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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4일 (일) 12:57

나이키(Nike)는 블루 리본 스포츠를 전신으로 하는 미국의 스포츠용품 제조 회사다.

역사

공동 창립자인 빌 보워만(Bill Bowerman)과 필 나이트(Philip Knight)는 1957년 오레건 대학에서 육상선수와 코치로서 처음 만났다. 두사람은 선수생활 은퇴 후 후배 선수들의 기록 단축을 위해 많은 토론을 벌였고 결국 좋은 운동화가 기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그 당시 일본에는 오니츠카타이거[1]라는 걸출한 신발회사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오니츠카타이거의 신발을 미국으로 수입해서 판매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오니츠카측에서도 미국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거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그리고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1964년 1월 25일, BRS[2]라는 상표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1978년에 상표와 로고를 현재처럼 바꾼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상표

1978년에 블루 리본 스포츠는 나이키로 개명했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미국식 발음이다.

로고

나이키를 상징하는 스우쉬(Swoosh)로고는 캐롤린 데이비슨이라는 학생이 디자인 한 것으로 나이키는 35달러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로고를 구매했다. 여담으로 필 나이트는 열악했던 당시의 인쇄 사정으로 서둘러 로고를 결정해야하는 입장이었고 별다른 대안이 없자 35달러라는 싼 값에 로고를 구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캐롤린 측이 소송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나이키의 주식 일부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차별화

나이키는 동종 업계 1위였던 아디다스보다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았으나 항상 아디다스를 추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3]로 결국 수년 내에 아디다스를 넘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나이키가 이렇게 급성장한 원동력은 바로 공격적인 스타 마케팅에 있었다. 각 종목별로 인기있는 스타에게 자사의 제품을 착용하도록 유도하였고, 그것이 점차 판매실적 상승으로 연결되었다는 평가다.
미국 회사인 만큼 초창기에는 미국의 인기 스포츠인 농구와 야구선수들의 시그니쳐를 발매하는 일이 많았다.[4] 그러다 점차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축구쪽은 아디다스의 독점무대였는데 뒤늦게 뛰어든 나이키가 무섭게 장악해가는 중. 나이키가 만들어낸 여러 시그니쳐들이 현재의 나이키를 만들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에어 조던 시리즈

나이키 스타마케팅의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에어 조던 시리즈이다. 90년대 마이클 조던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였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당시 나이키는 세 가지 색이 들어간 농구화를 착용할 수 없다는 룰을 어기고 NBA에게 매달 벌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조던에게 자사의 농구화를 신겼다.

현재

2010년 통계를 기준으로 연 매출액 5469억원으로 4799억원인 아디다스보다 상당히 앞서있다. 창립 시기가 약 40년 정도 차이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급성장 했는지 알수있는 대목.

각주

  1. 1977년 아식스로 개명.
  2. 블루 리본 스포츠
  3. 회의실에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내쫓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4. 에어 조던 시리즈, 르브론 시리즈, CB '94, 코비 시리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