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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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 Japan)은 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다.

개요

대한민국의 동쪽에 있는 동아시아섬나라이며 아시아의 첫 번째 선진국이다.

덴노(천황/일왕)을 군주로 삼지만 실세(권력)를 가지지 않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실질적인 정치권은 내각총리대신(일본어: 内閣総理大臣 나이카쿠소우리다이진), 줄여서 총리 또는 수상이라고 하는 직책이 대신 맡는다. 현재 덴노는 나루히토,[1]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이다.

일본의 공용어는 일본어류큐어, 그리고 아이누어인데 사실상 일본어의 독주체계이다. 단, 문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가나(仮名)'만 써야한다는 법령이 없으니 마나(真名) 혹은 로마자로 쓴 '일본어'도 공용어로서 취급할 수 있다. (예 : Konnichiwa. Watashi wa nihonjin desu.)

문화적 측면에서는 음악(J-pop 등), 애니메이션(아니메), 만화(망가), 비디오 게임, 예능 방송 프로그램[2] 등의 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전 세계적으로 오타쿠를 양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아시아 문화대국 중 하나이다[3]. 그러나 상대적으로 영화, 드라마, 연극, 다큐멘터리 등이 대부분 내수용에서 그치고 있고, 한류의 성공을 손가락 빨고 지켜본 일본 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한 쿨 재팬(Cool Japan, クールジャパン) 전략도 사실상 인지도 확보에 실패하여 묻혀버리는 등, 투입한 연구력이나 비용에 비해 많이 부진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애초 쿨 재팬 전략은 애니제작 회사들과 함께 애니의 수출액을 더욱 강화하려는 목적이 주류였고 실제로 최근들어 해외 수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2017년 기준 일본영상협회에 따르면 아니메의 해외컨슈머 소비지출은 9948억엔 원화로 10조를 넘는 소비를 기록했다 하며[1] 서양권 최대 스트리밍 업체 중 하나인 넷플릭스가 향후 강화할 컨텐츠로 터키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뽑은 것도 그런 기류의 일환이라 봐도 큰 무리가 없다.[2] 또한 애니를 넘어 일본영화가 최근 2018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3]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후보에 오르며[4] 2020년에 공개될 예정인 헐리우드 영화 고질라vs킹콩에서 일본인 배우의 출연이 결정되기도 했다.[5] 일본은 독일과 함께 가장 지독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 유투브 이용이나 인스타에 사진 올리는 것 등에도 매우 깐깐해서 드라마,대중가요등에는 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 설명한 일본 전반적인 문화를 통해 1년에 단 2번만 시행하는 일본어 시험에도 연간 응시자 100만명을 넘어서는등 존재감을 더욱 증대해가고 있어 쿨 저팬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6]

국가명

국가명인 '日本'은 해(日)가 뜨는 곳(本)이라는 뜻으로 쇼토쿠 태자가 지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발음은 '니혼(Nihon)' 혹은 '닛폰(Nippon)'인데, 둘 다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발음이다. NHK에서는 '닛폰'이 기본형이고, 경우에 따라 '니혼'으로 불러도 좋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어감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 따라 용도를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더 가깝다.

