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섹슈얼리티
섹슈얼리티는 재생산능력과 성적 서비스로 구성된다. "섹슈얼리티는 성, 성적 총체, 성역할 등을 의미한다. 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성은 생물학적 성별과 함께 여성과 남성에 대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성욕, 성애의 대상, 성적인 매력, 성교 등을 포함한다. 이렇게 넓은 의미의 성을 섹슈얼리티로 부른다."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국학자료원
2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를 정치화하였다. 케이트 밀렛은 그의 저서 <성의 정치학>에서 섹슈얼리티 와 젠더의 교차를 여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여성억압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3 여성억압의 본질
Sexuality의 억압적 성질 분석
3.1 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
래디컬 페미니스트 Ann Ferguson의 분류
- 이성애의 특징은 억제이다. 가부장적 부르주아 섹슈얼리티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기준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 아래 둠으로써 그 성적 욕망과 즐거움을 억제한다.
- 페미니스트는 a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것들을 폐기해야 한다.
- 페미니스트는 억제된 권리를 요구하여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의 지배력을 되찾아야 한다.
- 이상적인 성적 관계는 성적 즐거움이나 만족감 극대화를 위해, 충분한 협상과 합의를 통해, 동등한 파트너 간에 이뤄진다.
- Gayle Rubin, 『Thinking Sex』
Gayle Rubin은 인간해방을 위한 열쇠 중 하나가 성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회(현대 서구 사회)가 결혼하여 출산하는 이성애자들을 성애적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두고, 나머지를 하위층에 둔 채 그 경계선을 지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허용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최고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레즈비어니즘에만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역할이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성적 억압이라고 말했다.
3.2 문화 페미니즘의 관점
Ann Ferguson의 분류에 대한 문화적 페미니스트의 관점 a. 이성애적 성관계는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폭력을 지지하는 성적 객관화 이데올로기의 특징을 지닌다. b. 페미니스트는 a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성적 관행을 거부해야 한다. c. 페미니스트는 남성보다 여성의 성적 선호사항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의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e. 이상적인 성적 관계는 양극화된 역할에 참여하지 않는, 진정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감정으로 연결된, 동등한 파트너 간에 이뤄진다.
대부분의 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인 Gayle Rubin과 대조적으로 남성 섹슈얼리티는 내재적으로 잘못된 것이므로 그것을 거부하라고 경고한다. 성적 관계에서 여성은 “상호관계와 친밀성”을 남성은 “힘과 오르가즘”을 원하기 때문에 가부장제 내에서 이성애 관계는 여성들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들에 의하면 여성 해방을 위한 열쇠는 모든 가부장적 제도들과 성적 객관화를 발생시키는 성적 행위들을 제거하는데 있다.
4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이성애 비판
1970년대의 초기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이성애(Heterosexuality)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여성 억압과 레즈비언 억압 간의 불가분적 관계를 밝혀내었다. 이는 이성애적 성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이성애의 제도화와 이데올로기화에 대한 분석을 거쳐, 종국에는 페미니즘 내부의 이성애주의를 성찰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본 문서에서는 1970대의 초기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이성애를 비판했던 논의들을 위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4.1 이성애적 성관계에 대한 비판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관계를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가 투영되는 정치적 행위라고 분석하였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발전시켜 이성애적 성관계가 여성 억압을 강화하는 규범이자 남성-지배/여성-종속의 관계를 실현하는 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이성애적 성관계를 남성성, 특히 남성의 공격성과 정복욕의 성적 실천으로 보는 입장은 자지를 성적 기관이 아닌 공격의 무기로 간주하고, 삽입 성교(/흡입성교)를 여성 신체에 대한 침해와 강탈로 해석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성애적 성관계는 행위자, 특히 여성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성애적 성관계를 남성중심적 성규범의 작용으로 보는 입장은 이성애적 성 각본이 남성만을 성적 행위자로 가정하고 남성의 성적 쾌락만을 보장한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이성애적 성 각본이 남성 중심의 체위를 ‘정상 체위’ 로 자연화하고 질 오르가즘을 유일하고 자연스러운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신화화하는 것은, 여성의 다양한 성적 실천, 특히 음핵오르가즘, 자위, 레즈비언 섹스로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의존을 필연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하였다.
