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9:14

합리주의(合理主義, 영어: Rationalism) 또는 이성주의(理性主義)는 인식적 사유(understanding)와 감각적 인지(perception)를 나누고, 사유가 전(全) 우주에 통하는 보편성의 한 단면이자 보편성을 포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는 철학 사조를 일컫는 용어이다. 합리주의자들은 생물체가 경험적으로 인지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본체(本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본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경험적 인지가 아닌, 사유 또는 이성, 인식이라고 본다.[1]

용어 유래

라틴어인 ‘Ratio’는 계산, 의심, 이성, 추론 등을 뜻하는 말이다. 절충주의자이자 초월론적 관념론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대륙철학과 영국철학 사이의 대립에서 합리성에 경도된 교조적인 대륙철학자들을 가리키는 데에 이 용어를 썼는데, 이러한 용법은 오늘 날 철학계에서 ‘합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부차적 개념

합리주의 내에서 ‘알아차림’(cognition)의 종류는 인지(=감각 또는 지각, perception), 사유(=이성 또는 지성, understanding), 인식(=관조 또는 직관, Intuition) 총 세 가지이다. 인지는 환경적 산물에 따른 수동적 반응을 의미한다. 인지는 오감(五感)에 따른 수동적 반응이며, 기계적 반응에 불과하다. 인간이 이 인지에 빠지게 되면 부분만을 진실로 착각하여 심대한 오류를 저지르게 되며, 기계적인 본능에 빠져 그야말로 무지한, 정열적 삶을 살게 된다. 인지를 통해서 본질을 알 수 없으나, 일원론자들은 인지가 인식으로 향할 수 있게 하는,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알아차림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로, 사유는 대상물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로, 그것의 물자체를 완전히 보는 단계는 아니나 인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 단계를 의미하는 알아차림이다. 사유는 주어진 불완전한 정보를 정합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설명할 수도 있으며, 19세기 말의 독일관념론에서는 ‘변증’(辯證, dialectical method)과 차별성이 없는 개념으로 쓰였다. 마지막으로, 인식은 알아차림에서 최상의 단계로, 물자체, 즉, 본질을 관통하는 진실의 알아차림이다. 대상물에 대해 인식을 행하는 자는 대상물에 관해서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며, 피동의 상태가 아닌, 능동의 상태가 된다.

반면, 경험주의 사조는 오직 인지만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역사

합리주의란 명칭은 근대에 등장했으나, 그 근원이 되는 사조는 이미 고대 때 나왔다.

고대

고대에는 합리주의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지-사유 이분법이 최초로 등장한 때는 고대 그리스 시기[2]였다. 따라서, 고대에도 어느 정도 합리주의적 사조가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최초의 선구자는 철학가이자 수학자피타고라스(Pythagoras)인데, 피타고라스는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에 기초하여 영혼의 사유와, 육체의 정열을 분리한 뒤, 영혼의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의 방법으로 바로 ‘수학적 사고’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에 반하여, 육체의 정열은 그저 지각된 것을 느끼고 그에 따라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모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영혼의 사유를 행하는 자만이 전 우주(Cosmos, 또는 대우주)의 보편 법칙을 체득할 수 있고, 세상 만물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반(反)민주주의자로서, 철학자들에 의한 엄격한 귀족 정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3]

이후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사상을 이어받은 플라톤(Platon)이 인식론 관점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이원론을, 그리고 파르메니데스로부터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보편자로서의 이데아(Idea) 개념을 차용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플라톤주의(Platonism)라는 고대합리론의 한 형태이다.[4] 이후 플라톤의 학설은 이원론을 그대로 유지하는 계파와,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의 유전(Panta rhei ,流轉)의 논리를 바탕으로 플라톤주의를 일원론으로 발전시킨 스토아 학파 사이의 여러 이론적 논쟁 끝에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으로 화하였다. 특히 플로티노스(Plotinos) 이후에는 스토아 학파에서 논한 이성(Logos)의 추구(apatheia)를 통하여 황홀경(ecstasy) 경지에 이르는 방법으로, 신비주의적 합리론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것이 신플라톤주의의 유출론(Emanationstheory, 流出說)이다. 유출론은 자연물질로 하강하는 악(惡)과, 일자로 상승하는 선(善) 사이를 가르고, 관조(觀想, Theoria)를 통하여 자연물질 속에서 매 본질을 관통하여 일자로 나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형태의 합리주의였다.[5]