고대 및 중세 일본어는 청음만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니혼(にほん)이라 표기하고 그렇게 읽었다. 때문에 정식 국호로서 읽을 때, 전통을 중시할 때, 정중함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화 등에서는 '니혼'이라 읽는다. 반면, 대략적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닛폰(ニッポン)이라는 명칭이 거의 정착되었는데, 본질적으로는 발음하기 편한 정도의 이유였지만, 폐음절에 양순 파열음 /P/가 들어가서 어감이 강렬하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굳센 이미지도 담게 되었다. 그래서 굳이 '니혼'이라 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닛폰'이라는 발음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고대 일본의 국호는 왜(倭)였다. 일본말로는 야마토라고 읽었으며 일본식 한자음으로는 와(Wa)였다. 한반도와 중국에서는 일본인의 멸칭에 '왜' 자가 붙는데 왜소하다는 뜻과는 별 상관은 없다. 왜소하다를 나타내는 한자는 矮, 왜나라를 나타내는건 倭이다. 과거 언론 등에서는 왜소하다고 왜자를 붙였다고 서술한 적이 있는데 오류이다. 참고로 왜소하다는 뜻을 가진 멸칭 중 하나로는 쪽바리가 있다.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문서상 일본왕을 가리킬때 천황, 위(거짓/僞)황 말고도 왜황, 왜왕이라는 호칭도 사용하였는데 공식적인 문서 등에도 멸칭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저 한자로 여진족, 옥저, 선비처럼 중국 대륙 주변 나라를 일컷는 말 중 하나였다. 일본을 뜻하는 접두사 '和'가 생긴 뒤로는 야마토의 한자 표기는 倭에서 '大和'로 바뀌었다. 그 무렵 일본의 국호도 왜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쇼토쿠 태자가 주창하고 현대 일본인이 중시하는 '와(和)'는 사실 바로 앞에 언급한 한자의 발음(わ)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근거 자체도 부족하고, 자존심에 관해서도 그리 선호하는 설은 아니다. 和는 일본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글자로 오랫동안 쓰여온 것만은 확실해서, 지금도 '와(和)'라는 호칭은 일본의 데모님(demonym)으로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인은 와진(和人), 일식(日食)은 와쇼쿠(和食), 일본풍은 와후(和風), 일본어는 와고(和語)[4], 일본스러움은 와고코로(和心)라는 식.

훈독인 '히노모토(Hinomoto)'로 불리는 경우는 사극과 같은 상황이 아닌 이상은 드물다.

그 외 별칭 중에는 위치적 상징으로 과거 구미권 사람들이 부르던 극동(Far East, 일본어: 極東 교쿠토)이라는 표현도 제법 즐겨 쓰고, 한국에서는 서쪽의 대륙에 대비하여 '섬나라'라는 뜻으로 열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리

일본의 영토는 총 4개의 큰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과 난세이 제도(오키나와) 및 오가사와라 제도, 기타 군소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북단의 홋카이도는 시원하고 최남단의 오키나와는 덥다. 설명 끝 이 나라의 서쪽으로는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이 있다.

기후

전반적으로는 섬나라인데다 영국처럼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성기후가 강해 연중 내내 습하고[5] 태풍의 주 경로에 자리하여 여름에는 태풍에 직격을 맞는 일이 많다. 지진도 심한데 태풍까지 휘몰아치는 재난의 나라(...). 당연히 여름에도 습하며, 이는 여름에 덥다는 뜻이다.

겨울은 한국에 비하면 확실히 온화하고 습하다. 오사카 같은 경우는 1월에도 기온이 영상에서 놀 정도. 그래도 체감온도는 유럽권처럼 어지간히 추운 편이고, 동해 난류의 영향이 강한 혼슈 서부는 홋카이도보다 눈이 더 많이 온다.

행정구역

일본은 1943년 7월 1일부터 1도(都)1도(道)2부(府)43현(縣), 총 47개 광역행정구역으로 이루어진 지방자치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흔히 토도오후켄(都道府県(とどうふけん) 도도부현)이라고 축약하여 부른다.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쿠니(国)라는 명칭으로 구분하였고, 총 5키(畿)7도(道)68쿠니(国)의 체계였다. 현재 옛 구분법은 행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으나 역사를 언급할 때는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고, 그 영향 덕에 일상에서도 거의 별명처럼 쓰이는 경우가 제법 많다.[6] 특히 옛 명칭에서 앞의 1글자를 따온 '~슈(州)'라는 명칭을 즐겨쓴다.

47도도부현 이하로 기초자치의 최소단위인 구시정촌(区市町村)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여기서 '구'는 도쿄 23구(특별구)만 해당되기에[7] 실질적으로는 시정촌(市町村)으로만 칭하고 있다. 참고로 그 숫자는 791개시(정령시 포함), 744개정, 183개촌으로 합계가 무려 1,741개나 된다(...)[8]

본 항목은 현재 쓰이는 도도부현을 기준으로 나누되, 보다 정확한 참고를 위해 괄호 안에 옛 행정구역 명칭을 병기한다.[9]

홋카이도(北海道)

  • 홋카이도 - 원래 몇개의 현으로 나눌 생각을 했지만 인구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점차 사장되어가는 표현이나 아이누족의 본거지로서 에조(에조치)라고도 불린다. 물건이건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홋카이도(-道) 출신(태생)을 '도산(道産(どうさん))'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표현은 흔하게 쓰인다.

