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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자(Asexual)는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지칭한다. 상단의 사진이 무성애자의 프라이드 플래그.
무성애 스펙트럼
모든 사람이 무성애, 그리고 대칭 개념인 유성애(allosexuality) 둘 중 하나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대다수는 무성애와 유성애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스펙트럼상의 양쪽 끝에만 지향성이 위치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 이분적일 뿐더러 이건 이성애-동성애 스펙트럼도 해당한다. 또한 유-무성애 스펙트럼 이외에도 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이라도 서로 상이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무성애 스펙트럼은 이런 다양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이건 동성애와 대칭 개념인 이성애에도 나타나는 경우이다. 킨제이 척도가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낸 대표적인 예시.
Demisexual (데미섹슈얼, 반무성애)
무성애 스펙트럼에 속하는 정체성 중에서 가장 흔한 편에 속한다. 평소에는 무성애자와 거의 같은 경험, 즉 성적인 끌림이 부재하는 경험을 하지만 감정적 기반(bond,본드)가 형성된 상대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이다. 성적인 끌림을 느낄 정도로 감정적인 기반이 생겨나는 기간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며,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특정 조건 하에서 성적 끌림을 느낀다는 점 때문에 Gray-A 의 하위 정체성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유성애자들 역시 감정적 기반이 쌓여야 성적 끌림을 느낀다며 없는 정체성 취급하는경우가 있지만 첫눈에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유성애자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 감정적 기반이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성적 끌림을 노리고 소비되는 포르노가 왜 있겠는가.
Gray-A (그레이 에이섹슈얼, 회색무성애)
완전한 무성애자 혹은 완전한 유성애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에이섹슈얼 스펙트럼 안에 속하는 정체성을 광의적으로 통칭하는 말이다. 본래 성적 끌림을 아주 드물게 느끼거나 특정 상황에서만 느끼는 정체성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지만, 아래와 같은 경우에도 Gray-A로 정체화하기도 한다.
- 성적 끌림을 느끼지만 그 정도가 아주 약한 경우, 혹은 성적 충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
- 어떠한 종류의 끌림을 느끼지만 그것이 성적 끌림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경우, 혹은 경험하는 끌림을 성적 끌림으로 구분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경우
Autochorissexual/Aegosexual
Autochorissexualism(오토코리섹슈얼리즘) (Identity-less sexuality 라고도 한다) 이라는 개념은 2011년 경 무성애 분야의 연구자인 Anthony Bogaert(앤서니 보거트)가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무성애자 상당수가 성적 흥분의 대상과 자신을 연결짓지 않는 것을 발견해내었고, 이러한 특성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연구자 본인은 이를 성 지향성으로 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성적 특성 (Paraphilia) 로 보았다. 즉 Autochorissexualism을 경험하는 무성애자가 많지만, 다른 유성애자 역시 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무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 처음에는 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경향이 강했으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자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간주하면서 Autochorissexuality 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Autochorissexiaulity는 성적 흥분의 대상과 자신을 연결짓지 않는 정체성을 가리킨다. 즉 성적인 흥분은 느끼지만 자신이 성적 관계에 포함되려는 욕망은 없다. 성적인 망상을 할 때도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1인칭 관점의 상상이 아닌 3인칭 관점으로 상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포르노를 보거나 자위를 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유성애자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관음증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관음증은 "자신이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관계에 참여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그 외, 무성애 스펙트럼에 속하는 정체성
- Fraysexual: 감정적 기반이 없는, 주로 초면인 상대에게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
- Litho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길 원하지는 않는 정체성
- Placiosexual: 타인과 성적 관계를 맺는것을 원하지만 굳이 상대가 반응하여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아도 괜찮은 정체성
- Cupiosexual: 성적 관계를 원하지만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정체성
- Abrosexual: 여러 성적 지향을 오가는 정체성
- Apothisexual: 무성애자인 동시에 성관계를 꺼리는 정체성
- Reciprosexual: 누군가가 자신에게 끌림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만 끌림을 경험하는 정체성
- Requiessexual: 감정적 소진이 원인이 되어 끌림, 행위, 관심이 없거나 제한되어있는 정체성
무성애와 혼동되는 개념들
- 금욕: 자발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과 다른 이유로 섹스를 하고싶어할 수 있고, 빈번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 독신주의: 무성애자라고 연애를 안하지 않으며, 독신주의는 다양한 신념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일이다,
- 무성욕: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이 부재한 사람을 지칭하며, 성욕이 있는 경우는 많다. 다만 그 성욕을 타인과의 성적 행위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단계가 부재할 뿐이다.
