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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3:43

고딕(Gothic)은 서양미술 양식 중 하나다. 예술사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 이후인 12세기 중반에 등장하여 15~16세기 사이 르네상스 양식이 등장할 때까지 존재한 예술양식을 칭한다. 고딕 양식은 주로 건축양식으로 표현되지만 조각회화, 예술 공예품 분야도 포괄하는 명칭이다.[1]

명칭

고딕양식이 사용되었던 시기에는 고딕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는데 당대의 건축 관계자들은 자신의 건축물(즉,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최신 양식(opus modemum)"이라 불렀고, 13세기 독일 연대기 작가들은 "프랑스 양식(opus francigenum)이라고 불렀다.[2] 고딕이란 명칭은 1440년, 이탈리아의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가 '중세적인 글쓰기'를 설명하면서 gothicus라는 라틴어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였다.[3] 이후, 16세기에 바사리(Vasari)는 자신의 저서 『예술가열전』에서 중세시대 건축양식을 비판할 때[4], 중세시대의 모든 건축을 튜튼(독일)적(tedesco) 양식이라고 불렀는데 tedesco라는 이탈리아어 형용사를 1610년, 프랑스인 예수회 신부가 라틴어 gothicus로 변역하여 사용된 것이 '중세적'이란 의미의 형용사 고딕이 건축용어로 사용된 최초의 경우로 본다. 1619년에는 프랑스어 형용사 gothique가 처음으로 건축용어로 사용되었고 1708년 혹은 1716년에는 명사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고딕이란 용어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서야 부정적인 의미를 벗어나게 되었다.[5]

19세기 초반에 고딕양식은 로마제국과 르네상스 사이, 중세 전체의 건축과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로마네스크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 오늘날의 의미인 1140~1240년경 사이에 형성되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 건축양식과 예술기법을 지칭하게 되었다.[6]

특성

형태적 특성

파일:고딕.PNG
고딕 성당의 각 부분 명칭

종탑(Tower)

교회 건물 꼭대기나 옆에 세워서 종을 매달아 치도록 만든 탑을 지칭한다. 건물 꼭대기에 세워진 것과 교회 옆에 독립하여 세워진 것이 존재하며 을 울려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하거나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종탑은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인간의 신에 향한 의지를 수직성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딕양식에서 종탑은 서쪽으로 면하는 입면부 상단에 설치되었으며 주로 남북의 두 개의 탑을 두고 있지만 한 개의 탑을 두는 경우도 있다.[7]

중앙 첨탑(Spire)

내부공간에서 신랑(身廊, Nave)과 트란셉트(Transept, 교차랑/횡단량)이 교차되는 부분의 넓은 공간은 교차 볼트(Cross Vault, 교차궁륭)에 의해 극대화 되는데 교차되는 부분이 외관에서는 중앙 첨탑으로 나타난다. 중앙 첨탑은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는 없었던 고딕건축만의 특징이며 플라잉 버트레스에 의해 끝이 뾰족한 포인티드 아치형의 볼트에 생기는 볼트에 의해 횡력을 저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로 향하는 방향에서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아 언제라도 위쪽으로 증축할 수 있었다.[8]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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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버트레스

플라잉 버트레스는 벽이 없이 얹혀 있는 무거운 지붕으로부터 아래 지면까지 간접적인 힘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리브 볼트의 출현으로 불트 구조의 하중은 전부 리브가 받게 되었고 이를 한곳에 모여서 주형을 만들게 되어 이부분에 작용하는 횡력을 매우 크게 되었다. 고딕양식 초기에는 6분 볼트와 정방형의 2중 베이 체계를 보였는데 이는 볼트의 횡력을 외부에서 지지할 수 있게 된 4분 볼트 체계와 플라잉 버트레스의 출현 계기가 되었다. 신랑(身廊)과 아일이라고 불리는 통로 사이와 같이 벽체 하부의 아치를 지지한 곳에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법을 사용하여 횡력을 바깥쪽의 버트레스에 전달시켰다.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는 통로의 지붕보다 높게 통로 바깥에다 버트레스를 만들고 통로의 지붕 상부 공간에다 신랑(身廊)의 볼트가 집중하는 곳에서부터 바깥쪽 버트레스로 궁형의 아치를 구축하여 신랑(身廊)의 볼트로 부터 오는 횡력을 바깥쪽의 버트레스에 전하게 하여 그 횡력을 지지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는 고딕양식에서 보이는 독특한 수법으로 버트레스 상부에는 소 첨탑을 붙여 외관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플라잉 버트레스의 완성으로 볼트에 작용하는 하중은 플라잉 버트레스에 의해 지지하게 되어 신랑(身廊) 외벽에 넓은 창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벽면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건물 입면에 대한 장식적 수법은 창에 집중되어 고딕적인 특징을 보이는 장식 격자(裝飾格子, Tracery)가 등장하였고 창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게 되었다.[9]

