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청련 1980년대 활동

최근 편집: 2019년 7월 16일 (화) 17:42

1980 신군부 전두환의 등장과 학생운동: 마침내 박정희의 죽음으로 18년의 군사독재가 끝이나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으로 민주운동세력들은 더욱 더 탄압을 받기 시작합니다.

1980 5.18 민중항쟁: 결국에는 광주에 계엄군을 보내 시민학살을 자행,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막으려 했으나 이로 인해 5·18민중항쟁은 오히려 민주화운동이 더욱 커나가는 중요한 디딤돌로 거듭나게 됩니다. 다음을 참고할 것 5·18 민중항쟁 관련 활동 (LA 지역)

1981 4월 윤한봉 미국망명: 한편 5·18민중항쟁 마지막 지명수배자 윤한봉은 살아남은 자의 빚을 안고 미국에 망명, 해외운동의 주체인 한청련/한겨레를 조직하게 됩니다.

1983

  • 광주 수난자 돕기회 발족
  • 민족학교 설립 (나성)
  • 빈센트 친 학살 사건 부당재판 규탄 시위
  • 나성한국청년연합 결성

1984

  • 재미한국청년연합 결성
  • 북가주민족교육봉사원 설립
  • 북가주한국청년연합 결성
  • 뉴욕한국청년연합 결성
  • 시카고한국청년연합 결성
  • 시애틀한국청년연합 결성
  • 제1차 재미한청련 정기총회 (시카고)
  • 뉴욕청년교육봉사원 (현 청년학교) 설립

1985

  • 뉴잉글랜드한국청년연합 결성
  • 필라한국청년연합 결성
  • 5.18 민중항쟁 기념사업 위원회 결성
  • 달라스한국청년연합 결성
  • 통일과 제3세계 연대를 위한 재미동포회의(북가주)

1986

  • 주한미군철수/핵무기 철거 촉구시위(북가주 연방청사)
  • 민주개헌추진위원회 결성
  • 시카고청년교육문화원 설립
  • 덴버한국청년연합 결성
  • 워싱턴디씨한국청년연합 결성
  • 한겨레미주홍보원 설립 (워싱턴디씨)
  • 해외운동발전을 위한 재미동포회의 개최 (워싱턴디씨)
  • 주한미군철수/핵무기 철거촉구
  • 워싱턴 디씨 시내 가두행진 및 백악관 앞 시위

1987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규탄 단식
  • 호주 시드니 한국민족자료실 설립
  • 임진택 선생, 창착 판소리 <똥바다> 미주 순회공연
  • 유홍준, 김용태 선생  민중미술 슬라이드 쇼
  • 한인원폭희생자 추모의 밤
  • 조국의 군사 핵문제 교육용 슬라이드 <파멸이냐 생존이냐> 제작
  • 민족의 통일과 단결을 위한 해외동포대회 개최 (나성)

  • 재미 한겨레운동 재미동포연합 결성
  • 조국문제에 관한 타민족 대상 공개토론회

1988

  • 주한미군 핵무기 철거 요청 서명운동 (10만명 서명, ~ 89 8월)
  • 8.15 남북청년학생회담 성공 및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해외동포대회 개최 (뉴욕)
  • 국토순례대행진 및 남북청년학생회담에 대표 2명
  • 백기완 선생 미주 순회강연

1989

  • <Cry of Asia> 유럽 및 아태지역 순회공연 참가(~ 1999 12월)   
  • 영화 <오, 꿈의 나라> 미주 순회상영
  •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 및 미주평화대행진 참여
  •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결성, 유럽 비핵군축회의 및 원수폭 금지대회 참가
  • 평화협정 체결 및 유엔분리가입 저지를 위한 3주간 단식농성 및 유엔대상 외교활동

미주평화대행진

외세의 전쟁개입후 갈라진 한반도는 아직도 정전이 아닌 전휴으로 남아있다. 남북이 서로를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대치 상황이기에 미군의 핵무기로 무장한 남부조국에서 평화정착운동은 조국의 민주화만큼이나 중요한 숙제로 남아있다. 특히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항하는 북부조국의 핵무기 발개논리는 더욱더 한반도를 위험속으로 몰아넣게 되기에 오직 양국간의 평화적 외교수단을 통해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1988년 4월부터 14개월 동안 한청련, 한겨레는 Korea Support Network (한국지원연락망) 단체들과 함께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 미군 핵무기 철거 서명운동을 벌여 귀중한 10만 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서명용지를 뉴욕 유엔 본부 앞 광장에서부터 필라 연방청사까지 차량 행진, 그리고 워싱턴 디씨까지 장장 150 여 마일을 7일 간의 평화대행진을 통해 1989년 7월 27일 미 연방 의회에 전달하였다. 10만 여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한청련과 한겨레는 30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과 동포들을 만나 주한 미군 핵무기 철거의 당위성에 대해 알렸다.

국제평화대행진

1989년 8월 세계 평화 운동가들과 연대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였다. 한청련 회원 120여명과 외국인 30여명이 참여했고 전국대학생협의회 대표 임수경전국정의평화사제단 대표 문규현 신부가 합류한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에 집중시킨 대행사였다. 또한 15일과 22일의 단식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 긴장완화 및 평화협정 체결을 UN에 촉구하였다. 1989년 10월 UN 앞 22일간의 단식운동은 UN 창립 이래 최장기간의 단식 농성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