- 불감증: 성적 끌림의 부재는 성감대와 아무 관련이 없다.
- 고자·불임: 생식능력의 부재는 성적 끌림의 부재와 관련이 없다. 생식기관을 제거한다고 해서 성적 끌림을 갑자기 경험하지 않게 되지도 않는다. 생식능력의 부재를 비하하는 표현을 무성애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장애혐오와 무성애 혐오를 동시에 자행하는 일이다.
- 모태솔로: 모태솔로는 일반적으로 연애의지가 있음에도 아직 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게 되는데, 무성애자는 연애를 안하는 존재가 아니다. 연애경험의 부재와 성적 끌림의 부재는 별로 관련이 없다.
Aromantic(무로맨틱)
무성애자라고 하면 Asexual(에이섹슈얼)만을 지칭해야 하지만, 한국어 '성애자' 라는 표현은 Sexual의 대응어임과 동시에, 동성애자/이성애자라는 용법에서 볼 수 있듯 동성애자/이성애자가 Sexual/Romantic Orientation(섹슈얼/로맨틱 오리엔테이션. 즉 성적,연애적 지향)이 일치하는 사람들을 주로 지칭하는데 사용되어온 나머지 Romantic의 의미를 다소간 포함하고있다. 결국 현재 한국어에서 무성애자라는 표현은 무로맨틱임을 어느정도 암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성애자라는 표현은 연애를 안하는 사람 혹은 연애감정을 느끼지 못하는(Aromantic)의 이미지를 약간 쓰고있다. 이에 따라 상기한 다양한 '연애상태의 부재와 관련된 개념'(모태솔로, 독신주의 등)에 무성애자가 항상 결부되어버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무성애라는 것은 오직 Sexual과 관련된 것이므로, Aromantic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 무로맨틱 이성애자의 예를 들자면 이 사람은 연애적 지향은 없으나 이성에게 성적 끌림이 있으므로 무성애자가 아니다.
무성애와 성적욕구/성적충동
성욕은 성적 끌림과 별개의 개념이며, 성적 끌림을 전혀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도 성욕은 느낄 수 있다. 성욕을 느끼는 무성애자(Autochorisexual)는 자위 등을 통해 욕구를 해소하기도 한다.<button data-placement="auto bottom" data-content="http://m.blog.naver.com/kakairue/220507076333" data-container=".wiki-fnote">1</button>
무성애와 관련된 오해
- 무성애자는 섹스를 혐오한다
- 무성애자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혐오하지 않고 즐기는 경우도 잦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먹을 수 있듯 무성애자는 다양한 이유에서 섹스를 하며, 섹스를 즐길 수 있다. 섹스를 통해 애인과의 친밀감을 다지는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성감대의 자극 자체를 즐기고 섹스 상대가 누가 되든 그닥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무성애자는 성욕이 없다
성욕의 부재는 성적 끌림의 부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둘은 다른 단계의 이야기이다,
- 무성애자는 연애도 하지 않는다
이는 차라리 Aromantic(무로맨틱)과 연결될 것이며, 심지어 Asexual이 섹스를 안하지 않듯 Aromantic은 로맨틱 끌림을 느끼지 못해도 다른 동기에서 비롯하여 연애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 무성애자는 섹스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와같은 논리라면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젠더와 섹스를 해봐야만 자신의 성적 끌림의 방향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의 모든 젠더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 모든 맛을 보지 못했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정지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동성에게 끌리지 않을 것을 경험해보지 않고도 확신하듯, 무성애자는 누구에게도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을 것임을 알 경험없이 알 수 있다. 만약 저 주장이 맞으면 섹스를 못해본 이성애자 역시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깨달을 수 없어야 한다.
- 무성애자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백번 양보해 Aromantic 비연애주의자 무성애자라 할지라도 가족애를 느끼거나 우정으로 인한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고 흔한 일이다. 사랑에는 성애만 있지 않다.
무성애 가시화에 따라 부각된 지점
- sexual/romantic의 분리
무성애 혐오표현
- 고자
관련 사이트
같이 보기
- <a href="/wp-d/579b95c4f0ab18831a5bca5a/View">젠더퀴어</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