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페미니즘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09:53

개요

포스트페미니즘페미니즘이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끝났다고 말한다. 포스트페미니즘은 1960년대 말부터 가부장적인 담론을 해체하면서 발전했다. 이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는 정신분석학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와 같은 현대 사상의 주요 분석 전략으로 강화된 페미니즘의 발전이었다.

역사와 비판점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을 가르는 최초의 분기점이 된 것은, 1968년 3월 8일(세계 여성의 날) '정신분석과 정치' 그룹 회원들이 "페미니즘을 타도하라"(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여성 운동을 지지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파리 시내를 행진한 사건이었다. 정신분석과 정치 그룹은 후에 '정치와 정신분석(Politique et pshychanalyse)'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줄여서 포에 프시크(po et pshyche)라고도 부른다.[1] 그리고 1970~80년대 2세대 페미니즘의 등장 이후, 여성들이 정치적 평등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이성애 관계에서도 평등을 이루었으니 페미니즘이 불필요하다는 담론이 다시 등장했다.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사회적인 성공과 사랑을 동시에 차지한 여성들의 모습이 보급되었다. 이에, 많은 제1세계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2세대 페미니즘이 수동적 피해자로서의 여성상을 강화한다는 비판이었다.[2]

2세대 페미니즘의 어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측면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여성의 주체적 자유가 분명히 제약되는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당당한 여성상은 유행했지만 여성의 욕망이 실현될 현실적인 발판은 마련되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2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생산적인 비판을 발판 삼아 새로운 페미니즘의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걸(girl)들의 움직임은 포스트페미니즘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소비 지향적 여성성을 강화하고 여성이 처한 현실을 방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노오력하면 된다?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은 이미 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본다는 점에서 반페미니즘적이다. 남녀 따지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이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처럼 여성차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의 시대착오성과 무능함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은 평등을 위한 여성의 집단운동을 여성의 자기계발로 치환시킬 것을 요구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선택을 단순한 소비자로서의 선택으로 치환시킬 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2]

여자는 피해자가 아니다?

포스트페미니즘은 일과 사랑을 가진 전문직 여성의 '등장', 여성이 피해자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당위'를 이용하여 페미니즘의 불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이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예로 들어 여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성차별이 철폐되었다면, 여성 리더들의 성공이 왜 '여성 리더'라며 주목받는가? 세계를 쥐고 흔드는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흑인버락 오바마가 두 번이나 당선되었다. 그래서, 흑인 차별은 없어졌는가?

안티페미니즘으로서의 기능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많은 이론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자처"하는 방식으로 그 주장을 공고히 하고, 그 근거로 '포스트페미니즘' 이론을 제시한다. "나는 '남녀'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은 반대야"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여자는 피해자가 아니야. 여자는 당당하거든. 이렇게 멋진 여성들이 많은데, 성 평등주의도 아니고 페미니즘이라고? 난 성평등에 방해되는 페미니즘 대신 젠더 이퀄리즘을 주장하겠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은 여권의 상승세에 무임승차하여 페미니즘은 낡고 시대적으로 뒤처진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의 과제가 완수되었음'을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개인이 노력하면 남성만큼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 문장이 페미니즘의 불필요함을 증명하기 위해 쓰이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이런 포스트페미니즘의 전략은 개인의 노오력에 따라 삶이 충분히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믿음과 닮아 있다.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겨, 낙오된 자들에게 개인의 무능이라는 비판을 일삼는 전략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수사는 ‘여성’이, ‘이미’, ‘충분한 것’을 ‘가졌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식을 통해 안티페미니즘적 인식을 교묘하게 숨긴다. 성별 불평등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개인의 노력이라는 테제를 강조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열등한 지위를 영속화하며 결국 여성의 사회적 낙오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공모”한다는 점에서 결코 정당하지 못하다.[3]

같이 보기

출처

  1. -하룻밤의 지식여행-. 포스트페미니즘. 소피아 포카 지음. 윤길순 옮김. 김영사.
  2. 2.0 2.1 http://todayboda.net/article/7198
  3. '포스트페미니즘'이 불구(不具)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