혼슈(本州)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Northern)

도호쿠 지방은 과거 에도 시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사실상 에미시의 영토로 간주되어 야마토 조정의 행정력이 유명무실한 수준에 불과했다. 크게 서부의 데와, 동부의 무츠로 나뉘었다.

간토 지방(関東地方, East)
주부 지방(中部地方, Central)
간사이-긴키 지방(関西・近畿地方, West)
주고쿠 지방(中国地方, far-West)

시코쿠/규슈/류큐

시코쿠 지방(四国地方)
규슈 지방(九州地方)
오키나와 지방 (沖縄地方)

이 지역은 난세이 지방(南西地方 - 지리명 '남서제도(南西諸島)'에서.), 류큐 지방(琉球地方 - 옛 왕국명 '류큐'에서)라고도 부른다.

행정구역 트리비아

  • 바다에 접하지 않은현(内陸県 혹은 海なし県)은 총 8곳이다. 도치기현(栃木県), 군마현(群馬県), 사이타마현(埼玉県), 야마나시현(山梨県), 나가노현(長野県), 기후현(岐阜県), 시가현(滋賀県), 나라현(奈良県). 다만 시가 현은 한가운데 떡하니 얹힌 비와 호(琵琶湖) 때문에 내륙현이라는 인상이 매우 옅다. 또한 나라 현은 다른 7개 현과 단 한 곳과도 붙어있지 않다.
  • 영어표기 시 '부/현'은 Prefecture로 표기한다. 다만 도쿄도의 경우는 Metropolis로, 홋카이도의 경우는 아예 붙이지 않는다.
  • 폐번치현 이후로도 통폐합으로 인해 사라진 현이 존재한다. 오사카로 흡수된 사카이현(堺県)이 대표적인 사례.

교통

종교

한국과 정반대로 길거리에 절이 흔하다.[14] 물론 신사(神社)도 흔하다. 그래서 기독교가 아니면서 선진국인 나라의 사례로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만큼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인도만큼이나 선교가 잘 안 되는 나라로도 알려진다.

어째 세금 회피(일본 승려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등 문제점을 가득 안는 종교라는 포지션도 한국과 정반대인 것 같다.

신토는 원래 샤머니즘, 애니미즘 같은 원시적 종교에서 발전한 형태인데 때문에 일본식 불교에 녹아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불교 사원 안에 신사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기요미즈데라에 가면 지주신사라고 같이 있다. 그런 신토를 메이지 유신때 독립된 종교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 수 많은 불교 사원을 탄압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신궁, 야스쿠니 신사가 세워지게 된다. 사실 신사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신사 본청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역사

17세기 이후에서 굵직한 사건들(특히 외교부문)의 간략한 연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에도 막부 시대

  • 1603년 :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되다.
  • 1639년 : 쇄국(鎖国) 정책이 시행되다. 이 시점 이후로 일본은 문을 걸어잠궜으며, 외국과의 교류는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중국, 한국을 대상으로만 행해진다. 류큐(오키나와)는 당시 사츠마 번(현 가고시마현)이 외세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식민지처럼 다루었기에 별개의 문제였다. 반대로 당시의 일본인이 일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엄격히 금했고, 이를 어기면 영구추방 혹은 참형과도 같은 극형을 내렸다.
  • 1853년 : 페리 제독도쿄 앞바다에서 일본의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다. 이 때 페리가 타고 온 서양식 증기선을 흑선(黒船, 쿠로후네)이라고 하며, 이 사건을 쿠로후네 사건(黒船事件, 흑선내항)이라고도 부른다.
  • 1858년 : 일본과 미국 사이에 미일수호통상조약(日米守護通常条約)이 체결되며 쇄국 시대가 끝이 나다.

