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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3:33

古代韓國語

중세 한국어(10세기 초엽 ~ 16세기 말) 이전에 쓰인 한국어(韓國語)이다. 즉 남북국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그 이전에 쓰인 한국어를 가리킨다.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어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모습을 알 수 없다. 또 삼국의 언어 중 고구려어(高句麗語)와 백제어(百濟語)는 역사서에 나타나는 지명, 인명의 한자 표기 등에서 약간의 형태소가 밝혀졌을 뿐, 언어의 전체상은 알 수 없다. 언어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은 자료가 대체로 많이 남아 있는 신라어뿐인데 그마저도 현존하는 자료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언어의 전체상을 파악하기는 역시 어렵다. 아래에 신라어(新羅語)대한 정보를 기술한다.

역사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제기된 학설을 적어보자면

한반도 남부 진국(辰國)과, 원삼국(마한, 진한, 변한)의 한국어는 중국어와 유사하다는 설이 있다. 고대 중국어는 교착어의 성질을 지녔다고 추측되는데 한반도 남부도 고대 중국식 교착어였다고 추정한다. 정설인지는 모른다.

북방의 언어와 남부의 언어는 서로 달랐다고 한다. 원래 마한은 남방의 언어였지만 백제에 통합되면서 공용어가 북방 출신의 백제어가 되었다고 하고 진한은 남방에서 자체적으로 신라로 통합되면서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달라졌다고 한다. 다만, 백제가 공용어와 민간어가 달랐다는 것에도 논란이 있다.

훗날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한반도의 언어는 신라를 중심으로 통합되었고 신라어가 중세 국어로 변화하게 된다.

자료와 표기

고대 한국어 시기에는 한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역사서에 나타난 지명과 인명, 이두, 향찰, 구결과 같은 한자 표기된 자료에 한정된다. 한국어가 한자에 의하여 암시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그 어형을 정밀하게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아래에 몇 가지 복원 예를 제시한다.

삼국사기 권34의 신라 지명 ‘永同郡本吉同郡(영동군은 원래 길동군이다)’의 기술에서 ‘永’과 ‘吉’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한자 부분의 원래 한국어는 ‘*길’로 추정되는데, ‘길’과 같은 소리의 한자로 표기한 것이 ‘吉’이며 형용사 ‘길(다)’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로 표기 한 것이 ‘永’이다. 여기서 신라어에서 ‘길다’의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현대어와 같은 ‘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향가 “처용가”에 나타나는 향찰 표기 ‘遊行如可’는 ‘*놀니다가’ 또는 ‘*노니다가’로 해석된다. ‘如可’는 이두에서 ‘다가’로 읽히며 향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추정된다. ‘遊’, ‘行’은 각각 중세 한국어 ‘놀-’, ‘니-’ (가다)와 관련되며 ‘遊行’은 그 합성어 ‘노니-’(놀아다니다)였다고 추측된다. 다만 중세 한국어에서는 ‘놀-’의 받침 소리 ‘ㄹ’이 탈락되지만 고대 한국어에서는 탈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발음 추정하기

옛 한국어는 문서로 기록할 때 한자로 음차가 되어있으며[1], 이때 음차에 사용된 한자 발음은 옛날 한자의 발음이다. 그러므로 옛날 한자 발음을 알아야 추론이 수월하며 이 용도로 윅셔너리를 사용하면 좋다. 옛날 한국어를 음차한 한자를 하나씩 윅셔너리에 검색해서 old chinese, middle chinese 발음을 찾아보자.

한자로 표기된 고대 한국어의 발음을 추정할 때 어려운 점은 한자를 음독해야할지 훈독해야할지 난해하다는 것이다. 어느 것은 음독으로, 어느 것은 훈독으로 그대로 읽고, 어느 것은 훈독으로 하되 훈독을 해서 나오는 발음과 동음이의어 관계인 다른 어휘로 읽어야 할 때도 있다. 옛날 사람들이 표기를 중구난방으로 해놔서 난감하다.

게다가 옛날 한국인이 한자로 음차를 하면서 나름 한자뜻도 한국어의 뜻에 맞추려고 노력을 한 경우에는 어려움이 가중된다. -夫로 표기된 옛날 한국어를 -보로 읽을지, -아비로 읽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고대 한국어를 한자로 음차할 때 어느게 어간이고 어느게 접두사, 접미사, 조사인지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품사를 가려내는 것도 힘들다. 고대 한국어가 음차된 한자는 모두 명사만 실은 게 아니다. 옛 한국어의 기본형, 활용형 가운데 어느 것인지 표시도 안 돼있으니 더 난감하다! 조상들이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또한 한자 한 글자가 고대 한국어의 음절 하나로 1:1 대응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한자로 쓰인 옛 한국어 단어 발음을 그대로 읽은 발음 전체에서 옛 한국어의 실제 단어의 원형을 뽑아내야 한다.

음운

자음

고대 한국어에는 예사소리와 거센소리의 대립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권3) ‘或作異次, 或云伊處, 形音之別也, 譯云厭也(異次라 하거나 伊処라 하거나 하는데 사투리 차이로, 번역하면 ‘싫다’란 뜻이다)’의 ‘次, 處’는 둘다 차청자(次淸字)인데 ‘異次, 伊處’는 중세 한국어 ‘잋-’과 관련되는 단어이다. 그 한편, 된소리에 관해서는 그 존재를 명시해 주는 자료가 없다.

중세 한국어에 있었던 어중 마찰음 ‘ㅸ’[β,v], ‘ㅿ’[z]이 고대 한국어에서 어떤 소리였는지는 몇 가지 가설이 있지만 파열음 ‘*ㅂ, *ㅅ, *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또 이와 관련하여 중세 한국어에서 일부의 ‘ㄹ’이 고대 한국어에서 ‘ㄷ’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된다. 예 : 波珍 *틀:첫가끝(중세 한국어 : 틀:첫가끝)‘바다’.

모음

신라어의 단모음은 중세 한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7개 모음 체계였다고 추정되는데 /ㅣ/에 두 가지가 있었다(/i/, /ɨ/)고 하는 가설이 있다. /ㆍ/(아래아)는 고대 한국어에서 원순성이 강한 [ɔ]였다고 추측된다. 중세 한국어에서 일부의 /ㅓ/는 고대 한국어에서 /ㆍ/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이 있다고 추정된다.

문법

고대 한국어의 주된 어미류는 아래와 같다. (   ) 내는 중세 한국어형이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느냐 모음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또 홀소리어울림에 따라 어미류에 몇 가지 이형태가 있을 수 있었지만 고대 한국어에서는 이 형태가 있었는지 명시되지 않는다. 예컨대 중세 한국어의 대격은 ‘-ㄹ~틀:첫가끝~틀:첫가끝’이며 고대 한국어에서도 양상이 유사하다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데 실제 표기는 ‘乙’ 단 한 가지다.

  • 어미
    • 종결형 ― 如(-다), 古(-고)
    • 관형형 ― 尸(-ㄹ), 隱(-ㄴ), 期
    • 연결형 ― 古・遣(-고), 弥(-며), 良(-아/-어), 如可(-다가)
  • 선어말어미

같이 읽기

참고 문헌

  • 金芳漢(1983) 《韓國語의 系統》, 민음사
  • 남풍현(2000) 《吏讀硏究》, 태학사
  • 박종국(1996) 《한국어 발달사》, 문지사
  • 李基文(1998) 《新訂版 國語史槪說》, 태학사
  1. 한글이 없던 시기라서 이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