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08:59

토니 모리슨(영어: Toni Morrison)으로 더 잘 알려진 Chloe Ardelia Wofford은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로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11편의 소설과 에세지를 써 많은 상을 탔으며 프린스턴 대에서 오랜 기간 강의를 하고 명예 교수로 임명받았다.

작품

토니 모리슨은 11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흑인 여성 작가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동시에 대중적 사랑을 받은 작가이다.[1] 수필가이기도 하였으며 아들 Slade Morrison과는 아동서를 썼다.[2]

모리슨의 작품 전반에 걸쳐 여러 요소들이 노예제도와 그 유산에 대한 모리슨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3] 모리슨의 소설들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정기적으로 게재되었으며 오프라 윈프리의 텔레비전 북 클럽에서 여러 번 다뤄졌고 무수한 비평 연구의 주제가 되었다.[3] 또 적어도 2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2]

스웨덴 한림원은 "환상의 힘과 서사시적 힘을 갖고 있으며 대화에 올바르게 귀를 기울였고 미국 흑인을 풍부하게 묘사했다"고 높이 평가하며 1993년 토니 모리슨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4]

생애

1931년 2월 18일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흑인 노동자의 딸로서 Chloe Ardelia Wofford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3] 비교적 평온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로레인 고교 재학시절까지 평범한 학생이던 그는 다만 많은 책을 읽는 특이한 성격이 선생들의 눈에 띄었다 한다.[5] 그는 이 평범한 학생 때 로레인 주위에서 부랑자, 버림받은 자, 못된 인물들의 생활을 눈여겨 보았고 특히 흑인의 고통, 슬픔, 고뇌를 가슴 깊이 담았다.[5]

12세에 세례를 받고 안토니오를 세례명으로 받았다.[3]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서 공부했다.[1] 이 때부터 본명 대신 토니를 별명으로 썼다.[3]

코넬레 대학원을 나왔다.[1] 1958년 헤럴드 모리슨과 결혼해 토니 모리슨이 되었다.[3]

1964년, 이혼한 토니 모리슨은 아들과 함께 뉴욕 시러큐스로 이사하여 1967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첫 흑인 여성 편집자로 일했다.[6]

1989년부터 프린스턴대에 교수로서 인문학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 과정을 강의하는 등 오랜 기간 학생을 가르치고 창의적 작문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있었다.[1] 워포드대, 예일대 등에서도 고전문학을 강의했다.[5] 2008년에는 프린스턴대에 명예 인문학 교수직으로 임용되었다.[2]

모리슨은 광범위하게 강의했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다.[3]

뉴욕의 Grand View-on-Hudson에서 살다가 2019년 8월 5일 미국 뉴욕 몬테피오르 병원에서 향년 88세로 숨을 거두었다.[1][6][3] 모리슨의 죽음은 출판사 Alfred A. Knopf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대변인은 폐렴 합병증이 원인이라고 말했다.[3] 가족은 성명서를 통해 "짧게 병을 앓다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토니 모리슨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토니 모리슨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기는 지극히 헌신적인 어머니, 할머니, 이모였다. 자기 자신이든 제자든 다른 사람이든 간에 글을 소중히 여기는 완벽한 작가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쓸 때 가장 편안해 했다. 비록 토니 모리슨의 죽음은 엄청난 상실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토니 모리슨이 오랫동안 잘 살아왔던 것에 감사한다"고 전했다.[2]

연보

기념

  • 2017년 프린스톤대는 모리슨 홀을 헌정했다.[2] 홀에는 Paul Wyse이 그린 초상화가 걸려있다.[2]

가족 관계

같이 보기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