메이지-다이쇼 시대

  • 1868년 :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근대화', '서구화'가 진행되다.
  • 1894년 : 조선반도를 무대로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이 승리하다. 그 결과로 일본은 청나라의 랴오둥 반도와 일부 영토를 빼앗고, 조선과 독점적 외교권이라 쓰고 점령권이라 읽는다[15]도 손에 넣었다.
  • 1895년 :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얻은 대만을 합병하다.
  • 1904년 : 또다시 조선반도의 패권을 놓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다. 양국 모두 피해가 컸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이 승리하고, 쿠릴 열도 전체와 사할린 섬을 손에 넣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동양서양을 이겼다'며 일본의 승리를 반기던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았으나...
  • 1910년 : 일본이 보호를 명목으로 대한제국을 합병하다.

쇼와(전기)-일본제국 시대

  • 1929년 : 미국발 대공황이 일본을 휩쓸어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가 실질적인 끝을 맞이한다.[16] 이때부터 세력 확장에 거침이 없었던 군부의 권력이 점점 커졌고, 훗날 터지는 중일전쟁때는 아예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 1931년 :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의 만주를 점령하였다. 이듬해에 청나라 마지막 천자라 불리는 푸이 황제를 앉혀놓은 괴뢰국만주국을 설치하였다.
  • 1937년 : 허베이 지방을 무대로 하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이 승리하다. 이로 인해 일본은 중국 대륙의 해안가 다수를 손에 넣어, 동남아시아로의 확장 발판을 마련하였다.
  • 1941년 :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이 발발하다. 일본이 끝내 동남아 지역을 제패하였으나, 필리핀과 태평양~폴리네시아 지역에 버티고 있는 미국이 아니꼬와서 죽빵을 날려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져 터졌다. 진주만 공습 자체는 성공적이었으나, 결론적으로 제국 멸망의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의 저력은 그깟 '뺨 싸대기 한 방'에 굴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고,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일본의 선전포고도 진주만 공습 이후에 미국에 전달된 것이라 때려잡을 명분은 충분하였다.
  • 1945년 : 미군 주도로 히로시마나가사키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끝내 옥음방송을 통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다. 이후 일본은 1952년까지 GHQ[17] 지배하의 피점령국 신세가 된다. 이듬해인 1946년에 일본 헌법 제 9조(일명, 평화헌법)가 제정되어, 이 법률에 따라 일본은 군대의 보유 및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영구히 포기하게 된다.

쇼와(후기)-일본국 시대

  • 1954년 :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다. 이 시기 일본의 수상이었던 요시다 시게루는 국방은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 성장에나 집중하자는 '요시다 독트린'을 제창한다. 오직 방어만을 행한다는 '전수방위' 개념에 입각해 경무장(lightly armed) 상태를 유지하고자 자위대(自衛隊)를 창설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원래 목적을 아득히 뛰어넘어 거의 군대조직에 가까워졌고, 아낌없이 무장력을 과시를 하고 있다.[18] 2015년부터 아베 신조를 필두로 한 우파 정권이 이 법률의 개정을 준비하여 주변국의 비판은 물론,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을 들끓게 하였다.
  • 1972년 :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다. 다만 2018년 현 시점까지도 오키나와에는 미군 주둔지가 유지되고 있다.

정치

덴노(天皇, 천황)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일본은 덴노(천황/텐노)를 군주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덴노'가 국가원수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패전 후 GHQ가 강제한 덴노 인간 선언에 의해 끌어내려져 궁내청의 감시(?)하에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때문에 덴노가 실질적인 권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다른 왕권과는 달리 정말로 단순한 상징에 지나지 않으며, 일본헌법에서도 덴노와 총리, 어느쪽이 국가 원수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인 일본 대학의 정치학 교양 수업에서는 국가 원수를 국가의 상징국가의 수반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하곤 한다. 물론 교수가 꼴통이면 답이 없다

정식 명칭은 고유명사로 취급하여 '덴노'가 되나,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외교문서에서 덴노를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읽은 '천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덴노/천황이라는 호칭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일왕이라는 명칭을 도덕적으로 옳게 여기어 반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언론계에서 이런게 심한 편.