소 첨탑(Pinnacle)

플라잉 버트레스를 지지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부축벽 상부에 부축벽의 무게를 증가시켜 버트레스가 받는 횡압력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키면서,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되었다.[10]

첨두아치(Pointed arch)

반원아치에 비해 높이의 자유로운 조절이 가능하고 횡압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떤 높이의 천정에서도 쓸 수 있다. 첨두아치는 천정뿐만 아니라 창이나 출입구 같은 개구부, 아케이드(Arcade)나 가구의 문양, 일반장식에 이르는 넓은 곳에서 사용되었다. 첨두아치는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사용되었으며 로마네스크 시대에도 가벼운 첨두아치가 사용되었으며 고딕 시대에는 건축 구조뿐만 아니라 장식에까지 첨두아치가 사용되었다.[11]

기념 삼문

팀파늄(Tympanum)이라는 출입문 위에 인방과 아치에 의해 둘러싸여진 공간이나 페디먼트(Pediment)에서 후퇴된 정면부분으 팀파늄에는 성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여러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이런 조각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자들이 성서 내용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 팀파늄이 새겨진 정면의 세 문을 기념 삼문이라 지칭한다.[12]

클리어스토리(Clearstory)

성당의 신랑(身廊)에 존재하며 피어(Fier, 기둥) 사이에 두어지는 가로로 길게 뚫린 창을 말한다. 클리어스토리 창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전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채워진다.[13]

공간적 특성

리브 볼트(Rib-Vault)

파일:리브볼트.PNG
리브 볼트

로마 시대에는 넓은 공간을 덮기 위한 지붕을 제작하기 위해 배럴 볼트와 그로인 볼트를 사용하였지만, 11세기 당시 유럽은 로마식 콘크리트가 사용되지 않아 배럴 볼트의 효율이 높지 않은 편이였다. 그래서 석재만으로 보다 효울적인 볼트 구조법을 구상하였고 여기서 크로스 볼트가 등장하였다. 하지만, 크로스 볼트는 능선의 안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구단아치가 홍예틀[14]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균열이 생기기 쉬웠고 균열이 발생한 볼트의 능선에 따라 아치를 덧붙여 보강한다는 것에서 나온 것이 리브 볼트다. 리브 사이에 석판을 끼울 수 있어 넓은 공간을 덮을 수 있고 리브에 전달된 축 압력은 벽 전체에 작용하지 않고 기둥으로 전해지게 된다. 리브 볼트를 설치하는 경우, 평면축에 평행하고 경간[15]이 짧은 2개의 벽 리브(Pier-arches, Formeret)와 벽 리브의 축에 직교하는 경간이 비교적 넓은 2개의 구단아치, 그리고 2개의 대각선 아치가 발생하여 총 6개의 아치가 생기게 된다.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처럼 6분 볼트와 정방형의 2중 베이 체계를 이루었지만 플라잉 버트레스의 출현으로 장방형의 4분 볼트 체계로 변화하였다.[16]

트리포리움(Trif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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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포리움

트리포리움은 주 네이브(Nave, 身廊) 아케이드와 클리어스토리 층 사이에 있고 아일(Aisle, 통로)의 지붕틀 버트레스의 네이브쪽 측면을 막아주는 갤러리 층으로서 아케이드를 통해 네이브로 열려져 있는 부분을 칭하며 고딕 성당에서의 수직성을 강조시키고 상승적 효과에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 과도기 시대에는 트리포리움과 트리뷴이 같이 나타났지만 첨두형 시기에는 트리포리움만 남게 되고 바깥쪽으로는 플라잉 버트레스가 횡압력을 받게 되었다. 플라잉 버트레스의 등장으로 트리뷴이 사라지고 횡압을 지지하던 트리뷴의 역할을 플라잉 버트레스가 대체하게 되어 트리포리움만 남게 되었다.[17]

장식적 특성

스테인드글라스(Staind glass)

기록상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9세기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나 현존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중 제일 오래된 것은 11세기 전반의 것으로 아우구스부르그 성당의 돔 창이라고 불렀다. 12세기에 들어서는 철골에 색유리가 끼워져 색깔을 입힌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온 광선에 의해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당 내부의 장식적인 효과를 낸다. 당시, 하느님은 빛이라는 영적, 상징적 의미에 바탕을 두어 내부공간에 빛을 많이 수용하고자 하였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을 가능한 많이 수용하기 위해 천정이 높이지고 클리어스토리 역시 높아지게 되었다.[18]