근대

근대철학에서 합리주의 사조의 3대 거장으로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있다. 이 중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기계론에 근거한 합리주의자였고, 라이프니츠는 목적론에 근거한 합리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데카르트는 이원론자이자 객관적 관념론자, 스피노자는 일원론자이자 유물론자, 라이프니츠는 다원론자이자 유심론자였다. 각자의 철학 사상에서 차이점이 있으나, 모두 기본적으로 인지와 사유를 구분한 다음 겉모습에 불과한 현상(現象)과, 물자체 그 자체인 본질(本質)로 나누었다는 점, 그리고 인지는 전자를, 사유는 후자를 알아차리기 위한 수단으로 봤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6]

칸트 등장 이후에는 이른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적절히 배합한 초월론적 관념론, 칸트주의가 유행하였으나, 교조적 합리주의자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과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칸트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다시 합리주의를 강조하였다. 이후 셸링과 피히테,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저서를 종합한 인물이 바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다. 이렇게 하여, 근대 합리주의의 총체는 헤겔에 의해 종합되었고 이후 헤겔학파의 급진파이자 유물론 집단인 청년헤겔학파가 헤겔철학의 합리주의 성격을 고수하면서 합리주의는 오늘 날까지 유물론의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현재

합리주의는 근대 이후에 나온 모든 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줬지만, 사실 통일된 사상으로서 합리주의가 철학 학계를 지배하다시피 한 적은 거의 없다. 합리주의 사조가 지배적인 역할을 했던 때는 헤겔이 살아있었던 시절의 독일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청년헤겔학파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이론에 따라 세워진 사회주의 국가 철학계에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기에 활동한 데보린, 미틴, 콘스탄티노프 등은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범적인 합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산권이 대부분 무너진 현 시점에서 역시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못 하고 있다. 현재 영국과 미국 분석철학 및 심리철학계의 지배적인 관점으로 남아 있는 경험주의와는 대조된다.

그리고 합리주의는 1950년대1970년대의 과정을 거쳐서 혹독한 비판을 받은 사조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는 신칸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문화 이론을 절충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독일어: Frankfurter Schule)[7]의 일군들이 고전적 합리주의와 헤겔주의, 그리고 정통마르크스주의와 소련마르크스-레닌주의를 철저히 비판하였다. 특히 내부 학파인 하버마스파는 숙의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 합리주의를 비판했는데, 이들 비판의 골자는 합리주의의 인지-사유 이분법과 보편성에 대한 갈망이 바로 자유로운 선택과 다양성 파괴라는 폭력성을 낳게 하였다는 것이다.[8] 1970년대 초반부터는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가 대두되면서 다시 한 번 비판을 받았다.

같은 시기에 등장한 생철학(독일어: Lebensphilosophie, 生哲學)도 또한 합리주의 비판을 철학 정립의 숙원으로 삼았다. 때문에 생철학은 ‘반(反)합리주의 사조’라고까지 불린다. 특히 생철학과 연관이 깊은 칼 포퍼(Karl Popper)는 합리주의를 창시한 플라톤이야말로 독재와 전체주의의 선구자이며, 이 교의를 근대에 가져와 세계 해석을 시도한 헤겔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나, 위에도 서술했듯이, 합리주의 사조는 그것 자체보다는 다른 학문에 부차적으로 이용될 때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다. 소위, 19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인지심리학이라 일컬어지는 심리학계에서 지배적인 학파는 기존 행동주의에 합리주의에서 강조하는 사유 능력의 능동성, 그리고 생물학을 혼합한 학문이다. 마찬가지로 경험주의 계파라고 할 수 있는 분석철학도 자체적인 한계로 인해 21세기에 들어서 합리주의의 일부 이론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작업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로버트 브랜덤(Robert Brandom), 윌프리드 셀러스(Wilfrid Sellars), 존 맥도웰(John McDowell)이 있다.[9] 엄격한 의미에서 합리주의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 철학자는 프랑스의 철학자인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있다.[10]