이는 중국의 티엔쯔(천자) 및 조선 왕조의 '왕(王)', 그리고 대한제국 황제에 빗대어 봐도 지나치게 높으신 명칭이라는 의미가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으로, 때문에 급으로 한 단계 낮춘 호칭으로서 일왕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일제강점기(일본 제국) 이후에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고, 과거에도 중국인 및 조선인들이 제각각 자신들이 모시는 군주보다도 급을 높여 부르는 것[19]을 매우 아니꼽게 여겼기 때문에 표기시에는 항상 '왕'급으로 낮추어 기록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그 과거식 표기법처럼 공식여부를 떠나 항시 왜왕(倭王)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일본 황제라는 뜻의 'the Japanese emperor'라고 쓴다.

입법

양원제를 바탕으로 한 의원내각제이며, 실질적인 국정은 국회에서 지명한 내각총리대신이 총괄한다. 일본의 국회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衆議院)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参議院)으로 나뉜다. 형식적인 서열상으로는 참의원이 중의원에 앞서나, 일반적으로 중의원이 참의원보다 권한에 있어 우위를 가진다. 이는 과거 일본 제국 시절 중의원이 평민을 대표하는 기구였고(명칭은 동일), 참의원이 귀족(화족)을 대표하는 귀족원(貴族院)이었던 것에 기원한다.

일본 국회의원직은 25% 정도가 세습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과거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인해, 정권교체보다는 당내 계파싸움으로 총리가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며, 이 때문에 계파간 담합이 매번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정당

일본은 공식적으로 다당제지만 실은 자민당의 압도적 우위와 소수 야당들의 견제로 정치가 이루어진다. 사실상 일당우위제라고 보면 된다. 자유민주당은 1955년 이후 쭉 여당으로 집권하였다. 자민당은 의석수도 엄청난데 거기다 공명당(자민당과 연립여당)이라는 아군도 가지고 있다. 천하의 자민당도 도호쿠 대지진 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지면서 총선에서 패배하여 야당으로 내려간 적은 있다.

일본의 원내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여당은 볼드체 처리.

정당명 이념 성향 중의원[20] 참의원[21]
자유민주당
自由民主党
보수주의,
일본 민족주의
중도우파 ~ 우파 281석 123석
공명당
公明党
보수주의,
불교 기반
중도우파 29석 25석
입헌민주당
立憲民主党
사회자유주의,
입헌주의
중도좌파 55석 24석
국민민주당
国民民主党
보수자유주의,
녹색 보수주의
중도 ~ 중도우파 39석 25석
일본공산당
日本共産党
공산주의,
평화주의
좌파 12석 14석
일본유신회
日本維新の会
보수주의,
오사카 지역주의
중도우파 ~ 우익 11석 12석
희망의 당
希望の党
보수주의,
포퓰리즘
우파[22] 2석 3석
사회민주당
社会民主党
사회민주주의,
평화주의
중도좌파 2석 2석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沖縄)社会大衆党
좌익민족주의,
오키나와 지역주의
중도좌파 0석 2석


행정

행정부는 국회의원인 총리와 총리가 지명한 대신(장관)들로 구성된 내각이 총괄하며, 내각 밑에 1부 13성청(1府13省庁)을 둔다. 전통적으로 총리의 리더십이 강하지 않고 그조차도 2년의 임기를 채우는 것도 극히 드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내각보다는 각 성청의 캐리어(キャリア組)라 불리는 고위 관료들의 실권이 강하다. 특히 이런 고위관료들의 최고위직인 사무차관(事務次官)들이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다. 민주당 집권기에는 이러한 관료체제의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하였다.

경제

IMF 특별인출권까지 가지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1인당 GDP는 버블 시대 막바지(1993년)때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10위밖으로 밀려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지만, GHQ의 점령 하에서 농지 개혁, 재벌 해체, 노동 3법의 성립과 독점금지법의 제정으로 경제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경제부흥의 기회를 잡는다. 1950년대 후반에는 전자제품의 삼신기(흑백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로 대표되는 민간소비가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민간경제의 성장에 대응하여 투자를 확대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설비를 해외에서의 유입에 의존하였고, 투자가 확대되면서 유입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 국제수지의 천장에 의한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복(신식경기 → 냄비 불경기 → 이와토 경기)되었다.