장식 격자(Tracery)

파일:트레이서리.PNG
장식격자(트레이서리)의 종류


고딕 건축은 창의 면적을 가능한 크게 하고 창은 기둥사이에 가득 설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였는데 그 중, 정면에서 초점이 되는 커다란 원형의 장미창(Rose window)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며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창틀부분은 원주나 구형으로 장식되어 있고 창의 형태도 대부분 첨두형 아치로 되어 있다.[19]

팬 볼트(Fan vault, 선상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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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볼트(선상 볼트)

팬 볼트는 영국의 고딕건축에서 보이는 특성으로 구조미보다는 장식에 보다 치중한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엑스트라 리브가 존재하는 볼트를 가끔 사용하였는데 여기서 나누어진 표면은 부채 모양과 유사하다. 대각선 리브 이외에 부가적인 리브가 가해져 성형볼트 및 야자형 볼트가 유행하였다가 리브가 무한하게 증가하는 망상 볼트가 사용되다가 팬 볼트로 되는 과정을 거쳤다.[20]

역사

프랑스의 고딕건축

고딕양식의 발전과정은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분류되지만 프랑스 고딕학자들이 주로 다루는 4의 분류 방법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나뉘어 진다.

과도기 시대(Transition)

1125년에서 1190년대 사이에 해당되며 첨두형 볼트와 클리어스토리로 신랑(身廊)을 채광하도록 하였다. 클리어스토리 아래 돌출된 좁은 유보회랑(Ambulatory)의 트리포리움(Triforium)과 트리뷴(Tribune)은 높은 벽으로 하여금 횡력을 지지하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는 트리뷴측 외벽에는 설치되었지만 트리뷴의 다락에 해당되는 트리포리움 측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때때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처럼 둥근 아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 아케이드의 지주는 다소 굵은 기둥으로 구성되었고 그 윗부분에는 작은 샛기둥을 두어 두 개의 아치를 지지하도록 하였다. 공통적으로 4계층구성과 6분 볼트를 보이며 신랑(身廊)의 벽은 아케이드, 트리뷴, 트리포리움, 클리어스토리의 4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플라잉 버트레스가 발달되지 않았다.[21]

첨두형, 고전기(Lancéolé)

1180년에서 1250년대 사이에 해당되며 창문의 아치와 아케이드가 뾰족하게 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둥근창이 클리어스토리의 형식으로 생겨났다. 플라잉 버트레스가 나타나면서 볼트의 횡압을 유지하던 트리뷴이 사라져 플라잉 버트레스가 그 역할을 대체하였으며 벽면의 구성은 3계층구성으로 변하였다. 정방형의 볼트에서 장방형의 4분 볼트로 바뀌었으며 신랑(身廊)과 아일(Aisle)을 똑같은 베이(Bay) 수로 분할할 수 있게 되었다.[22]

방사형, 전성기(Rayonnant)

1250년에서 1375년 사이에 해당되며 고딕식 기법의 절정에 이르러 벽은 최소화되었고 기둥과 기동사이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졌을뿐만 아니라 트리포리움의 벽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었다. 클리어스토리내의 장식격자는 트리포리움의 수직선을 연장한 선상에 놓여 있다. 성가수석(聖歌隧席)이 유보회랑(Ambulatory), 클리어스토리, 트리포리움과 1층의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와 창하나 밖에 없는 것이 특징이다.[23]

화염식, 후기(Flamboyant)

1376년 이후에 해당되며 백년전쟁과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인구가 감소되어 사원 공사는 중단되고 교구 사원을 중심으로 14세기 말 이후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2계층구성을 기본으로 영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속주(束柱)의 많은 샤프트는 기둥에 융합되어 능선으로 흔적만 남거나 다시 원형 기둥으로 돌아갔으며 능선이 나선 형상으로 기둥을 에워싸는 것도 있었다. 주두(柱頭, Capital)는 소멸되고 각 리브(Rib)는 나뭇가지와 같이 기둥으로부터 갈라져 나갔다. 이러한 특징은 15세기에 주로 나타났으며 16세기에도 일부 남아 있었다. 창의 장식격자는 곡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화염이 타오르는 모습이 되어 프랑스 후기 고딕건축을 화염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4]

