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자전거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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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함께 캠페인에 나선 참정권 운동가들의 모습. 19세기 영국.

자전거는 자력으로 효율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여성의 자유로운 이동과 여행을 보장해주었다. 또한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하는 특성에 맞춰 여성의 의복이 보다 간소화되고, 활동이 편한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했다.[1]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자전거 타기는 여성 독립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역사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자전거에 대한 생각

영국의 사회 개혁가 클레멘티나 블랙은 1895년 <여성의 소리>에서 "자전거는 여성의 독립성을 다른 어떤 것보다 잘 보여 준다"고 선언했다.[2]

1896년 미국의 시민권 운동가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 생각에 이 세상에서 자전거만큼 여성을 해방시킨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볼 때마다 환호한다. 자전거는 안장에 앉는 순간만큼은 여성들에게 자립심과 독립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속박되지 않은 여성으로 이끌어준다."[3]

'자전거 타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

자전거를 타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반감은 적지 않았다. 초창기 자전거는 백인, 그리고 건강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과 흑인, 그리고 나이 든 남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권장되지 않았다. 따라서 자전거에서도 여성은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4]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은 사회제도와 학술연구 등을 통해서 상당히 합리성을 띈 주장으로 가장해서 표출되곤 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자전거는 여성성을 해친다'는 것이며, 여기에 '자전거 타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도 덧붙여지곤 했는데 이 주장은 '자전거 타기'에서 여성과 약자를 배제하기 위한 의학적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자전거는 여성성을 파괴한다"

여성 라이더에 대한 반감은 자전거 타기가 '가정의 천사'라는 서구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해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복장이 간소화되기 시작했는데, 자전거 체인에 옷자락이 걸리지 않기 위해 무릎 높이로 짧아진 치맛자락과 자전거에 오르내리기 위해 움직이는 다리 동작 모두 보수적인 남성들의 관점에서 숙녀들이 죄악에 빠지는 모습이라고 여겨진 것이다.[5] 당시 남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여성들이 마음대로 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그들이 "낯선 남자들의 품속으로" 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데[6], 이는 여성운전에 부정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과도 비교할만하다.

"자전거는 건강에 해로우니 멀리하셔야합니다"

1897년 의학박사 A. 셰드웰(A. Shadwell)은 <내셔널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자전거 타기의 위험성을 설파했다. '6일 간 경주(Six-day riding)에 참가한 선수들 가운데에서 마약 복용으로 인한 망상과 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문 선수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 가운데서도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맹장염이 발병했다거나, 두통, 무기력증, 갑상선염을 앓는 사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7] 오늘날의 눈으로 보았을 때, 셰드웰이 언급했던 증상들은 비정상적인 운동[주 1]이나 자전거 타기와 별다른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질병인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자전거 타기에서 여성을 떼어놓기 위해 의학박사라는 배경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셰드웰의 주장은 여성들의 자전거 타기에 부정적인 당시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여성과 자전거

한국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로 자전거를 즐기는 한국인은 전체 7.6%에 해당한다. 남성의 10.6%가 자전거를 즐기는 반면, 여성의 경우 4.1%에 불과하다. 이는 여성의 체육활동의 상당부분이 걷기(49.1%)에 쏠려있는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의 체육활동은 걷기, 수영, 요가, 피트니스 클럽 등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성장과정에서 남자에 비해 체육활동을 접할 기회가 적고, 고정된 성역할에 따라 종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8]

로드여신

자전거 인구가 증가하면서 픽시(자전거)로드바이크를 이용하는 여성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로드여신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등장했다. 로드여신이라는 명칭은 상당히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다. 로드바이크를 타는 여성들을 멋지다고 인식해서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때로는 몸에 달라붙는 의상에 빗대 성적인 뉘앙스를 담아 부르기도 한다. 디씨 자전거 갤러리와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보다 노골적으로 이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성과 함께 라이딩하는 남자 라이더들을 '보빨러'호위무사', 여성 라이더를 '여왕벌'로 부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의 경우

중동지역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자전거 탑승이 금지 되어있다. 여성인권이 취약한 이슬람 문화권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2016년 초부터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사진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저항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2016년 2월 이스라엘의 한 매체는 가자지구에서 4명의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주 2] 이란에서도 "여성은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이슬람교 파트와[주 3]에 반기를 들고 자전거를 탄 사진을 SNS에 인증하는 방식의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경색된 이슬람 사회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이 금지되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작된 최초의 장편영화 <와즈다>(2012)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인기는 사우디 사회에서 여성이 자전거 타기가 허용되는 성과[9]를 불러오기도 했다.

여성 인권 수준이 높은 서구에서는 여성의 자전거 타기에 대한 제약은 없지만, 여전히 남성들에 비해 적은 수의 여성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 자전거 이용자 연맹(The League of American Bycyclist)에 따르면 2009년 자전거 이용자의 24%만이 여성으로 조사된 바 있다. 따라서 이 단체는 여성의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Women Bike'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지역 단체에 지원금과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10]

프로 스포츠로서의 자전거는 다른 많은 여성 종목과 마찬가지로 비인기 종목에 머물러 있다. 국제사이클연맹(UCI)는 여성 사이클 종목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2016년 동안 1800만명의 시청자가 여성 사이클 경기를 시청하면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프로팀의 창단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자전거 회사 캐니언(Canyon)은 변속기 제조업체 스램(SRAM)과 함께 여성 로드바이크 팀인 '캐년-스램'팀을 출범시켰다.[11] 그 밖에도 몇몇 사이클 팀들이 남성팀과 함게 여성팀을 운영하고 있다.

사건/사고

같이 보기

부연 설명

  1. '6일 간 경주'는 문자 그대로 6일 동안 트랙을 가장 많이 도는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다.
  2. 해당 매체는 보수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 가자지구를 '테러리스트 거주지'로 표현한다. http://www.israelnationalnews.com/News/News.aspx/208396
  3. 교리해석

출처

  1. Aronson, Sidney H. (Mar 1952). "The Sociology of the Bicycle". Social Forces. 20 (3): 305. doi:10.2307/2571596. Retrieved 1 June 2014.[1]
  2. 실라 로보섬, 아름다운 외출, 삼천리, 9쪽, 2017.08.27.
  3. Louise Dawson, "How the bicycle became a symbol of women's emancipation", The Guardian(2011.11.04)[2]
  4. Rockstar Dinosaur Pirate Princess, "Cycling & Feminism"[3]
  5. Lynn Peril, "First the Bicycle, Next the Vote: The Story of Bicylces and Feminism", Bust Magazine[4]
  6. Sam B, "Bicycles: Making good women go bad since the 1800s", Fit is a Feminism Issue[5]
  7. A. Shadwell, "The hidden dangers of cycling", National Review, (1897)[6]
  8. 문화체육관광부, <2015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보고서>, 131쪽.[7]
  9. '와즈다' 사우디 '최초'의 영화가 이룬 놀라운 도전과 변화”. 2014년 5월 27일. 2021년 1월 12일에 확인함. 
  10. http://bikeleague.org/womenbike
  11. http://www.wmncycling.com/t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