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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官渡大戰)은 중국 후한 말의 군벌 조조원소가 시기에 관도(官渡)에서 벌인 전투다. 조조와 원소의 운명을 판가름 지은 전투이자 소설 《삼국지연의》 초반부의 하이라이트로, 규모로 치자면 적벽대전, 이릉대전에 필적한다.

1 개요

본래 원소와 조조는 공손찬-원술 동맹과 맞서던 일종의 동맹관계였다.[1] 하지만 조조가 천자를 자칭한 원술을 거꾸러뜨리고, 원소가 자기보다 세가 강했던 공손찬을 몰아넣어 죽임으로써, 원소에게 조조는 천자라는 대의명분을 가진 무시못할 존재가 되었고 조조에게 있어서도 원소는 국경을 접한 자기보다 큰 세력이라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황제를 끼고 있는 조조와 당대 최강의 세력이었던 원소의 결전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2 전개

2.1 전쟁 시작 전 양측의 상황

조조는 후술할 유비의 반란으로 인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전력을 깎아먹었다. 거기에 조조와 원소는 차지한 영토가 똑같은 4개 주였지만, 조조는 민심이 등을 돌린 서주, 친 원소 세력이 많아 전쟁이 시작되자 반란을 일으켰던 예주, 동탁 시대의 포학으로 너덜너덜해진 사예 등, 원소에 비해 전력적인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반면에 원소는 당시 가장 부유한 지방에 속했던 유주, 자신이 오랫동안 다스려온 기주와 공손찬과 흑산적을 토벌하고 모은 군사력, 오환을 비롯한 여러 이민족의 도움까지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지자가 원소 쪽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양군의 전력차는 이리도 뚜렷했다.

믈론 원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내부의 다툼이었는데, 전풍, 저수 등 기주에 연고를 둔 호족 세력과 곽도, 심배 등을 앞세운 원소의 본당인 예주 출신 세력의 다툼이었다. 원소는 이 다툼에서 전풍, 저수의 견해를 채용하지 않고 원소 스스로가 친위세력이라 인식한 곽도나 심배의 계책을 썼다. 이것이 후에 어떻게 돌아올 지 원소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2.2 유비의 배반

유비는 원술의 잔당을 친다는 명목으로 서주를 점거하고 조조는 왕충유대를 보내 토벌케 하니, 이때가 199년이었다. 하지만 왕충과 유대는 오히려 유비에게 완패. 이에 조조는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서주로 가 유비를 쳐 없앤다. 하지만 이 승리는 전략적인 면으로는 승리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 유비는 결국 살아남아 원소에게 도망쳤고, 서주의 민심은 안 그래도 서주대학살 때문에 좋지 않던 판에 이번 공격으로 완전히 조조에게 등을 돌렸다.

원소는 유비가 자기에게 찾아오자 200리 앞까지 마중을 나왔으며, 유비가 헌제에게 받은 밀명을 명분으로 하여 조조에게 선전포고를 날린다.[2]

청주에선 아들 원담을 시켜 군사를 남하시키고, 남쪽에선 손책을 꼬드겨 올라오게 했으며, 유표 역시 언제 조조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조에 대한 원소의 완벽한 포위진이었다.

2.3 백마 전투

원소는 지구전으로 끌고 가자는 전풍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듬해 2월, 곽도, 순우경, 안량을 파견해 백마에 포진한 조조군을 공격하게 했다. 말하자면 선봉대의 역할이었다.

조조는 순유의 계책에 따라 연진에 주둔하여 미끼로서 원소군을 분단시켰다. 그 후 장료관우를 선봉으로 안량을 공격했는데, 이 전투에서 관우는 적 진영에 파고들어 직접 단칼에 안량의 목을 베었다.

羽望見良麾蓋, 策馬刺良於萬眾之中, 斬其首還, 紹諸將莫能當者, 遂解白馬圍.
관우가 멀리서 안량의 대장기를 응시하더니, 말에 채찍질을 해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 목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여러 장수들 중에서 이를 능히 당해낼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백마의 포위가 풀렸다.[3]

이에 곽도와 순우경은 백마의 포위를 풀었고 그 틈에 조조는 백마의 군대와 백성들을 철수시킨다. 결과적으로 원소는 백마와 연진이라는 주요 거점을 확보했고, 조조는 남쪽으로 후퇴한다. 원소는 문추를 보내 조조를 쫓게 했으나 문추는 서황에 의해 죽고 격퇴된다.

원담은 서주에서 장패라는 숨은 명장에게 발이 묶였다. 손책은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표는 우유부단하여 시세가 좀 더 확실하게 결정된 다음에 움직이려고 했다. 서전은 원소의 패배였다.

