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리브레 위키/A6M 0식 함상전투기

This page was last edited on 1 November 2021, at 23:10.
< 페미위키:포크 프로젝트‎ | 리브레 위키

틀:무기 정보

파일:Zero 11s.jpg파일:Img 0.jpg 파일:A6m.jpg


A6M 0식 함상전투기(Japanese Imperial Navy Carrier-Borne Fighter Mitsubishi A6M2 "Zeke" Type 0 fighter 三菱 零式艦上戰鬪機)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용했던 전투기로, 제로센으로도 불리운다.

1 제원

A6M 영식 함상 전투기 제로센

A6M2-21

  • 일반제원전폭 : 11m
  • 전장 : 9.11m
  • 전고 : 2.8m
  • 익면적 : 21.59m²
  • 엔진 : 나카지마 사카에12. 방사형, 14기통, 공랭식. 고도 2,000m에서 전투출력 1,020BHP.
  • 공허중량 : 1,712kg
  • 전비중량 : 2,519kg
  • 성능제원최대속도 : 해면고도에서 463kph,고도 5,500m에서 약 527kph
  • 제한속도 : 629kph
  • 상승률 : 고도 6,096m까지 6분 54초. 평균 상승률 14.7m/s.
  • 항속거리 : 1942km(외부연료탱크 장착, 403kph로 비행시)
  • 실용상승한도 : 10,600m
  • 익면하중 : 116.6kg/m²
  • 무장제원주익 20mm 99식 1호 기관포 2문(각 60발)기수 7.7mm 97식 기관총 2정(각 500발)
  • 1943년 10월 RAAF 사령부 0식 전투기 2형 테스트 보고서.

​* ※해당 보고서의 사진을 볼 때 A6M3-32와 같은 절단익을 장착한 기체로 보임

A6M5 52형 丙 (A6M5c)

  • 전폭 : 11.0m
  • 전장 : 9.05m
  • 전고 : 3.57m
  • 자체중량 : 1970kg
  • 전비중량 : 2955kg
  • 주익면적 : 21.338m²
  • 익면하중 : 138kg/m²
  • 엔진 : 나카지마 사카에 21/31乙/31甲형 복렬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1130마력
  • 최대속도 : 564.9km/h(고도 6,000m)
  • 최대 제한속도 : 667km/h
  • 항속거리 : 최대출력 30분+2,560km(증조 장착시)/1,920km(표준상태)
  • 무장: 기수 상면에 13mm 3식 기총 1정 (탄약 230발)주익 양측에 20mm 99식 2호 기관포 4형 1정씩 (탄약 125발)주익 양측에 13mm 3식 기총 1정씩 (탄약 240발)250kg 폭탄 1발/로켓탄 장착 가능


2 개발

일본 해군은 1937년(쇼와 12년) 5월, '12식 함상전투기계획요구서방안' 이라는 책자를 미쯔비시 중공과 나카지마 비행기에 배포함으로써 그 개발이 시작된다. 미국의 물량을 소수정예로 대응한다라는 개발사상이 들어가 여기에 12식 함상전투기는 호위기로써의 역할이 상정되어 긴 항속거리와 관련한 내용이 있었다. 해군의 요구사항은 이전에 개발한 96식 함전에 비해 그 요구사항이 월등히 높았다. 이윽고 동년 10월 5일, 항공본부는 미쯔비시와 나카지마에 '12식 함상전투기계획요구서'를 배포하며 요구사항을 구체화 한다. 최고 속력 500km 이상, 순항거리 6시간이상, 7.7mm기관포 두정과 20mm 기관포 두정 탑재, 내부 기기에 있어서도 '쿠식무선귀환방위측정기' 같은 최신기기들을 탑재할 것을 요구, 해군은 동시기 개발 또는 배치 중이던 연합군의 육상전투기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함상기에 요구하였으며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 들 이었다. 미쯔비시는 당시 11식 함상폭격기를 개발중이던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郎)를 급히 불러들여 12식 함상전투기의 개발을 지시한다.

1938년(쇼와 13년) 1월 요코스카 해군항공공창에서 열린 민관합동연구회에서 호리코시 지로는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 하다." 라고 하였음에도 해군 측에서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카지마 비행기가 개발을 포기하면서 미쯔비시의 단독개발로 진행되었다.