1960년 여름, 이케다 하야토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고, 소득배증계획을 제창,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유형고정자산의 투자의 확대가 경기를 뒷받침해주었다(올림픽 경기). 1964년, 도쿄 올림픽의 반동에 의한 증권불황을 지나고, 사토 에이사쿠 수상의 시대에는 소득배증계획이 목표한 것을 상회하였다.

1970년대는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향으로 순조롭게 시작하나, 1970년 7월, 이자나키 경제(65~70년의 일본 경제의 호경기)가 종말을 맞는다. 1971년 8월, 변동상장제도(닉슨 쇼크)으로 이동하고, 1972년 6월에 다나카 카쿠에이가 발표한 일본열도개조론으로 전 국토가 균형 발전을 시도한 것이 과잉유동성과 개발 의도 등에서 땅값을 상승시킨 것 및 1973년 10월, 제 4차 중동전쟁을 발발시킨 오일쇼크에 의하여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다. 총수요 억제 정책으로 1974년에는 마이너스 실질 경제 성장률(-1.2%)으로 저성장의 시대를 맞는다. 또, 세수부족으로 1975년부터 적자 국채가 발행되어, 75년부터 지속적인 재정 적자가 시작된다.

1980년대에는 자동차·가전의 하이테크 산업을 중심으로 구미로의 수출을 늘렸다. 특히 미국과 미일 무역 갈등이 격화되었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고 불황이 시작되었다. 엔고 불황의 극복에 저금리 정책을 채용한 데 따른 과잉 유동성이 발생하는 신용 창조가 커지고, 부동산과 주가가 상승해서 일본은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다. 또,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은 일본전신전화공사(전전공사), 일본전매공사, 국철의 3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타케시타 노보루 내각은 소비세를 신설한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 국내의 정치체제의 혼란과 더불어 다수의 기업이 냉전 종료 후의 글로벌 경제체제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종래의 경영 방식을 고집하였다. 특히 금융기관은 BIS규제, 금융 빅뱅 대책, 새로이 도입된 시가회계제도에서 불량채권의 처리가 급하였고, 융자의 인상이 잇따랐다. 그 때문에 중소 영세 업체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도산도 잇따랐다.

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가 높으며 연간 국가예산의 25%를 국채 원리금 지불에 사용하고 있다. 국채의 90% 이상을 내국인이 소유하고 있어 통제 내에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다. 예산의 다른 세목들과 달리 국채 원리금은 조정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100% 지불되어야 하며, 예산편성의 유연성을 떨어트린다.

문화

아파트와 같은 다세대 주거지를 선호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단독주택, 특히 2층집을 선호한다. 지역마다 주거면적 격차가 큰 것도 특징인데 도쿄나 오사카같은 대도시들은 '토끼장' 이미지가 강한 반면, 교외지역이나 시골집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널찍하게 짓는다. 또한 일본인들의 통근은 대체로 도로 교통보다 철도 교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고속철도 역사가 놓여있기만 한다면 물리적으로 아주 먼 거리에 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23]

좁은 공간을 편안하게 여기는 국민성 때문인지 제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이 아니라 비좁은 복도부터 보이도록 설계한다.

일본에 노포가 많은 이유는 지독한 신분제 때문이다. 신분 상승이 절대로 불가능해서 정해진 직업만을 이어받는게 당연시 되던 것이 근대까지 내려오면서 200년 넘은 노포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신분 차별의 악습이 역설적으로 노포라는 유산을 남기게 되었다. 신분제가 조선이 더 심했다고도 하는데 조선은 일본처럼 바로 칼빵을 맞지는 않았다.

일본은 축소문화가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을만큼 필요한 만큼 주는 문화가 있다. 레토르트 식품에 들어있는 소스류는 정말 필요한 만큼만 담는데 넉넉하게 들어있는 한국과는 비교된다. 여관에서 주는 치약도 겨우 세번 쓸 정도로 손가락만큼 작게 포장한다. 남기면 죄라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 경향이 있다.

