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김태완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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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의 내야수이다. 주 포지션은 1루수이며, 2013시즌 외야수 컨버전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난 적이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김태완과는 한자까지 똑같이 일치하는 동명이인이기에 둘을 함께 쌍태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본 항목의 김태완을 한태완, 삼성의 김태완을 삼태완으로 부르자는 의견도 일부 있다.(...)

1 아마 시절

중앙고등학교 클린업 트리오의 핵심이었으며 이때는 2루수3루수가 주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팀의 전국대회 성적이 좋지 않아서 2001년 화랑기 8강이 최고 성적일 정도였고, 본인 역시 프로에 즉시 지명받을 만큼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다. 무엇보다 본인도 프로선수가 아니라 체육교사 임용고시를 목표로 야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학창시절 성적은 운동부 선수라는 편견을 깨고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인지명따위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고,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가 2차 8순위(전체 60번) 지명을 했음에도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 본인도 프로팀 입단보다 임용고시 준비를 위한 대학 진학을 우선시해서 2002년 성균관대로 진학했다.

그런데 정작 성균관대 야구부에서 4번을 맡게 되면서 대학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한국 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우타거포라는 희소성과 함께 높은 평가를 받고 마침내 체육선생의 꿈을 접고 프로야구로 진로를 결정, 2006시즌 졸업과 함께 한화에 정식으로 입단했다.

2 2006~2010시즌 : 전성기

데뷔시즌에는 팀내 선배선수들에 밀려 1군에서 기 4타수 2안타에 그치고 말았지만, 07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기회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프로 데뷔와 함께 포지션을 1루로 바꿨고, 07시즌 61경기 94타수 23안타(0.245)로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08~10시즌 3년 동안 연속으로 거의 풀타임 주전을 소화해냈다. 특히 08~09시즌은 그의 커리어 하이인데, 08년은 383타수 102안타(0.266) 23홈런 73타점, 09년은 360타수 104안타(0.289) 23홈런 68타점을 기록, 2년 연속으로 20홈런을 때려냈다. 10시즌에도 홈런이 줄긴 했지만 370타수 98안타(0.265) 15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10시즌에는 상대의 집중견제를 받으면서도 최진행과 함께 중심타선을 이루면서 무너진 팀의 타선을 이끌었다.

다만, 2010시즌 중반 이후부터 기량이 저하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잔부상과 함께 경쟁자 영입에 따른 심리적 위축에 기인했다. 본래 김태완은 프로데뷔 후 1루수로 뛰었고, 09시즌까지 1루를 보던 김태균이 일본으로 이적하면서 주전 1루수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1] 그러다 부상을 입고 몸을 회복한 뒤 팀에 복귀하니 장성호가 트레이드로 온 상태였고 장성호는 1루 포지션을 고집하기에 이른다.[2]

안그래도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경쟁자까지 영입되자 김태완은 군복무 문제를 위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 11~12시즌에는 자리를 비웠다. 전역 후 상황은 그에게 매우 좋았는데, 김태균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로 인해 김태균과 김태완 사이에 끼게 된 장성호가 잉여자원으로 판단되어 김응룡에 의해 롯데 자이언츠송창현과 1:1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났고, 김강은 상술했듯 2012시즌 후 팀을 옮겨서 2007~2009시즌때처럼 1루는 김태균 주전 / 김태완 백업 체제로 돌아온 것이다.

3 2013시즌 ~ : 혹독한 부진의 시기

그러나 전역 후 첫 시즌인 2013시즌에는 상당히 부진했는데, 거포자원은 김태완을 활용하고자 김응룡 감독은 그를 외야수(그중에서도 우익수)로 컨버전시켰는데 이게 대실패로 끝났다. 안 그래도 발 느리기로 소문난, 심지어 김태균보다도 느린 김태완인데 2013시즌은 김응룡덕분에 한화의 외야펜스가 뒤로 밀려나면서 수비범위가 더더욱 넓어졌다. 이처럼 바뀐 수비위치의 악조건을 이겨내지 못한 데다 2년 동안의 공백도 컸고, 김성한 수석코치에 의한 무리한 타격폼 수정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2013시즌 93경기 279타수 64안타(0.229) 3홈런 23타점.

2014시즌에는 작년의 실패로 말미암아 1루수로 복귀했다. 그러나 부상이 여전하고 선구안은 나빠지면서 삼진비율이 높아져서 김태균과 경쟁한다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어서 지명타자로 돌려졌고, 그마저도 이용규와의 경쟁에서 밀려[3] 간간히 대타로나 투입되다가 시즌을 끝마쳤다. 2014시즌 89경기 186타수 48안타(0.258) 7홈런 39타점.

2015년에는 대학 시절 인스트럭쳐로 자신을 지도해준 김성근[4]이 부임함에 따라 살아나나 싶었지만 부상으로 14시즌 마무리캠프부터 15시즌 스프링캠프까지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집중했다. 가끔 1군 경기에 대타로 기용되는 게 고작이며 대타 성적도 신통치 않다.

결국 16년 방출되었고, 17년부터 넥센에서 뛰고 있다. 그러나 한화전 외에는 신통치 않은 성제을 내는 중.

4 주석

  1. 김태균이 09시즌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어서 사실상 주전 1루수를 보기 시작한건 09시즌부터였다.
  2. 장성호의 원 포지션이 1루이긴 하지만, 기아 타이거즈 시절 최희섭을 위해 1루를 양보하고 좌익수로 뛰기도 했다. 문제는 장성호가 좌익 말고는 외야 수비를 못본다는 거였고, 2010시즌 한화의 좌익수는 한대화 감독이 발굴해낸 최진행이 맡고 있었으며 최진행의 2010시즌은 커리어하이 시즌(홈런 32개)이었다. 결국 장성호는 1루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김태완으로서는... 장성호 영입은 김태완 외에도 1루 거포 유망주였던 김강에게까지 영향이 미쳐 김강은 결국 2012시즌 2차 드래프트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3. 2014시즌 이용규는 부상으로 수비 출장을 못하고 지명타자로만 출장했다.
  4.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트레이드로 김태완을 데리고 오려고 했다. 최종적으로 카드가 안맞아서 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