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메이커

최근 편집: 2023년 5월 1일 (월) 11:24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아쉬운 점

능력 있는 여성은 외모까지 완벽하게 자기 관리해야 한다는 낡은 믿음이라도 멋지게 파훼되길 바랐건만, 겨우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동작으로 간단한 카타르시스를 노린 부분은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로 유치한 장면으로 기능하고 만다. 탈코르셋이란 시대정신에 편승하기 위해 먼저 몇백 년 전 유행했던 코르셋을 입혀야만 하는 게, 여성의 의지와 자존감을 나타내기 위해 매일 킬힐을 신겨야만 하는 게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일까.

이왕 판타지가 되겠다면, 탈코르셋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선언해야만 했다면, 기왕 오랫동안 외모 평가의 덫에 걸려있던 능력 있는 여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참이라면,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이 ‘아주 당연하게’ 화장하지 않는 세계관을 상상해 봐도 좋지 않았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근의 트렌디한 여성서사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퀸메이커’ 역시 언더독 여성서사의 깊이를 고민하기보단 그 여성서사가 ‘잘 팔린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듯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결국 ‘퀸메이커’가 이뤄낸 것은 성별 반전된 자본가 개인에 대한 복수에 불과하다. 여성을 치장시키고, 저임금 노동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시원한 반발 없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에 천착했다.[1]

  1. 유해 (2023년 4월 19일). “정통 워맨스, 그런데 킬힐 못 벗은 언니들의 ‘퀸메이커’”. 《여성신문》. 2023년 5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