같이 보기

  1. 2019년 5월 히로히토에서 변경.
  2. 일본에서 수출한 예능 포맷이 결코 적지 않다.
  3. Overview of Japan, U.S. News & World Report L.P.
  4. 고쿠고(국어, 国語)라는 표현은 교과목명과 같은 일부 제한적인 용도에서만 쓰인다.
  5.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주로 Cfa가 많이 나타나며, 홋카이도와 혼슈의 고산지대에서는 Dfa가 나타난다.
  6. 예를 들어서 역사(駅舎)명을 지을때 다른 지역의 역과 이름이 겹치게 되면 옛 명칭을 앞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 (예 : 大和西大寺駅(야마토 사이다이지역))
  7. 현 체계상 엄밀하게 '도쿄'라는 지명은 '도(都)'으로만 존재하고, 23구를 묶어낸 행정구역이 없다. 서울로 비유하면 '서울시'라는 개념은 없고 '경기도'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강북구나 강서구 등이 모두 따로 놀고있다는 것.
  8. 총 면적이 ¼규모인 한국은 165개이다.
  9. 단, 통상 쓰이는 개념 위주로 연결시켰으므로 실제 영역과는 약간 어긋난 경우도 있다.
  10. 된소리와 장음이 포함된 옛날식 표기법이다.
  11. 흔히 '이세시마'라고 부르곤 한다. 불쌍해요 이가. 키이노쿠니의 동남부 일부도 포함되나, 의미가 없을 정도라서 잘 언급하지 않는다.
  12. 정확히는 도쿄의 니혼바시(日本橋)부터 교토의 산죠오오하시(三条大橋)까지인데, 흔히 그 이상으로 넘어서 서쪽으론 오사카, 동쪽으론 닛코까지를 가리키기도 함.
  13. 산요지(山陽路)라고도 하는데, 이를 간혹 산요도(山陽道)라고 잘못 부르기도 함.
  14. "편의점보다 더 많은 종교시설"을 논할 때 한국에서는 교회, 일본에서는 절이 거론된다.
  15. 그 전까지 조선은 청나라를 대상으로 한 사대주의 외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걸 일본으로 돌리게 한 것이다. 다만 이 "사대주의"의 개념을 구미권 학계에서 해석할 때 '과거 조선은 중국의 속국(봉건주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한국 학계에서는 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16. 개념상으로는 1925년 5월, 일본 제국의 경찰국가화로서 발판을 마련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의 발효로 끝이 났다. 다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용어 자체는 후세의 사학자가 만든 것이다.
  17. General Headquarters- (연합군 총사령부)의 약자.
  18. 어디까지나 과시만 할 뿐, 실제로 행동을 옮긴 적은 일본국 정부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극우파 세력이 헌법 9조의 수정을 꾀하는 건 이런 이유이다.
  19. 중국에서 '天子(하늘의 자손)'라 부르는 것은 하늘나라 직계이기는 하여도 '하늘의 존재'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뜻이었고, 그 아래 제후들을 더러 왕(王)이라 칭하였으며, 조선국의 왕은 사대주의에 의해 그 '제후'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덴노는 일본 입장에선 아라히토가미(現人神), 즉 신과 동급으로서 하늘의 존재 그 자체를 가리키는 '天皇(하늘의 임금)'이라 부른 것이라, 동아시아 세계가 하나라고 간주한다면 중국과 조선은 일본의 아랫것이 되어버린다.
  20. 총 의석 465석
  21. 총 의석 242석
  22. 중도~중도우파 포괄정당(내부 성향은 중도좌파~우파)로 분류되었던 (구)희망의 당은 이미 소멸되었고 당내 보수파들이 재창당한 정당이다. (신)희망의 당의 성향만 따지면 자민당내 강경파랑 다를 게 없다.
  23. 회사에서 대체로 교통비를 크게 지원해주며, 통근/통학 정기권의 할인율도 높은 편이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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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브레 맵스 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