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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1년 11월 1일 (월) 23:28
다른 뜻

노자(老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도가의 창시자이다. 노자는 존칭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이다. 허난성 루이현 사람으로 상나라주왕을 섬겼으나, 뒤에 관직을 버렸다.

그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하여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道)라고 이름지었다. 그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고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도'라고 설명하였다.

정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노자로 상정되는 인물이 3인이 있다고 하였다. (노장신한열전). 첫째로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공자(禮)를 배운 사람이며, 도덕의 말 5천여 언(言)을 저작한 사람인데 그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역시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로서 저서는 15편 있었다 한다. 세 번째 든 것은 (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은군자(隱君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노자라고 하는 이는 은자로서 그 사람됨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에 노자라고 하면 공자에게 예를 가르쳤다고 하는 이이(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이라고 하는 인물은 도가의 사상이 왕성하던 시기에 그 사상의 시조로서 공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

펑유란(馮友蘭)은 노자가 전국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에 근거하여 노자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도덕경 죽간본(기원전 300년경) 이전일 수밖에 없으며 한비자(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가 도덕경을 인용하였으므로 한비자보다 앞선다. 또 도덕경에는 유가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는 백서본(갑본은 전국시대 말기, 을본은 한나라 초기) 이후가 반유가적인 것이며 죽간본은 덜하다.[1]

사상

도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우주 만물은 다만 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우주 만물의 형태는 그 근본을 따지면 결국은 17가지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 노자 도덕경 속에 있는 '무위 자연'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무위 자연' 사상이다. 즉, 법률·도덕·풍속·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걸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아무것도 안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 남조 청담사상 등의 영향으로 그런 오해가 많이 퍼져있지만, 도교는 기본적으로 '사물이 원래 그러하게 두는 것(인위적 조작을 가하지 않는 것)'이지 절대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다.

그는 후세에 '도교의 시조'로 불리고, 그 사상은 '노장 사상' 또는 '도가 사상'으로 발전하여 유교와 함께 중국 정신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2]

같이 보기

  1. 따라서 백서본은 유가를 확립한 맹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 이후의 저작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해보면 노자는 공자(기원전 551년~ 기원전 479년) 이후 맹자 이전 사람으로 보이며 공자가 노자를 만나 도를 논했다는 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노자 관련 년대를 시기적으로 추정하면 대략 다음처럼 된다. 공자 → 노자 → 도덕경 죽간본 → 맹자한비자 ≒ 도덕경 백서본 (이석명, 백서노자)
  2.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