해군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호리코시 지로와 개발진들은 순항속도로 6시간 항속을 달성할 것과 최대 500km의 속력을 유지하는 것에 고심했다. 당시 미쯔비시의 엔진으로는 만족할만한 출력을 낼 수 없었기에 무게가 무거워 질수록 속력은 떨어질 것이다. 개발진은 두 가지 엔진을 놓고 검토하는데 하나는 공냉식복열성형14기통엔진인 미쯔비시 13형 즈이세이 엔진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방식의 4형 킨세이 엔진이다. 킨세이 엔진은 출력이 높고 속력을 맞출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3000kg의 중량이 될 것이라고 개발진은 예상했다. 96식 함상전투기에 비해 너무 무거워지거나 기체가 대형화되면 해군에서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개발진은 결국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출력이 낮은 13형 즈이세이 엔진을 택하고 2300kg수준의 중량을 목표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다.

개발진이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다름 아닌 주익 이었다. 비행, 전투성능을 유지하면서 해군의 항속거리를 맞추기 위해서는 철저한 경량화가 필수였는데 연료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주익이 커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 주익에 2정의 20mm 기관포를 탑재해야 하고 랜딩기어도 수납식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만큼 방루탱크나 방탄기능등은 도외시 되었다.

1939년(쇼와 14년) 3월 16일, 미쯔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시제1호기, A6M1이 완성된다. 순수기체중량 1565.9kg으로 당시 개발진이 목표로 하던 순수기체중량인 1500kg에 근접한 수준으로 완성되었고 4월 1일에는 테스트 파일럿 '시마 카츠조'에 의하여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해군의 '마키 세이이치' 대위와 '타카노 츄지로' 소좌가 테스트 비행을 거치면서 9월 1일, 시제 1호기는 해군에 인도된다. 1호기에서 지적된 진동과 일정속도 초과시 발생하는 승강타의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펠러를 날 3개로 교체한 시제 2호기가 10월 18일 시험비행을 개시하였고 10월 25일에는 시제2호기도 해군에 인도되었다.

비슷한 시기, 해군은 미쯔비시에 즈이세이 엔진을 해군의 주도로 나카지마에서 개발한 12형 사카에 엔진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비슷한 크기와 중량으로 더욱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카에 엔진과 즈이세이 엔진은 크기와 중량이 비슷하여 대대적인 설계 변경 없이 환장이 가능하였으나 어찌됐건 동체의 일부 디자인의 변경은 필요하였기에 사카에 엔진을 장착한 시제3호기는 A6M2라는 모델명을 부여받는다. 2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완성된 시제3호기는 최대속도 270노트를 넘어서며 더욱 좋은 성능을 보여주었기에 짧은 테스트 끝에 1940년(쇼와 15년) 1월 24일 해군에 즉시 인도되었고, 4호기도 빠르게 인도된다. 3월 11일에 해군에서 시험비행 중이던 시제2호기가 강하도중 공중분해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고강도 조사끝에 원인을 규명하여 설계를 일부 변경한다.

1940년(쇼와 15년) 중국전선에서 지속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던 육상공격기의 엄호를 위해 아직 생산량도 충분치 않던 A6M2 10대를 중국에 파견하기로 결정, 요코야마 타모츠 대위가 이끈 10대의 임시 요코스카 항공대는 27대의 중국기를 격추하며 함상전투기 임에도 첫 데뷔는 '국지전투기'로써 하게 된다. 중국에서의 운용성적에 만족한 해군은 동년 7월 24일 A6M2 '12식 함상전투기'를 정식채용하기로 결정, 황기 2990년의 뒷자리 0을 딴 '0식 함상전투기'로 명명한다

