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김경언 (야구 선수)

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3:05

한화 이글스의 주전 외야수. 별명은 스즈키 이치로에서 따온 김치로였으나, 2015년부터는 특유의 구렛나루와 수염을 강제적으로 다 밀어버렸고, 시즌 초부터 대활약하면서 김혜자로 불리고 있다.

아마 및 기아 타이거즈 시절

부산 출신으로 경남상고에 진학, 경남상고의 펠릭스 호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맹타를 휘두르며 높은 기대를 받았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당시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2차 2라운드 전체 15순위로 지명되면서 고향을 떠나 10여년에 달하는 광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데뷔연도인 2001년에 신인임에도 불구, 65경기에 출장, 나름대로 준수한 타율(0.287)을 기록하여 높은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시즌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하며 2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 해태(이후 기아)의 외야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2005시즌이었는데, LG 트윈스에서 이적해온 이용규가 포텐을 터트리면서 단숨에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 2005~2008시즌동안 이용규는 기아 타선의 핵이자 핵심 외야수였고, 이용규에 비해 타격도, 수비도 밀리는 김경언은 2005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향곡선을 타게 된다.

당장 2005시즌 78경기 0.271의 성적을 기록한 김경언은 2006시즌에는 73경기 0.180으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안그래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판국에 성적도 떨어지면서 구단은 그를 잉여자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2007시즌에는 아예 1군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기아 외야진은 이용구가 중견수를 보고 있었고, 1루수였던 10년 3할 타자 장성호최희섭 입단 후 1루수 자리를 양보하며 좌익수로 전향한 상태였다. 우익수가 남아 있지 않냐고? 이용규에게 중견수 자리를 양보하며 우익수를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이종범이다. 도저히 김경언이 주전으로 뛸 자리가 없었던 것.[1][2]

그래도 백업 요원으로 기용할 법도 하지만 김경언은 감독들, 특히 조범현에게 기용받지 못했다. 백업이나 대주자정도로 기용할 수 있음에도 김경언은 2008년 8경기, 2009년 2경기 출장에 그치며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2군 선수로 전락했다. 더군다나 2009시즌에 신종길이 트레이드로 영입되면서 백업 요원으로서의 가치마저 사라져버렸다.

사실상 가망없는 2군 생활을 하던 김경언에게 2010시즌과 함께 장성호 파동이 발생한다.

장성호는 2009시즌 직후 FA 계약에서 홀대받자 팀을 떠나려 했으나 몸값과 부상 등의 문제로 타 구단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기아와 FA 계약을 맺으면서 타 구단으로 이적 추진이라는 단서조항을 내걸었다. 그러나 장성호라는 비싼 선수의 트레이드 조건을 맞추기에는 마땅치 않았는데, 당시 한화 이글스에 부임했던 한대화 감독이 장성호 영입을 강력하게 요청하면서 한화와 기아간에 3:3 트레이드가 발생하고, 김경언은 여기에 끼어 버린다!

물론 누가 봐도 메인은 장성호와 안영명이었고8개월 있다 안영명이 한화 복귀할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김경언은 비유하자면 1+1도 아니고 그냥 사은품 신세에 불과했다.[3] 더군다나 한화로 이적하더라도 기아때와 마찬가지로 장성호와 외야 경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화로의 이적은 그의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은퇴를 눈앞에 둔 선수의 대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한화 이글스 시절

2010 ~ 2013시즌

이적하자마자 한화의 얇은 선수층을 틈타 1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화의 주전 외야수는 최진행, 강동우가 확고부동했고 추승우, 이양기, 고동진이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경합중이었는데 셋 다 주전이라 하기엔 뭔가 애매해서…. 같이 이적해온 장성호는 한화에서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로 뛰었기에 외야에서 김경언보다 확실히 낫다고 할만한 선수가 없었다. 시즌 도중에 합류한 2010시즌 김경언의 성적은 50경기 출장에 0.253으로 딱히 특출나다고 하긴 힘들지만 경쟁자들에 비하면 확실히 나은 편이었다. 한때는 장성호가 덤이고 김경언이 메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체력 부족으로 8월부터 급격하게 하락세를 보였다.

