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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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이후 영국으로 돌아온 38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모습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영어: Florence Nightingale, 1820년 5월 12일~1910년 8월 13일)는 영국의 간호사, 작가, 통계학자이다. 최초로 의학에 "소독"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왕에게 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며, 국왕립통계학회의 최초 여성 회원이며 지역사회간호를 도입하였다.

1 생애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이름을 따 플로렌스라는 성을 지니게 되었다.

1837년부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바치기로 결의하고,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다가 1844년에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간호사는 부도덕한 직업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허드렛일이나 기초적인 병 간호가 일의 위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간호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내가 식모가 되겠다고 말한 것 같은 반응이 나왔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그 당시 가족의 반응을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그 후 독일 카이저벨트의 프로테스탄트 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1853년 8월부터 10월까지 런던병원(The Care of Sick Gentlewomen) 작은 요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일했다.

1.1 크림 전쟁

1854년에 크림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에서 간호활동을 시작했다.당시 전염병이 돌아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는 병사들이 많았는데, 38명의 성공회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스쿠타리의 야전 병원에서 활동했다.

1.2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 게일은 보급품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자 망치로 창고문을 부순 일화로 '망치를 든 여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나, 플로렌스를 취재 나온 기자가 '등불을 든 여인'으로 별명을 바꿔 기사화하였다.

전쟁터에서 부상으로 죽는 것보다 질병감염으로 죽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모아 데이터를 도표와 원그래프라는 그림으로 최초로 바꾸어 보이면서, 통계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1856년에 왕립통계학회에 등록된 최초의 여성회원이 되었다. 후에 미국통계협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플로렌스는 크림전쟁 이후에 위생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1874년과 1875년에 공중보건법안이 강화될 때까지 로비활동을 벌였다. 의학에 위생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실질 도입한 것이다. 그의 위생 개념이 도입된 후 영국군 부상자의 사망률은 40%대에서 2%로 감소한다. 그리고 간호사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3 크림전쟁 이후

1855년 11월 29일에 간호사를 전문직으로 바꾸기 위한 Nightingale Fund를 설립하였다. 이 모금으로 1860년에 런던의 세인트토마스병원에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자매결연을 맺은 병원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만일 어떤 환자가 추워한다거나, 고열에 시달린다거나, 쇠약해 있다거나, 음식을 먹고 괴로워한다거나, 또는 욕창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질병 자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간호에 기인하는 것이다. (...) 간호는 투약하거나 습포제를 바르는 것 정도로 그 의미가 제한되어 왔다. 그러나 간호는 환기, 채광, 난방, 청결, 정숙 등의 적절한 활용과 식이의 적절한 선택과 관리 등, 환자의 체력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의미해야만 한다.”[간호론]

1859년에 간호전문서적 [간호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간호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끌면서 간호학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켰다. 플로렌스가 쓴 책은 간호학과 신학, 에세이 등을 포함하여 200여권에 달한다.

플로렌스 간호학교에서 훈련을 마친 간호사들이 1860년대부터 투입되어 런던의 병원과 영국 로열 빅토리아 병원 그리고 호주 시드니 병원에서 활동하면서 전문직 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미국 최초의 간호사, 린다 리차드(Linda Richards) 또한 플로렌스 간호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남북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는 외국 정부의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플로렌스는 1883년에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Royal Red Cross 훈장을 받았고, 1904년에는 Order of Saint John로부터 Lady of Grace로 임명되었다. 1907년에는 영국 왕 에드워드 7세로부터 여성 최초로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받았으며, 1908년에 런던의 명예시민(Freedom of the City)이 되었다.

플로렌스는 1910년 8월 13일에 90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2 사후 영향

1893년에 창설된 나이팅게일 선서(The Nightingale Pledge)는 2017년인 현재까지도 간호과에서 졸업을 앞둔 간호사들에게 제창된다. 2008년에 세계 보건 기구에서 시작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선언 캠페인은 2016년까지 106개국이 참여하기로 서명하였다.

만국 적십자사에서는 1912년부터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나이팅게일 메달(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만들어 2년마다 간호사들에게 수여하였다. 1965년부터 플로렌스의 생일인 5월 12일은 국제 간호사의 날로 지정되었다.

이스탄불과 영국에는 플로렌스의 이름을 딴 병원이 설립되었고, 런던은 2010년 5월에 플로렌스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대영도서관 기록보관소에는 플로렌스의 목소리가 녹음된 축음기 음반이 있다.

3 평가

“나이팅게일의 천재성은 간호 분야에서만 발휘된 것이 아니었다. 기나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도 행정가로서 발군의 능력을 과시했다. 행정가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정치적 감각도 남달라야 했는데, 나이팅게일에게는 바로 그런 능력이 있었다.”-《새벽에서 황혼까지》 자크 바전

4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