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린스 케네디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0일 (금) 08:55

만약 남성이 임신할 수 있었다면, 임신중절은 성찬 의식이 되었을 것이다.

플로린스 케네디(Florynce “Flo” Kennedy)는 미국의 여성운동 1세대 페미니스트이다.[1]

플로Flo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플로린스 케네디는 흑인 여성 최초로 컬럼비아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로펌을 운영하는 동시에 정치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언론과 광고의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단체인 미디어워크숍을 조직하고, 1971년에는 페미니스트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며, 임신중절금지법에 대한 집단소송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강연을 다녔다.[2]

생애

플로린스 케네디가 여성운동에 뛰어든 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주 1] 콜럼비아대 법대 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한 이후부터다. 그는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고, 학교 당국은 그의 단호함에 결국 항복했다.[1]

1951년 졸업 후 맨하탄의 법률 사무소에 잠시 일한 뒤 1954년에 자신의 사무소를 개소했다.[3]

법률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 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66년 ‘미디어 워크숍’을 창설해 저널리즘과 광고의 인종적 편견과 싸웠다. 그는 전국여성정치연합(전미여성기구, NOW)도 결성해 여성주의 정당활동을 시도했다. 뉴욕주에서 열렬히 낙태 지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1]

플로린스 케네디는 NOW의 노선변화에 불만을 품고 1970년 NOW를 떠난 뒤, 1971년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뉴욕주의 임신중절금지법에 대한 집단소송을 주도해 승소했다.

2000년 12월 22일 84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3]

로우 대 웨이드 소송

배경

당시 임신중절은 1800년대 후반에 제정된 뉴욕주 법령에 의해 금지된 상태였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도 매년 120만 건의 불법 임신중절이 시행됐다. 미국에서 진행된 임신중절법 청문회에서 여성이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단체 레드스타킹즈는 1969년 '중절을 향한 외침'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임신중절 토론의 쟁점을 강간과 근친상간에서 여성의 선택권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2]

승소

플로린스 케네디는 페미니스트들로 구성된 법률자문단과 함께 불법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증언을 모아 뉴욕주의 임신중절금지법에 대한 집단소송의 근거로 제시했다. 4년 뒤, 미국 대법원은 역사적인 '로우 대 웨이드' 소송을 통해 모든 주에서 임신중절을 합법화했다. 판결문은 미국 국민에게 보장된 개인생활권리가 국가의 간섭 없이 아이를 가질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포함한다고 명시했다.[2]

이후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 반대자들은 자금 지원을 방해하고 사설 클리닉에 항의하는 등 격렬히 반발했다. 이들은 중절 시술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임신중절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2]

저술

어록

어록

만약 남성이 임신할 수 있었다면, 임신중절은 성찬 의식이 되었을 것이다.[주 2]

자유는 목욕과 같다. 매일매일 계속해야 하니까.[주 3]

쇠창살문을 덜커덩거려야 합니다. 당신이 안에 있고, 나가고 싶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소음을 만들고 말썽을 일으키세요. 당장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훨씬 더 재미있을 겁니다.[주 4]

가장 반페미니즘적인 두 기관 - 교회와 법정 - 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추측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 두 곳의 남자들은 드레스를 입고 있거든.[주 5]

가장 큰 죄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것이다.[주 6]

매니큐어나 인조 속눈썹은 정치가 아니다. 당신이 좋은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무엇을 입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중년 부인처럼 입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지 않는다. 내 정치적 견해는 내 가슴이 브래지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여부와 상관이 없다.[주 7]

나는 여성 법조인이라는 이유로, 내가 바지를 입고 법을 수행할 수 없다는 말을 드래그 차림의 판사에게서 듣는다.[주 8]

부연 설명

  1. 심지어 흑인이라는 것도 입학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2. If men could get pregnant, abortion would be a sacrament.
  3. Freedom is like taking a bath: You got to keep doing it every day.
  4. You've got to rattle your cage door. You've got to let them know that you're in there, and that you want out. Make noise. Cause trouble. You may not win right away, but you'll sure have a lot more fun.
  5. It's interesting to speculate how it developed that in two of the most anti-feminist institutions, the church and the law court, the men are wearing the dresses.
  6. The biggest sin is sitting on your ass.
  7. Nail polish or false eyelashes isn't politics. If you have good politics, what you wear is irrelevant. I don't take dictation from the pig-o-cratic style setters who say I should dress like a middle-aged lady. My politics don't depend on whether my tits are in or out of a bra.
  8. Here I am a woman attorney being told I can't practice law in slacks by a judge dressed in drag.

출처

  1. 1.0 1.1 1.2 박이 은경 기자 (2005년 5월 12일). “여성운동 1세대 플로린스 케네디 작고”. 《여성신문》. 
  2. 2.0 2.1 2.2 2.3 세라 허먼.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페미니즘》. 2019년 12월 24일에 확인함. 
  3. 3.0 3.1 Douglas Martin (2000년 12월 23일). “Flo Kennedy, Feminist, Civil Rights Advocate and Flamboyant Gadfly, Is Dead at 84”.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