3 성능

3.1 문제점

  • 전체적으로 약한 내구도
가벼운 기체를 만들기 위해, 상대적으로 기술이 딸렸던 일본은 장갑판이나 자동 방루장치를 생략한 채로 생산했고, 이는 불타는 잽스 전투기, 제로식 라이터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게 된다. 동시대 그루먼 철공소의 강철 깡통 헬캣의 미친 방호력과, 방호 수단은 갖출거 다 갖추고도 제로센보다 기동성이 월등한 틀:ㅊ메서슈미트 Bf109가 보여주었던 강한 생존능력은 이 영식 라이터에겐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고 조준선을 흐트러놓고 마구 난사하는 눈먼 탄 몇발에 격추되는 것이 제로의 한계였다.
또한 심지어는 급강하시 600km를 넘어서면 연약한 기체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틀:ㅊ산산조각날수 있기에 급강하 비행은 제로식 라이터에겐 부담스런 기동이였다. 실제로 시험비행 때, 시속 600km를 넘어선 제로센의 날개에 심한 주름이 생기며 기체가 요동쳤다고 하며, 공중분해 되어 조종사까지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고 당시, 박살난 제로센의 파편이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눈처럼 휘날리며 지상으로 떨어졌고, 목격자의 회상 중 그 광경이 아름다웠다는(...)는 회고가 있다.
  • 날개를 크게 접을 수 없다
이 점은 공간을 줄이기 어려워져 탑재기 수가 줄어들었다. 단, 유의해야할 것은 영전은 생산성과 기체 한계상 날개를 크게 접기 어려웠다는 것이며, 일본 항공모함은 기본적으로 2단 격납고를 지녔기에 매우 큰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곤 하나 이 2단 격납고도 심각하게 문제가 많았고 거기에 일본의 항모는 동급의 미국 항모보다함재기 탑재량이 떨어졌는데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비롯된 일로, 항모의 항공기 운용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반면에 미 항모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이나 에식스급 항공모함 같은 미국의 항공모함들의 경우 최대 100대 정도의 함재기를 탑재하고 작전할 수 있었다.[1]틀:ㅊ
  • 열약한 엔진
열약한 엔진 문제는 종전 시까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는데, 이는 영전이라는 기체 자체의 한계 때문에 마력 증강을 대거 꾀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 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렛푸같은 병신 기종들을 보았을땐 과연 그것만 문제라고 볼수는 없다...이건 일본의 떨어지는 공업력과 기술력 탓으로 애먼 제로센을 탓할 필요가 없다.[2]틀:ㅊ 일본이 겨우겨우 헬캣이나 콜세어를 어느 정도 선에서만 상대할 수준인 시덴 국지전투기 같은 프롭 전투기를 생산할 때 미국은 시덴이나 Ki-100마저 압도하는 노스롭 그루먼의 신형기 F8F 베어캣과 머스탱의 최후기형인 F-51F형 같은 확실한 성능적 우위의 전투기를 개발완료한 상태였고 아예 Me 262와 대등한 성능의 P-80 슈팅스타 제트 전투기를 양산해 실전에 투입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서부전선에끼지 실전배치가 되었고 몇몇은 필리핀과 항모에 올려 일본으로 오고있던 상황이였다. 거기에 영국도 제트 전투기를 서부전선에 투입시키던 중이였으니...[3]틀:ㅊ 당시 1945년은 이미 제트기 시대의 첫 해였고 거기서 계속 프롭기만 만들던 일본의 수준이 어쩔진 알만하다.
  • 무장의 효용성
주 무장으로 장착된 7.7mm 기관총은 타국 기종들과 비교할때 그 구경이 몹시 작아 만족스런 공격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일본해군 에서는 함상기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조종석' 또는 '엔진'을 노릴 것을 몹시 강조하는 에이스 파일럿들을 양성하는대 주력했다틀:ㅊ. 또한 주익에 장착된 20mm 기관포는 탄환으로 작열탄을 사용하여 명중시 폭발을 일으키나 주익의 골조가 약하여 발사시 명중률이 몹시 낮아 틀:ㅊ산탄포 등으로 불리웠다. "폭격기에나 쏠만한 물건" 이라는 악명을 달았음에도 에이스 파일럿들은 적의 뒤까지 다가가 20mm 기관포를 퍼부어 적을 격추시키는 전법을 주로 사용하여 부족한 화력을 만회하였다.틀:ㅊ 그러나 헬캣과 콜세어는 그렇게 제로센이 접근하는걸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 기종들은 기동력 자체가 제로센보다 우세해서 그렇게 뒤를 잡히지도 않았으며 그 기동성으로 제로센과 싸울건가 말 건가를 선택하는 교전선택권마저 쥐고 있었다. 또한 머스탱 등 50구경 기관포를 4문 이상 장착한 연합군 전투기들은, 화력면에서도 제로를 압살했고, 명중률도 우세해 실전에서 제로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미군기들은 엔진 부분에 장갑판을 둘러 엔진과 조종석을 철저하게 보호해서 7.7mm 기관포는 엔진룸을 관통해 손상을 입히기 어려웠는데다 20mm라 해도 미군기 특유의 높은 내구성 때문에 바로 격추되지도 않아 이탈한 뒤 나중에 전장에 복귀하는 경우가 수두룩 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전선 중반기에는 미군 조종사들의 기량이 더 우수했다.
  • 쓸모없는 무전기
존재 이유 자체가 제로인 무전기는, 뻑하면 작동되지 않거나 통신 감도도 떨어져서 도저히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무전기가 없는 샘 치고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평양 전쟁 초기, 제로와 싸웠던 미군의 와일드캣이 기동력도 떨어지고 조종사들 마저 갖 비행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 초짜들이였지만 제로를 상대로 우위의 교환비를 내며 선전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전을 통한 동료들과의 연계였다는 것에서 볼수 있듯이, 제로는 연계가 전혀 되지않고 지들끼리 따로 노니, 대열이 흐트러지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고 결국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면에 미군 조종사들은 무전기를 통한 연계 작전을 구사하면서, 타치 위브 같은 대 제로샌 전술을 개발했고, 위급할 때 동료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동료와의 협동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전쟁은 명예를 걸고 한다는 결투 나부랭이가 절대 아니란걸 제로에게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데다 사실상 제로가틀:ㅊ그렇게 빨리 몰락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보고 있다.
  • 시대에 뒤쳐진 설계
제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제로는 선회전을 상정하였고 저속 선회전 한정으로는, 최강의 전투기였다.
그러나 공중전은 저속 선회전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복엽기 시대의 전술로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 그리고 같은 추축국 독일도 이미 낡은 설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거기에 당시에도 제로보다 저속 선회전이 우수한 기체들이 남아있긴 했는데 그것들은 바로 1차대전기 복엽기들이였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일본은 복엽기 전술을 단엽기에게 강요했고 결국 1차대전식 전투기를 만든것이다. 미군이 처음에 제로에게 열세를 보인것도 미군 조종사들이 여전히 1차대전식 전술에 익숙해 그런식으로 운용하는게 아닌 전투기들로 제로와 동일하게 맞섰기 때문이였다.
거기에 제로의 강점은 모든 선회전에서 그런게 아니라, 저속 선회전에서만 강점을 보였고 오히려 고속 선회전 같은 효율적 기동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또한 제로의 천적 헬캣은, 넓은 날개 면적으로, 일반적인 선회전 만으로도 제로에게 밀리지 않은데다, 고속 선회전은 오히려 제로보다 앞섰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제로의 엔진출력은 좋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미군기들보다 약한 힘을 낼수밖에 없어 미군기를 추적하거나 하기 힘든 설계에 급강하 전술과 에너지 파이팅에서 미군기를 효과적으로 상대할 방도가 없었다.