여성과 합리주의

교조적인 합리주의자들은 신체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완전히 지엽적인 차이에 불과하며, 사유 형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Politeia)에서 여성과 남성은 물리적 측면에서 신체의 차이, 기타 외형의 차이만 있을 뿐, 지능과 영혼이 있다는 것은 같기에 여성도 철인정치가 실시되는 공산사회에서 수호자 계급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11] 플라톤의 학설을 이어받은 그리스와 서부 아랍 지역의 일원론자들도 역시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껍데기일 뿐인 외형만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합리주의자들이 생물학적, 환경인지적 측면을 정합적 사유의 힘[12]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지적한 '동일성의 논리'로부터 나온 결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13]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경우는 『제2의 성』에서 기존 근대철학의 양대를 모두 비판하였고, 근대의 '합리성'이라는 개념도 가부장제의 틀에 박혀있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반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인 메리 댈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에서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여성, 남성이 모두 갖고 있는 지고의 신(god) 개념을 망각한, 탈거된 층위의 담론으로부터 표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하여 페미니즘에서 합리주의 테제를 다시 부활시켰다. 메리 댈리는 자연 상태에서 여성이 갖는 필연적 상황과, 그것이 만물에 내재된 보편법칙과 상응하여, 결과적으로 여성이 신성적으로 탁월한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테마를 페미니즘에 도입한 것이다.[14]

각주

  1.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ationalism vs. Empiricism First published August 19, 2004; substantive revision March 31, 2013 cited on May 20, 2013.
  2. 훨씬 이전에 북인도 지역에서 등장했으나, 본 문서는 서구 및 아랍권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3. Cicero, Tusculan Disputations, 5.3.8–9 = Heraclides Ponticus fr. 88 Wehrli, Diogenes Laërtius 1.12, 8.8, Iamblichus VP 58. Burkert attempted to discredit this ancient tradition, but it has been defended by C.J. De Vogel, Pythagoras and Early Pythagoreanism (1966), pp. 97–102, and C. Riedweg, Pythagoras: His Life, Teaching, And Influence (2005), p. 92.
  4. SUZANNE, Bernard F. “Plato FAQ: "Let no one ignorant of geometry enter". 《plato-dialogues.org》. 
  5. [1]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ncient Logic Aristotle Modal Logic
  6. Berolzheimer, Fritz: The World's Legal Philosophies. Translated by Rachel Szold. (New York: The MacMillan Co., 1929. lv, 490 pp. Reprinted 2002 by The Lawbook Exchange, Ltd). As Fritz Berolzheimer noted, "As the Cartesian "cogito ergo sum" became the point of departure of rationalistic philosophy, so the establishment of government and law upon reason made Hugo Grotius the founder of an independent and purely rationalistic system of natural law."
  7. 사회비판이론이라고도 한다.
  8. Kompridis, Nikolas. (2006). Critique and Disclosure: Critical Theory between Past and Future, MIT Press pp. 23-24
  9. Articulating reasons, 2000. Harvard University Press.
  10. 알랭 바디우(2013), 조형준 역, 『존재와 사건』(새물결) pp. 32-33, 50
  11. 플라톤, 이환(2014) 역, 『국가』(돋을새김) 「공산사회와 남녀평등」
  12. 자유의지와는 다르다. 합리주의자들은 오직 한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직관이 가능할 때에만 자유의지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것 미만의 모든 경우에는 결정론적 원리를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13. 막스 호르크하이머, 박구용(2006) 역, 『도구적 이성 비판』(문예출판사) pp. 106 - 109
  14. Pamela Sue Anderson, Beverley Clack(2004), 『Feminist Philosophy of Religion』(Psychology Press) pp. 123 - 124, 209 -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