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Marie Curie, Maria Salomea Sklodowska)는 1867년 11월 7일 태어난 폴란드의 과학자이다. 소르본느대학교에서 수학, 물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딸 둘을 두었다.
1 생애
1906년 남편 피에르 사망 이후, 피에르의 교수직을 이어 받아 여성 최초로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된다.
1911년 1월, 마리 퀴리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 후보가 되었지만 두 표 차이로 떨어졌다. 여성인데다 폴란드 이주민이라는 출신 배경에 과학계 인사들의 보수성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리고 같은 해 마리 퀴리가 폴 랑주뱅이라는 과학자와 불륜 관계라는 기사가 언론에 실린다.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 이후, 마리 퀴리의 묘는 1995년 4월 20일 프랑스 팡테옹으로 이장된다. 팡테옹은 프랑스의 위인들을 위한 국립 묘지인데, 마리 퀴리는 이민자 출신의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아닌 자신의 업적만으로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다.
마리 퀴리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전 폴란드에서 태어났어요. 피에르 퀴리와 결혼했고, 두 딸을 두었지요. 연구는 프랑스에서 했어요.”
1.1 경력
연도 | 경력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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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 방사능 연구 착수 |
1898 | 폴로늄 발견(7월) |
1898 | 라듐 발견(12월) |
1903 | 소르본대학 실험실 주임 |
1907 | 라듐 원자량 정밀 측정 성공 |
1910 | 금속라듐 분리 성공 |
1910 | 소르본대학 교수(여성 최초) |
1911 | 퀴리 실험소 소장 |
2 업적
2.1 노벨 물리학상
1903년
2.2 노벨 화학상
1911년
3 기타
여성위키 공식계정을 통해 여섯번째로 소개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