겨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 이후 도쿄 음악학교 진학을 희망하였지만, 연령 미달도 입학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고, 경성사범학교 입학 시험에서 0.0814% 성적으로 합격하게 되지만, 연령 미달로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역사적 평가
1937년, 일제강점기 당시 현재 가치로 3~4억 거의 국방헌금을 일본에 헌납하여 협조하여, 2005년 친일인명사전 등록 포함에 검토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승희춤축제> 측은 "설령 친일행위를 하여도 최승희는 물론, 춤이 가진 역사적 평가마저도 폄하하여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미국, 유럽 수많은 해외공연에서도 자신이 한국인으로 내세우며 한국 아름다운 춤을 세계에 소개하는데 열정을 쏟았다. 더욱이 일본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창씨개명조차 하지 않았다. 행적을 종합할 때 국방헌금은 어쩔 수 없이 행한 일로 보인다. 이에 2차 친일인명사전에 포함시키면 너무 가혹하다." 라고 밝혔다. [2] [3]
하지만, 결국 이 행적들이 오점으로 남아 홍천군 2,580명중 62.7%가 "최승희 춤축제가 홍천군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75.7%가 "무관심, 축소, 전면 중단"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강원도내 보훈단체들은 "친일파에게 행정기관이 예산을 지원하는 축제는 반대한다" 는 입장이 있기도 하였다. [4]
서적은, 책 <불꽃>: 1936년에 나왔던 최승희 자서전 <나의 자서전>의 판권을 출판사가 북한에 거주하는 최승희 친척으로부터 사서 발간한 책이다.
이후 194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