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역사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6:05

본 문서에서는 KBO 리그에 참가 중인 한화 이글스 야구단의 역사를 서술한다.

창단

1982년 프로야구가 6개 구단으로 출범하였다. 당시 충청권에는 창단 희망 구단이 없었고, 결국 OB가 3년 후 서울 이전을 조건으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창단한다.

1985년 KBO 이사회에서 한화그룹의 창단신청이 승인되었고, 대국민공모를 통해 팀 이름은 '빙그레 이글스'로 정해졌다. 초대 감독은 배성서 감독이었다.

1986년, 드디어 빙그레 이글스는 KBO 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7번째로 프로야구에 입성한 것이다. 당시 전기리그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나, 후기리그에서는 6위로 상승하였다. 1987년에도 빙그레 이글스는 6위를 기록한다.

이 무렵에는 투수진에서는 한희민이상군, 타선에서는 이정훈·유승안·이강돈 등이 활약하였다.

안착

1987년 10월 이글스는 제2대 감독으로 김영덕을 영입한다. 정규시즌 승률 기준으로, 빙그레 이글스는 1988년 2위 - 1989년 1위 - 1990년 4위 - 1991년 2위 - 1992년 1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당시 최강자이던 해태 타이거즈의 벽에 막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1992년에도 강병철 감독이 이끌던 롯데 자이언츠에 패배한다.


빙그레 → 한화

1993년 11월,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 이글스로 팀명을 변경한다. 그리고 제3대 감독으로 강병철 감독을 영입한다. 강병철 감독은 세대교체를 목표로 팀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1995년 이글스는 정규시즌 6위를 기록한다.

1996년에는 구대성의 활약, 그리고 신인 선수들의 역할이 합해져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였으나 1997년과 1998년에는 모두 7위를 기록한다. 1997년에는 이강돈, 강정길 등의 공백이 컸고, 1998년에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원인이 되었다.


1999년 우승

1998년 7월, 당시 이희수 수석코치가 감독역할을 대행하게 된다. 1998년 말에는 이희수 감독대행이 제4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99년 프로야구는 드림리그(두산, 롯데, 현대, 해태)와 매직리그(한화, 삼성, LG, 쌍방울) 양대 리그 체제로 구성되었다. 드림리그 1위 - 매직리그 2위, 매직리그 1위 - 드림리그 2위가 승부를 겨룬 뒤, 각 경기의 승자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드림리그에서는 두산과 롯데가 각각 1, 2위를 기록하였고 매직리그에서는 삼성과 한화가 각각 1, 2위를 기록한다.

매직리그 2위 한화는 드림리그 1위 두산에게서 4연승을 거두었다. 한편 드림리그 2위 롯데는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매직리그 1위 삼성으로부터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한화 이글스는 롯데 자이언츠를 4승 1패로 제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한화 이글스 선수단 및 관계자들이 '20세기 최후의 승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촬영한 기념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2000년에는 한화 이글스는 LG, 롯데, SK와 함께 매직리그에 편성된다. 한화 이글스는 매직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였다. 승률을 기준으로 드림-매직 리그 8개 구단의 순위를 합쳐 매길 경우, 한화 이글스의 순위는 7위가 된다.

2000년 11월, 제5대 감독으로 이광환 감독이 취임하였다. 2001년부터는 양대 리그가 사라지고 다시 단일 리그로 환원된다. 팀의 성적은 2001년 4위, 2002년 7위를 기록한다.

다시 2002년 11월, 제6대 감독으로 유승안 감독이 취임한다. 유승안 감독은 이글스 선수 출신 최초 감독이었다. 2003년에는 팀 성적이 5위, 2004년에는 7위를 기록한다.

2004년 10월에는 제7대 감독으로 김인식 감독이 취임한다. 2005년 한화 이글스는 정규리그를 4위로 마치고, SK를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2006년에는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치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여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둔다. 2006년은 류현진이 입단한 해이기도 하다. 2007년에도 정규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둔다.


2009-2014: 리그 최하위권

2008년 한화 이글스는 5위를 기록하였고, 2009년에는 8위를 기록한다. 이것은 한화 이글스로서는 창단 이후 처음 맞는 힘든 시기의 시작이 되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시즌 동안, 한화 이글스는 2011년 한 차례 공동 6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리그 최하 순위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연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한화 이글스의 순위 8위 8위 6위 8위 9위 9위
리그 참여 구단 수 8 8 8 8 9 9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거두는데, 이것은 야구 팬덤의 르네상스를 가져오는 기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의 시기는 한화 이글스가 최하위권에 머무르던 때와 맞물려 있다. 결국 이는 한화 이글스가 약체팀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2010-2012: 한대화 감독

2009년 9월, 이글스는 삼성 라이온즈 한대화 수석코치와 3년 계약을 맺는다. 한대화 감독은 제8대 감독이었다. 2009년 11월 김태균이범호일본으로 이적하였는데, 2010년에는 이러한 전력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는 최하위를 기록한다.

2011년에는 공동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송신영을 영입하고, 김태균이 복귀하였으며 박찬호가 입단하였다.

2012년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시즌 중 한대화 감독은 물러난다. 이후 한용덕이 감독대행직을 맡았다.

2013-2014: 김응용 감독

2012년 말, 한화 이글스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다. 이 시기 박찬호는 은퇴를 선언하였고,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2군 구장인 서산 구장이 완공되었다.

2013년,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KBO 리그에 진입하면서 프로야구는 9구단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는 9위를 기록하고 만다. 구단은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인 정근우이용규를 영입한다. 그러나 2014년에도 한화 이글스는 9위를 기록한다.

2015-2017: 김성근 감독 재임 및 퇴진, 이상군 감독대행

김성근 감독 재임기

2014년 가을, 제10대 감독으로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전 SK 감독을 영입한다. 이것은 인터넷상 야구 팬덤의 움직임이 실제 감독 인선에 영향을 끼친 이례적인 사건이다. 2014년 겨울에는 FA로 배영수, 권혁, 송은범이 한화에 입단한다. 2015년 11월에 한화 이글스는 FA로 정우람심수창을 영입하였다.

kt wiz가 합류한 뒤, 10개 구단 체제에서 2015년 한화 이글스는 6위, 2016년 7위를 기록한다. 김성근 체제 하에서의 한화 이글스는 2년 간 많은 주목을 받았고, 리그 순위 역시 상승하여 최하위권을 벗어났다. 2015년 누적 관중 수는 65만 7385명이었고, 2016년 누적 관중 수는 66만 472명으로 연이어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러나 많은 기대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성공하지 못했고, 감독이 선수를 과도하게 혹사시킨다는 비판도 불거졌다.

2017 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는 한국 FA에서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그 대신에 외국인 선수들과의 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2016년 타선에 큰 힘이 된 외국인 거포 윌린 로사리오와 다시 계약에 성공한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투수 알렉시 오간도카를로스 비야누에바를 영입한다.


이상군 감독대행

삼성과의 3연전에서 스윕패한 뒤,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다. 구단 측과 김성근 감독 사이의 갈등이 그 배경에 있다고 전해졌다. 시즌 중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지 않고, 2017시즌 동안에는 이상군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고 계속해서 팀을 꾸려나가기로 결정되었다.

2018-: 한용덕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