2011시즌카림 가르시아가 대체 용병으로 오면서 주전 자리가 위태로웠지만 꾸준히 기용받았고, 전체적으로 장타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본인도 가르시아의 등장에 크게 긴장한 듯. 그러나 2012시즌에는 한화 이적 후 최다출장인 110경기를 뛰었다. 10시즌 이후 꾸준히 기용받으며 계속 주전으로 뛰었으나 시즌 내내 풀타임으로 뛰지는 못했는데, 05시즌 이후 한 번도 풀타임 1군을 소화한 적이 없다 보니 체력관리가 안된 것으로 보인다. 체력 외에도 부상으로 부득이하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한화 이적 이후 매 시즌마다 반짝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

2013시즌에는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2군 감독 이정훈의 추천으로 개막때부터 1군에 합류하며 맹타를 휘둘렀는데, 스프링캠프 불참에 따른 체력 부족을 이겨내지 못하고 6월 말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출장경기는 70경기에 그치고 말았다.

2014시즌 ~

김경언의 비상

13시즌까지 계속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시즌에 마침내 그 포텐이 터졌다. 분명 시즌 초에는 하위타선이었는데 하위타선을 혼자 진두지휘하더니 시즌 중반 이후로는 중위타선까지 올라왔다. 89경기 0.313에 52타점으로 규정타석에는 살짝 부족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 첫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다.사실 2009시즌에 5할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2경기 출장에 2타수 1안타라 문제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팀에서 내야의 김태균과 함께 고군분투하였으나 고질적인 체력 문제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점은 아쉬울 따름.

그래도 펠릭스 피에최진행이 붙박이로 있는 외야에서 가장 큰 경쟁자 고동진, 정현석에 비해 확연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즘이면 연경흠, 오재필, 강동우는 은퇴하고 송주호는 2군에서 기량을 올리는 중이었으며 이용규는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어서 김경언의 외야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시즌 종료 후 대망의 FA 자격을 취득하였는데, 김성근 감독 취임 후 마무리캠프 합류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김성근 감독은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다.대신 머리하고 수염은 밀렸다 이후 FA 협상이 난항을 겪자 마무리 캠프에서 먼저 나와 조기 귀국한 후 우선협상 마감일에 3년에 총액 8억 5천만원(계약금 3억, 1년차 연봉 1억 5천만원, 2,3년차 연봉 2억원)에 계약하고 팀에 잔류했다.

이에 대부분의 팬들이 적정한 가격이다, 1억내지 최소 몇천은 더 줘도 되지 않냐고 했을 정도로 착한 FA라고 칭송하였고,물론 깔 사람은 이것도 비싸다고 깠다. 2015시즌 개막과 함께 사상 최고의 가성비를 보여주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초반 3할 중반대 타율을 보여주며 상위타선에서 맹활약, 김혜자라는 별명을 만들어내며 한화의 상승세에 한몫하고 있다. 타율만 3할대인게 아니라 장타가 크게 늘었고 홈런과 타점에서도 팀 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특히 수치 외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타점을 올려 1~2점차 승부가 많은 한화의 초반 상승세에 기여하고 있다.

이후 이용규와 함께 팀 타선을 책임지며 팀 내 타율 2위, 리그 타율 3위(!!)에 랭크되었으나 5월 26일 기아와의 홈 경기 첫 타석에서 임준혁의 공에 다리를 맞고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그리고 애꿎은 추승우는 방출되는 나비효과...[4]

17시즌까지 알토란같은 활약을 해주었으나 싲ㄷㄴ이 끝나고 방츨당했다.

  1. 물론 이종범의 2007시즌 성적은 0.174로 폭망해서 은퇴를 강요받을 수준이긴 했지만 기아에서 이종범이란 선수는 단순히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종범은 귀신같이 2008년에 부활해버린다.
  2. 공교롭게도, 이때 기아의 주전 외야수 3인방은 김경언과 한화에서 조우한다. 장성호는 애당초 김경언과 함께 이적했고, 이종범은 은퇴 후 코치로서 2013~14시즌 한화에 있었으며, 이용규는 FA로 한화에 이적하여 2014시즌부터 팀 동료가 된다.
  3. 다만, 한대화 감독은 2015년 인터뷰에서, 충분히 성장하여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즉, 기아에서 전력외로 통보받은 알짜 선수라 여기고 잽싸게 채왔다는 것. 하지만 이 인터뷰는 김경언이 엄청난 활약을 하는 2015년에 나온 인터뷰임을 감안해야 한다.2015년 4월 19일, 스포츠조선
  4. 김경언이 부상으로 2군으로 빠지면서 한화는 내야 유망주 신성현을 1군에 등록했는데, 신성현이 육성선수(구 신고선수) 신분이어서 전체 엔트리 슬롯이 초과되자 외야자원 중 추승우를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