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중심주의

최근 편집: 2023년 2월 12일 (일) 19:50

피해자 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으로 특히 권력차이로 인해 발생하고 가해자의 보복이 쉬운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 문서에서는 그중에서도 성폭력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개요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건을 해석하고 수사, 판단할 때 가해자의 의도, 경험보다는 피해 당사자의 진술, 경험, 관점을 중심에 둔다. 이를 위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의 피해 호소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그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요구한다.[1]

시초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성희롱이 범죄라는 사실이 입증된 첫 사례는 1993년 발생한 이른바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다.[2]

중요성

한국성평등상담소[주 1] 관계자는“성폭력이란 것은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며 “성폭력 사건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3]

피해자 중심주의는 반성폭력 운동과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해 왔다. 이는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해 남성의 시각과 언어로 구성되어왔던 ‘객관성’을 해체하고, 성폭력,가정폭력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했을 때만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4]

한국 사회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남성중심적이고 가해자 시선 중심적인 통념이 작동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는 진술하는 과정에서 비난 받는 것, 위축되거나 주눅드는 것, 보복이나 권력관계에서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장치이다.

목적

보통 소매치기강도, 절도, 사기등 행위에서 '너는 왜 지갑을 들고 있었냐', '너는 왜 칼을 피하지 못하고 찔렸냐' 라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피해 원인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성폭력 사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옷차림이 어땠느니, 유혹을 했네 마네, 왜 어두운 길로 다녔느냐, 왜 배우자에게 잘 하지 않았는가 등 피해자의 언행을 흠잡는 발언과 인식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인 폭행 사건을 다룰 때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맞을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가차없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것은 피해자와 가해자까지 포함해서, 사건 당사자의 평소 언행 등이 그 폭력과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폭력이라는 가해사실을 제쳐두고 피해자를 '검증'하는 듯한 요소가 굉장히 많다. 저항을 했는지 아닌지, 가해자와의 사적인 관계가 어땠는지, 평소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는지, 바람을 피웠는지 등 사건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판결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아무리 어이없는 판단요소라 할지라도 재판부 혹은 사회의 구미에 맞게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피해사실조차 피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이미 남성중심적인 사회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질문과 질타, 의심과 의구심, 부당한 시선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2차 가해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게 된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오해와 논란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를 보호할 사상이지만, 피해자 중심주의로 인한 문제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개념적인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피고인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인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 이전까진 '피해자'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를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 의해 '피해자'라는 용어가 남발되어 확실하게 도움을 받아야 할 진짜 '피해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절대로 피해자 절대주의가 아니다. 피해자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의미도 아니다. 중요하니 두 번 서술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말만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젠더 문제에 관련해 지나치게 경직되고 남성중심적인 사회분위기, 계급적이고 권력적인 관계 속에서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는 의미이다.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오해하고 거부감을 갖는 경우는 대부분 남성들인데, 이 것은 남성들이 본인이 구조적으로 잠재적인 가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일부 이런 반감을 가지는 남성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스스로가 범죄자가 되지 않는 것,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반감이 드는 일인가 아닌가를.

피해자 중심주의는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에서도 적지 않은 오해가 나타나고, 그러다보니 때때로 적지않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연스레 성폭력 문제제기를 '반대파에 대한 탄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노동자연대 같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비난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7년 3월, 권김현영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이 부수적 피해 이상의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의 글에서는 지금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1) 피해자에게 사건의 판단기준 전체를 위임한 것이 아니며 (2) 처벌의 수위를 결정할 일방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며 (3) 경험에 대한 독점적인 해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오해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1) 피해자의 경험에 대한 독점적 해석과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구하는 경향 (2) 상황과 해석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묻거나 '재빠른 지지'를 보이지 않았을 경우 2차 가해로 지목되는 경향.[5]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피해자 중심주의'

그럼에도 피해자 중심주의는 포기할 수 없다. 성폭력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놓여있는 맥락들을 배제하고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하에서 사건을 해석하다보면 자연스레 가해자의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합리적 여성'이라는 전제하에 여성의 시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 개념은 적지 않은 이점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놓인 독특한 맥락들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박유천 사건에서와 같이 피해자가 성노동자였다고 치면, '합리적'이라는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성노동자와 같은 특수한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편견어린 시선을 부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사건과 경험의 '편파적 해석'을 위한 도구가 아닌 '객관적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6]

피해자 중심주의의 태도를 보인 판례

[대판2020도6965]
❝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피고인의 친딸로 가족관계에 있던 피해자가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 그리고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를 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하여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대판2020도2433]
❝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를 당하였다는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하여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친족으로부터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당하였다고 진술하는 경우에 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자신의 진술 이외에는 달리 물적 증거 또는 직접 목격자가 없음을 알면서도 보호자의 형사처벌을 무릅쓰고 스스로 수치스러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고, 허위로 그와 같은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술 내용이 사실적·구체적이고,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특히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를 당하였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하여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으므로,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내용 자체의 신빙성 인정 여부와 함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하여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부연설명

  1. 없는 기관이다, 기사의 오기로 생각됨.

같이보기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