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최근 편집: 2019년 5월 18일 (토) 12:59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노벨상 위원회 제공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Françoise Barré-Sinoussi, 1947년 7월 30일~)는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이다. 2012년부터 국제에이즈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5년까지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Regulation of Retroviral Infections Division의 디렉터로 일했다. 이 외에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명예이사, 프랑스 국립보건원(INSERM) 부설 연구소 소장, 프랑스 에이즈 연구원 과학이사회 의장 등을 겸임하고 있다.[1] 2008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생애 및 활동

바레시누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사랑하였고, 방학 마다 자신의 고향인 파리의 공원에서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가능한 짧고 저렴하게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1975년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2]

바레시누시는 뤼크 몽타뉘에 박사와 함께 1981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고, 1983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세계 최초로 혈액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성매매와 수혈 등이 에이즈의 발병 원인임을 규명해내 에이즈 극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HIV 바이러스와 기존 암유발 바이러스의 차이를 규명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러한 발견은 현재 AIDS 치료에 필수적인 연구 결과로 인정 받고 있다.[3][4]

2008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발견한 공로로 뤼크 몽타니에 박사, 추어하우젠 박사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는 HIV 바이러스 발견 공로를 인정 받았고, 추어하우젠 박사의 경우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 바이러스 발견 공로를 인정 받았다.)[3]

바레시누시 박사와 몽타니에 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이들이 HIV 바이러스의 최초 발견자임을 인정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HIV 발견 당시 미국 국립 보건원(NIH)의 로버트 갤로 박사와 최초 발견에 대한 논쟁이 붙었는데, 이는 프랑스와 미국 간의 소송으로 발전하며 국가간 분쟁이 되기도 했다. 1987년 3월 프랑스와 미국은 바레시누시-몽타니에와 갤로를 에이즈 바이러스의 동시 발견자로 인정하고 바이러스 발견에 대한 권리를 양쪽에 똑같이 나누도록 약속했으며, 발견자들도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1990년 합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HIV 바이러스 발견으로 바레시누시 박사와 몽타니에 박사가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두 사람을 최초 발견자로 ‘승인’한 셈이 된다.[4]

함께 보기

출처

  1. 이영준, <“에이즈 정복의 날 머지 않았죠”>, 2009.05.23.,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23025028
  2.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노벨상 위원회》. 2019년 5월 12일에 확인함. 
  3. 3.0 3.1 정진탄, <노벨 의학상 獨 하우젠, 佛 시누시・몽타뉘에 3명 공동수상>, 2008.10.06., 뉴시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2314944
  4. 4.0 4.1 김형자, <HIV 발견 분쟁, 교통 정리되다>, 2008.12.01., KISTI의 과학향기, http://scent.ndsl.kr/site/main/archive/article/hiv-발견-분쟁-교통-정리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