영국의 고딕건축

영국은 5세기 중엽 말부터 6세기에 이르기까지 앵글로색슨족이 세력을 잡은 이후 문화가 발달하고 1066년에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부터 노르만 문화가 융성하게 되었다. 이 때, 건축된 노르만 건축을 영국 로마네스크 건축이라고 칭하며 12세기말, 1189년 헨리 2세 말기에는 고딕 건축의 발전이 시작되어 리차드 1세부터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게되는 15~1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의 건축 양식을 영국 고딕 건축으로 칭하고 있다.[25]

초영식(Early English style)

1189년에서 1307년 사이에 해당된다. 해당 시기의 건축양식은 노르만식에서 연속하여 발전된 것으로 구조적으로 노르만식과 유사하여 주로 절석적(切石積)과 큰 버트레스를 사용하고 플라잉 버트레스가 나타났다. 당시의 교회 건축은 노르만 시대의 것을 답습하여 큰 변화는 없지만 건축 의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보였는데 지붕 단면이 정삼각형에 가깝게 변하고 소 첨탑을 많이 사용하였다. 볼트 구조가 없는 건물은 대부분 보임 천장으로 되어 있고 개구부는 노르만 양식보다 높아 폭이 좁아졌다. 반원형 아치는 사라졌고 기둥은 소규모 건물에서는 원형이나 다각형, 대규모 건물에서는 다발 기둥(Clustered Pier)가 사용되었다.[26]

장식식(Decorated style)

1307년에서 1377년 사이에 해당되며 미들 포인티드식(Middle pointed style), 에드워드식(Edward style)이나 14세기식이라고 칭한다. 이전 시대에 비해 장식이 풍부해지고 기하학적이거나 곡선적인 모티프(Motif)를 주로 사용하였다. 내부 천장의 볼팅은 리브수가 증가하였고, 트리포리움이 낮아지고 클리어스토리가 커졌고 플라잉 버트레스가 발전하였다.[27]

수직식(Perpendicular style)

1377년에서 1485년 사이에 해당되며 15세기식이라고도 한다. 개구부의 장식격자가 돋보이며 버트레스가 발전하여 평골(平滑)한 벽면에 수직선이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이전보다 창이 커져 커져버린 창을 처리하기 위해 중간 홈대(Transom), 문설주(Mullion) 등으로 구획하고 수직선 멀리언(Mullion)으로 강조되고 멀리언 수도 증가하였다. 구조면에서는 네이브의 아케이드가 높아지고 아일의 지붕이 평탄하게 되고 트리포리움이 사라지고 클리어스토리가 커졌다.[28]

튜더식(Tudor style)

1485년에서 1558년 사이에 해당되며 16세기식이라고도 한다. 15세기 이탈리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어 건축 양식에서도 고대 로마 양식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상이 생겼는데 튜더식은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를 잘 나타낸 것은 코니스의 몰딩 또는 튜더 플라워라는 장식등이 있으며 건축 자체는 수직식의 연속에 해당된다.[29]

틀:서양 예술의 역사


  1. 박민수, 「중세 한자도시의 건축과 예술」, 『독일언어문학』, 제52집, 2011, p.210
  2. 이은주, 「고딕양식의 탄생과 사상적 배경 : 생 드니 성당을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예연구 = Etudes de la culture françecise et des arts en France』, 제37집, 2011, p.389
  3. 송기형,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의 연속성(1) : 초기 기독교의 교회당 건축」, 『프랑스학 연구』, 통권 제33호, 2005, pp.398-399
  4. 이은주, op.cit., p.390
  5. 송기형, op.cit., p.399
  6. Ibid., p.399
  7. 신현숙, 「근·현대 건축에 나타나는 고딕건축의 영향에 관한 연구 : 교회 건축을 중심으로」, 동의대학교 석사논문, 2004, pp.21-22
  8. Ibid., p.23
  9. Ibid., pp.23-24
  10. Ibid., p.25
  11. Ibid., p.25
  12. Ibid., pp.25-26
  13. Ibid., p.26
  14. 아치, 볼트, 돔을 건설할 때 사용되는 일시적인 테두리.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센터링(Centering)이라고도 한다.
  15. 다리, 건물, 전주 따위의 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그 사이의 거리. (네이버 국어사전)
  16. Ibid., pp.27-28
  17. Ibid., pp.28-29
  18. Ibid., p.31
  19. Ibid., p.32
  20. Ibid., p.32
  21. Ibid., p.8
  22. Ibid., p.9
  23. Ibid., p.10
  24. Ibid., p.11
  25. Ibid., p.12
  26. Ibid., p.13
  27. Ibid., pp.13-14
  28. Ibid., p.14
  29. Ibid., pp.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