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타리아니즘

최근 편집: 2023년 6월 16일 (금) 13:21
(평등주의에서 넘어옴)

이갈리타리아니즘(영어: Egalitarianism or Equalitarianism) 또는 평등주의(平等主義)는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인간의 평등함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의 한 사조이다.

어떤 이유에서 평등을 강조하는지, 어떤 종류의 평등을 강조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평등하게 대해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기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는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주로 소득 및 부의 평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1]

어원

이갈리타리아니즘은 프랑스어 égalitaire(평등주의자; egalitarian)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다시 프랑스 고어 egalite(평등; equality)에서, egalite는 라틴어 aequalitatem에서 파생되었다.[2] 영어에서 "이갈리테리안"이라는 단어는 1880년대에 처음 쓰였으며, 동일한 뜻을 갖는 "이퀄리테리안(equalitarian)"은 18세기 후반부터 쓰였다.[3] 따라서 '이퀄리테리안'까지 포함하여 보면 18세기 후반, 일반적으로는 19세기부터 쓰인 용어로 볼 수 있다. 근대적 정치철학 사상으로서의 이갈리타리아니즘 또한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인 19세기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4]

정의

내제적 이갈리타리아니즘(intrinsic egalitarianism)평등 자체에 정의로움이 내제되어 있다고 본다. 다른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평등 자체가 추구해야할 근본 가치인 것이다.[5]

도구적 이갈리타리아니즘(instrumental egalitarianism)평등을 다른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 또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다른 정의란 예를 들어 보편적 자유(universal freedom), 인간의 능력 및 개인성의 완전한 발달, 억압이나 낙인찍기에서 오는 고통의 경감 등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평등이란 일차적 가치가 아니라 파생된 가치(derived virtue)이다.[5]

구성적 이갈리타리아니즘(constitutive egalitarianism)은 우리가 평등을 갈망하는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설명한다. 평등 자체에 어떠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내제적 이갈리타리아니즘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이 가치는 내제적이고 설명이 필요 없이 자명하게 주어진 가치가 아니라 더 높은 도덕적 원리에 의해 설명되는, 즉 외재적으로 부여되는 가치로 본다.[5]

역사

평등이라는 관념 자체는 인간 보편적 본성이며, 침팬지나 원숭이 등 근연종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신분제 폐지(계급 간 불평등 해소), 인종 간 평등, 동물권 등의 개념은 문명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평등이라는 관념 자체에 대한 논의는 평등 문서를 참고하자.

헬레니즘 시기

헬레니즘 시기의 스토아 학파(stoicism)는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동등하다고 보았다. 이들의 윤리학(stoic ethics)에 의하면 덕(virtue)이란 자연에 최대한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였으며, 스토아 학파의 이러한 관점은 후대의 정치철학자들 사이에서 이갈리타리아니즘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 혁명기

프랑스 혁명의 핵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선언문인 "인간(l'homme; 남성)과 시민의 권리 선언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또한 이갈리타리아니즘을 내포하고 있다. 혁명 초기부터 "자유, 평등, 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라는 슬로건을 사용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갈리타리안(egalitarian), 이갈리타리아니즘 등의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의 평등이란 사실 남성의 평등을 뜻한다. 이러한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극작가이자 활동가였던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a femme et de la citoyenne)"라는 선언문을 발표한다.

현대

현재 평등주의의 이념은 여러 국가의 헌법에 나와있는 기본권 중 하나인 평등권에 의하여 보장된다.

페미니즘과의 관계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 1세대 페미니즘의 여성참정권 운동이 정치적 평등의 달성을 주요 목표로 한 점 등에서 관련이 있다.

이갈리타리아니즘이 페미니즘의 대체어인가

혹자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이 페미니즘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거나, 페미니즘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맥락과 유사하게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갈리타리아니즘'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6][7]

'평등주의' 또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자유주의(libertarianism) 같은 정치철학의 용어들 또는 정치적-경제적 평등권 같은 개념들을 상기시킬 뿐, 가부장제와 성적 억압, 소수자 인권 같은 페미니즘의 주요 관심사들을 떠올리게 만들지 못한다. 굳이 페미니즘 대신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말을 쓰고자 한다면 젠더 이갈리타리아니즘(gender egalitarianism)이라고 구체적으로 '젠더'를 명시할 수 있겠으나, 이 조차도 대체로 '젠더 평등주의'라는 의미로 쓰이기 보다는 '젠더 평등(gender equality)을 나타내는 정도' 또는 '젠더 평등성' 등의 의미로 쓰인다.

