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0일 (금) 02:24
최진실
출생1968년 12월 24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은평구
사망2008년 10월 2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국적대한민국
본관전주 최씨
학력서울불광초등학교 동명여자중학교 선일여자고등학교 (졸업)
직업배우
활동 기간1988년 ~ 2008년
종교기독교[1]
상훈춘사영화상 신인여우 (199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 (1991년)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1992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우주연(1994년)
한국모델페스티벌 CF 부문 대상(1995년)
대종상 여우주연상(1995년)
SBS 여자 최우수연기상(1994년, 1995년)
MBC 연기대상 대상(1997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2005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2006년)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공로상(2014년)
정보 수정

최진실은 대한민국 배우였다.

활동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게에 데뷔하여 1989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활동하였다. 그러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연예계 전체를 이끌었다. 전략·포용적 태도·유연한 사고·진취적 행보로 정치·경제·사회·문화권력 연결성을 확보하면서 가능하였다. "故 최진실 생전 인터뷰 20년동안 밝은 인상으로 140편 광고, 20편 드라마, 18편 영화 주연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포럼이 조사하는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는 성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사회였는데, 최진실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차별 불식에 이바지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발한 활동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삶 의미에 대한 큰 궁금증을 자아하며 심리부검을 통한 문제 해결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중요성이 부각되면사, 사회적 시선 교정에 실마리가 제공됐다. 최진실 사망은 대한민국 사회·정치·경제·문화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행보

선행

2004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변호사가 "최진실이 이번 사건을 접하고 마음 아파하기에 돕는 방법을 제안하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 뜻을 전하는 차원에서 성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조만간 성금을 전달하겠지만, 밖으로 드러내기를 싫어하여 간접 전달 방식을 택하겠다." 라며 선행을 하기도 하였다. [2]

광고

2004년 3월 아파트 분양광고로 기용하였던 건설회사로부터 거액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장에 "최진실이 지난 8월 이혼하는 과정에서 회사 인식을 크게 손상시켰다. 폭행사건으로 인하여 회사가 실추되는 금전·정신적 손해를 입었다." 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지출된 광고비용 21억 5000먼원+위자료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하였다. 강지원 변호사는 "최진실 이혼 문제는 2002년부터 거론됐던 문제이고, 알면서 광고 계약을 체결하였다. 최진실씨는 끝까지 이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가정폭력 피해자인데 새삼 문제 삼아 터무니없는 액수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납득하기 힘들다. 가정폭력 피해자로 인하여 분양 사업에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반여성적 발상. 여성인권 보호 공익적 차원에서 무료 변론을 자청하였다." 이라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비판하였다. 최진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동아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하루빨리 마음을 추슬러 좋은 엄마, 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혼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소송을 당하여 감당하기 힘들다. 강지원 변호사는 하소연 하고 싶어 무작정 사무시롤 찾아갔다. 선한 영향력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인지하였기에 도움되는 조언을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무료 변론을 하여주시겠다고 하셔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용기를 북돋워주셨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안좋다. 예전에는 여성 문제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였다. 그런 내가 여성운동·시민단체하니 염치가 없다. 힘들어지니까 도와달라고 매달려 죄송하다. 분명 그부니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강지원, 오숙희, 박옥희, 이혜경씨를 만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분들을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인간적이고, 아픔을 진심으로 아파하여주는 고맙고, 존경스러운 분들이었다. 여성 문제애 대한 이야기도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말씀하여 많은 도움이 됐고, 작은 변화지만 덕분에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는 여성이 많다고 알게 됐다. 여성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미화 선배처럼은 못하여도 이제는 나처럼 고통받는 여성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내가 인복이 많다. 주변에서 "잘된다. 힘내라" 격려하여주고 있다. 홍진경은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다. 정말 힘이 된다. 아직도 사회에는 이혼한 여성을 "인생 패배자"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데,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동료·후배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됐으면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강한 여성이 되겠다. " 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료 변론 변호인단은 25명이다. [3]

동성애

2008년 3월 10일 <진실과 구라> 기자간단회에서 "내 이름을 걸어 진행하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적으로 꼭 다루어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 동성애 주제를 꼭 다루어보고 싶다고 제작진에게 전하였다. 사항 회의에서 너무 개인적은 취향으로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무겁게 생각한다면 무겁겠지만,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밝혔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