2.4 관도대전

선봉의 전투는 조조 측 승리였으나 원소는 황하를 건너 도하하기를 성공했다. 저수는 지구전을 하자고 계책을 올리나 원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조는 후퇴하여 관도에 진을 치고, 원소는 수십리에 걸쳐 진영을 펴고 서서히 조조를 압박해나갔다.

마침내 양군이 회전을 벌였는데, 조조는 이 전투에서 엄청난 패배를 당하고 만다. 조조는 뒤로 한 발 더 물러나 관도에 진을 치고 버텼다. 원소는 토산을 쌓거나 땅굴을 뚫는 등 조조에게 맹공을 퍼부으나, 조조도 발석차를 만들고 해자를 파는 등 갖은 수를 다하여 원소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낸다.

점차 전투는 지구전으로 흘러갔다. 조조는 원소에 비해 군량이 적어 고전하고 있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 허창으로 물러나는 게 어떠할지 의견을 구했지만 순욱은 이길 수 있다며 조조를 격려했다.

한편 여남에서는 조조가 상황이 나빠지자 그 틈을 타 유벽이 반란을 일으켰고 원소는 유비를 보내 호응케 했다. 조조는 조인을 여남에 보내 유비와 유벽을 격파했다. 유비는 유표에게로 도망쳤다.

그러나 국지전에서 조조가 아무리 승리해도 상황은 점차 조조에게 나빠져만 가고 있었다. 조조의 영토 각지에서 원소와 호응해 반란이 일어났다. 그렇게 조조가 패배할 것만 같았다.

이 무렵 원소군의 모사인 허유는 비리가 탄로나 가족들이 투옥되었다. 허유는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군사를 나눠 허창을 습격하자는 책략을 내놓았지만 원소는 관도에서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결착이 날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책략을 거부했다. 이에 허유는 원소에게 앙심을 품고 조조에게 투항하며, 원소군의 병량이 오소에 있으니 이곳을 기습할 것을 진언했다. 모든 책사들이 이를 의심했으나 오직 순유와 가후만이 이 의견을 지지했다. 조조는 즉시 행동을 개시해 자기가 직접 병사 5천을 이끌고 오소를 습격해 군량을 불태우고 군량을 지키던 순우경의 목을 벤다.

원소는 오소에 원군을 보내는 한 편, 장합고람에게 주력으로 조조의 본진을 공략케 했다. 하지만 결국 오소는 함락되고 장합과 고람은 조조의 본진을 공략하지 못했다.

관도대전의 승패의 향방을 결정했던 이 싸움 끝에, 원소는 예전부터 품고 있었던 불안요소, 내부 다툼을 시작했다. 원소군 내부에서는 이 패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로 끊임없이 다투었다. 장합과 고람은 책임을 자신들이 지게 될 것 같자 배신하여 원소를 공격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장합에게 공격당한 원소는 800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급히 도망쳤다. 총사령관의 행방과 생사조차 알지 못한 원소의 대군은 결국 무너졌다. 원소의 완벽한 패배였다.

3 그 후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거의 완벽하게 조조에게 패했으나 이것으로 원소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관도대전 이후 조조에게 호응해서 적지 않은 호족들이 반란을 도모했으나 원소는 모두 진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조는 겨우 급한 불을 끈 것에 지나지 않았고, 이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원소군의 국력은 조조군을 능가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원소라는 거인에게 조조라는 난쟁이가 도전하는 격이었다면, 관도대전 이후에는 조조와 원소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싸움에서 조조가 원소를 무찔렀기에, 위나라라는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원소 측은 이 전투 이후 악재가 겹쳤다. 원소는 관도의 패전 이후 반란을 진압하는데에는 성공했으나 병석에 드러누워 피를 토하며 죽었다. 조조는 원소가 죽자 군사를 일으켜 기주를 공격했으나 원상에게 격파당하여 철수한다.

하지만 그 후 원소의 아들들인 원상과 원담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내분을 일으켰고, 조조는 원담과 연합하여 원상을 멸망시켰다. 조조는 뒤이어 원담과 싸워 원담을 죽이고 기주를 평정했으니 205년 1월의 일이다.

이후 명실공히 조조는 당대 최강세력으로 떠올랐다.

  1. 물론 동맹관계라 했지만 실질적으로 조조는 원소에게 종속된 위치였다고 할 수 있었다. 조조가 여포에게 연주를 공격당하면서 몰리던 때, 원소가 아예 휘하로 들어오라는 제안한 것을 조조 본인이 진지하게 검토할 정도로 원소의 영향력이 훨씬 강했다
  2. 이것이 조조가 찬양한 진림의 격문이다.
  3. 정사에서는 연의와 달리 일기토가가 거의 서술되고 있지 않은데, 이 일기토는 그 많지 않은 일기토 중에서 가장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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