이성애적 성관계에 관한 위의 두 입장은 이성애적 성 규범이 지배와 복종을 성애화함으로써 비대칭적 성관계를 성에 대한 일반적 관념으로 확대시키고 강간을 비롯해 성을 매개로 하는 폭력행위를 ‘성관계’로 간주하게 한다는 성 각본이 가부장적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렇듯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성관계가 생물학적 구조나 성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사회구조의 반영물이라고 보고, 특히 이성애적 성관계를 남성 지배-여성 억압의 전형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이들은 여성의 성적 쾌락이 만족되고 여남이 동등하고 상호적인 성관계를 영위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인 성별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성적'평등은 성취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따라서“결혼이 합법화된 매춘이라면 이성애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강간이다.”, “모든 성교는 여성에게 쾌락을 주더라도 모든 강간이다.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기 때문이다.”라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성관계 내에서의 성적 만족과 쾌락이 여남 간의 평등 여부를 평가하는 관건이 되지 못하며 성관계 자체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외부적 힘을 무시하고서는 이성애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킨다.
4.2 이성애의 제도화 및 이데올로기화 비판
이성애적 성관계의 남성중심성/공격성에 대한 비판은 이성애가 하나의 제도이자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에 따르면, 이성애는 제도적 차별과 통제라는 여성 억압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통해 이성애의 규범적 지위와 제도적 운용, 남성우월에 대한 관념을 정당화하는 핵심 기제이다. 이성애가 인간 성애의 유일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인식된다는 것은 모든 여성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남성과 맺어지길 원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이로써 이성애는 남성에게 여성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 해주고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며, 여성은 섹스, 결혼, 양육의 체계를 통해 남성에게 서비스 하는 구조로 남성 우월적 체계를 온존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성애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작동하면서, 여성은 억압자인 남성의 이해에 자신을 동일시하여 남성의 승인과 인정에 매달리게 되고 여성 간의 연대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철회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성애 이데올로기는 가정 내의 한 남성과 가정 밖의 남성에 충성하는 여성에게 남성 사회의 사적, 공적, 심리적, 경제적 자원을 분배해주는 대신 여성이 여성과의 연대와 동일시를 기피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수사는 이성애 이데올로기에 의한 메타포라 볼 수 있으며, 이성애 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성은 자기 비하, 혐오, 경멸을 내재화해 남성의 제 1 시민적 지위를 인정하는 한편 자신과 같은 위치에 놓인 다른 여성들을 제 2 시민화하게 된다.
여성의 제 2시민화는 이성애의 제도적 작용과 이데올로기적 작용이 교차하며 더욱 심화된다. 이성애는 제도적 차원에서 사회적/가족적 인정, 경제적 안전, 법적/심리적 보호 등을 독점함으로써 레즈비언, 비혼 여성 등 이성애 핵가족 밖에 위치한 여성들에게 실질적 차별과 상징적 처벌을 시행한다. 예컨대 비혼 여성이 자신의 성적 지향과는 달리 레즈비언으로 낙인찍히거나, 레즈비언은 남성과의 관계를 단절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도착증, 일탈을 비롯한 사회 부적응자, 성 불감증, 신체적 결함(=‘하자’) 등이 있는 여성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비정상화와 제도적 배제는 이성애자 여성으로 하여금 이성애 관계를 이탈하지 못하게 만들고, 레즈비언은 자신의 정체성을 은폐하게 됨으로써 레즈비언의 비가시화를 야기한다. 동시에 이성애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여성으로 하여금 다른 여성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통해 자신의 타자적 위치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만든다. 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확보하고 있는 남성과의 관계가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실익’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 여성들과의 관계를 무의미하게 평가하고 다른 여성에게 자기혐오와 경멸을 투사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로 인해 ‘진정한 여성’은 남성과 섹스하고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으로,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이성애자 여성과 레즈비언은 남성혐오주의자, 여성성을 상실한 여성, 남자 흉내내는 사람 등으로 정형화된다.
