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개봉한 이수진 감독의 영화 '한공주'는 10대 집단성폭행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배우 천우희)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한 실화로, 영화를 통해 당시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극중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에 관해서 논란이 있다.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표현방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부분을 부각시켰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라디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김혜리의 주간영화 (2014. 04. 29) 중 발췌
스포일러가 포함된 발췌문
이동진: 저는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좋았다는 전제하에 말씀을 드린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한 번 김혜리씨하고도 나눠보고 싶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저는 이수진 감독이 한공주를 만들면서 어떠한 불순한 마음이 있었다고 전혀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결이라는 게 있기 때문인데 영화에 담겨있는 것들을 보게 되면 이 감독이 얼마나 이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예의를 갖추려고 했는지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영화에 그때 그 사건이 영화 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이에요. 구체적으로.
제가 보기에는 그때 그 사건, 다시 말해서 집단적인 폭행 장면이 무려 3번에 걸쳐서 영화에 나옵니다. 한 번은 그 일을 무참하게 당하고 있는 주인공 소녀의 얼굴 위주로 직접적으로 보여줬는데 저는 '저걸로 암시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두번째는 훨씬 더 센 장면이 뒤에 나와요. 거실 가득히 남자 아이들이 있단 말이죠. 풍경 자체가 굉장히 끔찍한 장면이죠. 그런데 그 장면에서 이제 그 일을 주동한 아이가 나쁜 짓을 끝내고 나서 선풍기 앞에서 자기 머리를 말립니다. 그 순간 선풍기가 좌우로 회전하잖아요. 선풍기의 시점쇼트라고 해야하나, 그것을 통해서 거실의 우측을 보여주는데 거실 한쪽 끝에 또 다른 소녀가 폭행당하고 있는 장면을 롱쇼트이긴 하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잖아요. 그 장면이 나올 때 저는 굉장히 놀랐거든요.
김혜리: 그게 선풍기 회전의 끝무렵에 있었기 때문에 더 그걸 보여주려고 고개를 돌린 것처럼 됐죠. 결과적으로는.
이동진: 그렇습니다. 거기서 또 한번 그 이후에 중간에 보면 자기 아이가 큰일날 거 같으니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들어와서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데리고 나가면서 아버지가 옆을 딱 봅니다. 거기서 인서트 숏으로 역시 상당히 적나라하게 아주 짧은 폭행 장면을 보여줘요.
김혜리: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선배하고도 이야기를 했었던 장면인데. 거기에 대해서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계시나요?
이동진: 여전히 갖고 있어요. 저는 행사가 있어서 감독님한테 이 이야기를 여쭈어 보기도 했었고 감독님의 대답도 수긍은 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가 안된 부분이 있고
이 세 장면은 예를 들어서 김혜리씨가 좀 전에 다른 인물 설정이 과하다(은희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한공주를 도와준다는 점, 한공주의 부모가 너무 딸한테 무관심한 점)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가 조금조금씩 과한 것보다는 (이런 과한 묘사장면들이) 조금 더 큰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런 끔찍한 사건들을 다루는 어떻게 보면 약간 태도에 관한.. 그 이후의 여파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굳이 최초의 얼굴 위주의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끔찍한 장면을 굳이 왜 두번이나 더 구체적으로 보여줬을까에 대해서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김혜리: 저도 완전히 동의를 하고요. 제가 이수진 감독님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마주 앉아서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들은 설명을 전해드린다면, 그 방에 남자 가해자 아이들이 모여있는 장면에서 정말 어떻게 찍어야할지 고민스러웠대요. 그래서 거기 설치되어있는 선풍기라는 무생물 물체의 시점 숏으로 넘겨줬다고 결정을 하셨다고 하고요. 다른 가해자 중의 한 명이지만 주동하지 않았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지옥에서 자기 아들만 빼내가는 장면. 그 동안에서도 계속 진행되는 폭행장면은 의도적으로 머무르듯이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잖아요. 그건 정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런 지경에서 어른이라는 사람이 말리지 않고 자기 자식만 빼가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정도로 얘들이 제정신이 아니다, 누군가 어른이 들어와도 멈추지 않을 정도로 병적인 상태다. 짐승의 상태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연출자의 의도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