틀:ㅊ 틀:ㅊ

3.2 장점

  • 뛰어난 기동력

저속 선회력이 뛰어난 기체라, 헬캣이 투입되기 전 와일드캣을 상대할때 유리했다.틀:ㅊ

  • 뛰어난 추중비

일단 초기에 그랬던건 사실이다. 가벼운 기체는 와일드캣보다 빠른 상승속도와 낮은 실속률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상승전에선 와일드캣이 제로를 따라가다 실속하기도 했고 일본군은 이를 응용한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낮은 엔진출력이였고 이 때문에 겻비행기에 기관포 붙인 수준밖에 되지 않아 나중에 힘좋은 고출력 전투기들에게 우위를 상실한다.

  • 긴 항속거리

당시 전투기들에 비해서는 항속거리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이는 초기에 매우 이점이었는데, 진주만 공습 당시에도 일본군은 남서쪽에서 날아왔기에 미군은 그쪽을 집중수색 하였지만 정작 제로센기는 긴 항속거리를 이용하여 북서쪽에서 왔기에 미군을 속일수 있었다.

4 같이 보기

틀:일본군 항공기

  1. 사실 제로센보단 항모의 성능 차이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크다.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함재기 120대를 운용할 수 있었고 요크타운급 항모인 엔터프라이즈 역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침몰한 호넷의 비행단까지 수용하여 100대 이상의 함재기를 수용하기도 했는데 개방식 격납고를 체택하고 효율적인 항공기 수납방식을 지향한 미국 항공모함들은 동 체급이나 약간 더 큰 경우라도 성능적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2. 당시 미국의 기술력과 압도적이였던 것도 기인한다. 심지어 당시 독일의 전체 공업단지의 생산량이 미국의 대형 공단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로 당시 최고의 선진국 중 하나인 독일이 이정도인데 전근대 사회가 유지되던 일본은 뭐...
  3. 심지어 소련은 세계 최초로 터보팬 엔진을 개발하고 전후 바로 제트전투기를 양산하기까지 했다. 다만 서부전선에선 262슈발베와 글로스터 미티어,드 해빌랜드 뱀파이어와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