4.3 페미니즘 내부의 이성애주의 비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레즈비어니즘을 페미니즘과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이성애자 여성과 레즈비언 여성간의 유사성과 연대의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여성들이 억압적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이해가 동일하다는 가정은 이성애자 여성의 특권과 여성간의 차별적 이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쇄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이성애 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후 페미니즘 내부의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되었다.
그 중 첫 번째는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이성애적 특권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성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특권을 가능하게 하는 남성 권력을 묵인하고 레즈비언과 이성애자 여성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은폐하고, 이성애 관계로 말미암은 특권을 지속시키는 것은 이성애 제도와 이데올로기에 합의하고 또 공모한다는 해석이었다. 여기에는 여성의 자원이 여전히 남성의 관계로부터 확보된다면 남성에의 종속과 의존은 해결될 수 없으며, 여성의 세력화와 권력 쟁취 역시 지연된다는 문제의식이 함께 자리하였다. 이어
두 번째의 경우는 이성애자 페미니스트의 레즈비언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에 관한 것이었다. “레즈비언들은 이성애자가 되도록 키워져씩 때문에 이성애자 여성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성애자 여성은 레즈비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처럼 레즈비언의 경험은 당시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특히,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의 화해 혹은 평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간의 관계를 부차화하기 쉽다는 지적이 있었다. 동시에 전략적 측면에서도 남성과의 분리를 거부할 뿐 아니라 남성과 분리한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거나 분석하지 않아 레즈보포비아 역시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판은 이성애적 관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리주의의 강조로 귀결하게 된다. 이성애적 관계로부터 레즈비언 억압에 주목하게 된다면 레즈비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통제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여성 억압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여성이 ‘레즈비언’이 될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는 이상 여성의 자유는 성취될 수 없고, 이성애 페미니즘의 개량주의적 접근으로 남성을 설득하는데 소진되던 에너지는 이제 분리주의라는 급진적인 정치학으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1]
5 권력의 징표로서의 섹슈얼리티
남성의 권력의 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이기 때문에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을 가질수록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명의 남성하고만 섹스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한다. [2]
여성은 남성의 벗은 몸을 보고 공포를 느끼지만, 남성에게 여성의 벗은 몸은 쾌락의 대상이다.[2] 여성은 여러 남성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하지만, 남성은 여러 여성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황홀해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차이는 여성이 '호스트 바'에 갈 때 혼자 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여성이 돈을 지불하며 남성의 몸을 볼 때, 구매자인 여성은 판매자인 남성과의 개인적 성별 위계를 상쇄하기 위해 집단을 이루어 가는 경우가 많다.[2]
5.1
남성들끼리 연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오가는 이야기는 '여자와 어디까지 갔냐'일 것이다. 손 잡기, 키스, 애무, 성관계……, 섹스'까지' 했다면 흔히 '갈 데까지 갔다'고 말한다. 갈 데까지 갔다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남성 문화는 여남 관계의 진도를 대화나 가치관의 공유보다는 상대 여성의 몸에 어디까지 '도달'했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는 남성의 본능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학습의 결과이다.[2]
5.2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 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섹스를 잘하거나 못할 때, 그에게는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이 연상된다. [2]
5.3
남성들에게 성과 폭력('박진감', '거친', '짜릿한', …)은 분리되지 않는다. 남성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생기지만, 분노했을 때 성 욕구가 일어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된다는 데 있다. 남성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건 저항을 '자극'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싸움 후 섹스로 화해'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생각한다.[2]
6 참고자료
Why Are Young People Having So Little Sex?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8/12/the-sex-recession/573949/
7 각주
- 김지혜,「레즈비언/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 서구 레즈비언 이론의 발전과정과 역사적 의의 연구」
- 2.0 2.1 2.2 2.3 2.4 2.5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