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페미니즘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0일 (금) 08:58

프랑스 페미니즘은 크게 두 가지의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과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이 그 두 가지이다. 두 갈래를 모두 합해 여성해방운동이라 칭하기도 했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과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은 이후에 각각 프랑스 페미니즘과 미국 페미니즘의 뿌리가 되었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

소개

1968년에 결성된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은 여성해방운동의 문화적,지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에디시옹 데팜(여성 출판사라는 뜻)이라는 출판사를 세웠다. "저마다 고유한 특성에 따라 따로 또 같이"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의 대변인이며 에디시옹 데 팜의 창립자였던 유럽 의회(MEP) 의원인 앙투아네트 푸크(Antoinette Fouque:1936년 출생)은 여성해방운동(MLF)의 공동 창시자이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은 여성의 리비도쾌락, 여성의 환상여성의 텍스트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채택했다. 몸과 언어의 관계를 고찰하였으며 가부장제 아래서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신분석학을 적용해 탐구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이런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의 탐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에 의해 확립된 정신분석학과 해체 이론, 히스테리 이론 등에 기대고 있다.

사상

평등을 추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남성으로의 동화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화가 아닌 차이를 추구하였다. 혁명 페미니스트 그룹과는 대조적으로 평등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여성적인 것을 정당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유럽의 사상인 휴머니즘을 거부하기도 했다.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FR)

소개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은 1970년에 여성해방운동(MLF)의 한 분파로서 형성되었다. 줄임말로 FR이라고도 말한다. 이들은 의식화 집단이라는 미국식 모델을 채택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반대했다."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라는 슬로건을 지녔으며 이는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과는 대비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의 대변인은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1935년 출생) 였으며 크리스틴 델피,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여성해방의 문제>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위티그는 성별 차이(gender difference)의 생물학적 기원을 논박했다.

사상

모니크 위티그는 여기서 "여성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성애적 이항 대립 구조 속에 각인된 사회적으로 구성된 존재입니다. 레즈비언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정의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니 여성이라고 할 수 없지요" 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과 레즈비언은 둘 다 문화적 산물이지만, 여성과 달리 레즈비언은 이성애적으로 고착된 성별(gender)과 성(sexuality)의 관계를 거부한다. 혁명적 페미니스트 그룹은 평등을 지향했으며 분리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는데, 이런 분리주의 경향은 특히 집단 내 레즈비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레즈비어니즘만이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에 따라 집단 내에서 레즈비언 분리주의자들과 이성애자 급진주의자 사이에 내분이 있었다.
FR은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과 대립하였다. 정치와 정신분석 그룹은 평등을 추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남성으로의 동화뿐이라고 생각하고 동화가 아닌 차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FR은 대중 매체를 통해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법을 채택하고, 기존 질서를 교란시키는 공개적인 행동을 연출했다. 예를 들어 위티그를 포함한 일단의 여성들은 파리의 무명용사 묘소에 화환을 바치기도 했다.(그 군인의 이름모를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또한 낙태를 반대하는 집회인 '생명의 권리'를 저지하고 송아지 허파 조각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또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에 시위를 벌이고, '여성에 대한 범죄를 고발하는 날'을 제정했다. 또한 미혼모를 돕기 위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정부의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다. [1]

기타

미국에서의 수용과 왜곡

미국 페미니스트 중 일부 그룹이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을 그 맥락이나 역사와 상관없이 왜곡하여 수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프랑스 페미니즘의 일부분을 프랑스 페미니즘의 상징인 것처럼 가져와 이용했는데, 여기에서 나온 말이 '미국산 프랑스 페미니즘'이다.[2]}}

같이 보기

출처

  1. -하룻밤의 지식여행-. 포스트페미니즘. 소피아 포카 지음. 윤길순 옮김. 김영사.
  2. “프랑스 페미니즘 문학…영미문화에 식민화되다”. 《중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