또한 프랑스 혁명 등 역사적으로 평등주의를 내건 여러 정치 운동들이 평등의 대상에서 '여성'을 제외시켜왔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이다.

한편 페미니스트 중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 같은 인물은 이갈리타리아니즘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소머즈가 지지하는 에쿼티 페미니즘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반-페미니스트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나

혹자는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stoicism)가 인간의 평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갈리타리아니즘이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에 생겨난 것이라며, 19세기에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의 뿌리가 이갈리타리아니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여러 의미에서 옳지 않다.

첫째, 이갈리타리아니즘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퀄리테리안'까지 포함하여 보면 18세기 후반, 일반적으로는 19세기 이후이다. 스토아 윤리학이 이갈리타리아니즘적이라는 평가는 후대의 평가일 뿐, 이를 근거로 헬레니즘 시기에 이갈리타리아니즘이 탄생했다고 주장하며 시기적으로 페미니즘에 앞서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이갈리타리아니즘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이다.

그리스 고전기 철학자이자 스토아 학파를 비롯한 서양철학사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는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ideal state)에서는 물리적 힘을 요하는 일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으는데 이는 후대에 프로토페미니즘(protofeminism)으로 평가받고 있다.[8] 같은 논리를 따르자면 페미니즘은 그리스 고전기에 탄생했으며 스토아 학파는 신-플라톤주의자였으므로, 소위 헬레니즘 시기에 생겨났다는 이갈리타리아니즘이 오히려 페미니즘에서 파생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타당하지 않다.

둘째, '평등'은 이갈리타리아니즘만의 독점적 사상이 아니며 어떠한 사상이 다른 단일한 사상으로부터 독점적/배제적으로 파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역사 인식이다. '상대방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라는 생각 자체는 공정함(fairness), 상호성(reciprocity)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 보편적인 관념이지 어느 시기에 고안된 것이 아니다. 다만 왜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가[주 1], 어떻게 대하는 것이 평등한 것인가, 노예나 아이나 여성이나 다른 인종이나 장애인도 평등한가[9], 어떤 상황에서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왔을 뿐이다.

'평등'이라는 인간 보편적 인식은 18세기 이갈리타리아니즘에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페미니즘이 시작된 시기에 대한 견해는 페미니즘의 정의에 따라, 또 연구자들에 따라 다르다. 가장 좁은 의미의 페미니즘은 아마도 서구에서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현대적 정치 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일텐데, 이 경우 18세기 계몽주의를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평등은 계몽주의 사상의 주요 특징 중 하나라는 점에서 두 사상의 접점이 발견된다.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은 일군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로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가상의 사회 운동 내지 철학 사조를 꾸며내고 나무위키의 여성혐오적 경향성과 매체력을 활용하여 체계적으로 전파시킨 지적 사기 사건이다. 다음을 참고할 것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사건 당시 '젠더 이퀄리즘'이 존재하지 않는 사상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젠더 이퀄리즘은 용어 상의 문제일 뿐 사실은 이퀄리즘(equalism)이 이갈리타리아니즘(egalitarianism)이라는 식으로 주장을 수정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이갈리타리아니즘'과 '이퀄리즘'이 동의어이며 페미니즘을 대체하는 사상이라는 식의 허위 주장이 국내에 퍼지고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해외에서도 간혹 이퀄리스트, 이퀄리즘 등의 표현이 쓰이지만 그 빈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192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의 저술에서 간혹 나타나지만 그 전/후로는 잘 쓰이지 않다.[10]. 게다가 그마저도 이갈리타리아니즘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지 명확하지 않다.

부연 설명

  1. 스토아 학파는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동등하다고 보았으며 덕(virtue)이란 자연에 최대한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다.

출처

  1. “Egalitarian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 “egalitarian (adj.)”. 《Online Etymology Dictionary》. 
  3. “By Branch / Doctrine > Political Philosophy > Egalitarianism”. 《The Basics of Philosophy》. 
  4. Phelps Brown, Henry (1988). “Egalitarianism and the Generation of Inequality”. doi:10.1093/0198286481.001.0001.  중 "The Formation of Modern Egalitarianism"
  5. 5.0 5.1 5.2 “Equality”. 《스탠포드 철학 사전》. 
  6. “Feminism: Why Not ‘Egalitarianism’ or ‘Humanism’?”. 《Progressive Women's Leadership》. 
  7. “Why Feminism Still Needs To Be Called Feminism”. 《bustle.com》. 
  8. “Protofeminism”. 《영어 위키백과》. 
  9. The Expanding Circle, Peter Singer
  10. “Google ngram viewer”. 《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