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되는 원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01:40

확대되는 원 - 윤리, 진화, 도덕적 진보(The Expanding Circle - Ethics, Evolution, and Moral Progress)[1]도덕철학자 피터 싱어 (1946년 7월 6일- )의 저서이다.

싱어에 의하면 도덕 규칙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도 아니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의적이거나 완전히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싱어는 인간의 윤리 규범은 진화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사회성과 이성적 추론 능력에 의해 체계화되고 확대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확대되는 원'이라는 제목은 도덕 체계에 포함되는 대상의 확대를 말한다. 인간의 윤리 개념은 나, 친족, 소집단, 전체 인류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동물을 포함한 모든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확장되는 과정에 있다.

1981년에 출판되었고 2011년에 새로운 서문이 추가된 개정판이 나왔다.

요약

2011년 서문 (Preface to the 2011 Edition)

이 책은 사회생물학이 윤리학의 이해에 주는 함의를 평가한 초기 저작 중 하나이며, 이 책이 출판된 이후 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판되었다는 점, 초판 발행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의 주요 주장이 반박된 바 없고 당시에 비해 더 널리 수용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한다.

인간 윤리의 기반에는 인간 이전의 선조로부터 진화된 행동 패턴이 놓여 있으며, 윤리에는 생물학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었음을 선언한다.

에드워드 윌슨사회생물학(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담고 있다. 싱어는 윌슨이 사회생물학(책)에서 인간 윤리에 대해 부적절하게 다루고 있으며, 스스로의 저서가 윤리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한다.[주 1] 싱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접근법이 윤리의 기원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서문 (Preface)

서문은 윤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윤리는 객관적인가? 도덕법칙은 물리법직과 비슷하게 자연의 일부인가, 아니면 인간에게서 유래한 것인가? 인간에게서 유래한 것이라면 모든 인간이 수용해야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따라 상대적인가, 어쩌면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것인가?

윤리의 근원에 대한 체계적 탐구는 적어도 2500년 전[주 2]에 시작되었으나 도덕철학이 아직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세에는 종교가 이 문제를 다루어 왔으나 종교 또한 두 가지 이유에서 문제임을 지적한다. 첫째, 과거와 달리 종교적 믿음 자체가 더이상 범용적으로 수용된다 볼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신의 의지로부터 도덕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시도에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만약 신이 "살인을 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살인이 부도덕한 일이라면, 신이 "살인을 할지어다"라고 말하는 순간 살인이 정당한 일로 둔갑할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도덕성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을 시인해야 한다.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신의 의지와 별개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을 시인해야 한다. 이는 딜레마이다.

철학과 종교가 아니라면 답을 과학에서 찾을 것인가? 과학적 윤리학은 오랜 꿈이었지만 허버트 스팬서사회다윈주의[주 3]와 함께 죽은지 오래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1975년사회생물학(책)을 출판하며 부활을 노렸다. 당시 철학을 전공하고 있던 싱어 및 그의 동료들은 윌슨의 주장이 지나치게 가볍고 오류투성이라는 점에서 대응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으나, 적어도 윌슨의 접근법이 윤리의 이해에 도움을 주리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윌슨이 어설프게 건드린 사회생물학윤리학의 접점을 진지하게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저자는 또한 윌슨에게 이 책의 초안을 보여주었고 함께 토론을 하였다고도 밝히고 있다.

제1장. 이타성의 기원 (The Origins of Altruism)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 집도 없고 다른 이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했으나 후대의 고인류학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루소의 상상은 틀렸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500만년 전, 인간이 아직 인간이기 전부터 인간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무리지어 살았다. 이는 현생 고릴라침팬지와 유사한 형태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호모 하빌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기까지 우리는 항상 사회적 존재였다. 싱어는 루소의 가정이 오류로 밝혀진 이상 사회계약론이나 이에 근거를 둔 도덕철학의 여러 주장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윌슨1975년사회생물학(책)을 발표하며 생물학에 기반을 둔 윤리학 연구를 제안하였다. 다만 윌슨은 윤리를 직접 다루지 않고 이타적 행동에 집중하였다. 싱어는 침팬지나 가젤의 어떠한 행동이 윤리적인지를 따지기엔 난점이 있다는 면에서, 윌슨이 행동에 집중한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

1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타적 행동의 진화적 기원을 다루며 유전자 선택론, 혈연적 이타주의, 호혜적 이타주의, 집단 선택론을 간략히 설명한다.

제2장. 윤리학의 생물학적 기원 (The Biological Basis of Ethics)

싱어는 정착민이나 유목민, 수렵채집사회나 산업사회를 막론하고 관찰된 모든 인간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따라야 할 윤리 규범이 존재한고 말한다. 콜린 턴불의 저서 The Mountain People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유사한 사회에 대한 관찰 보고를 담고 있으나, 싱어에 의하면 이 사회에서 기본적 규범이 존재하며 구성원들은 윤리적 행동을 한다. 나치죽음의 수용소와 같이 의도적으로 인격을 말살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된 '사회'에서도 포로들은 서로를 돕고 음식을 나누는 등의 행동을 보인 바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싱어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윤리 규범의 기저에 생물학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해왔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동물은 본능, 인간은 이성'이라는 이분법을 믿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동물을 엄밀하게 구분하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해왔다. 찰스 다윈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인간과 다른 고등 동물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이니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이 아프리카의 대형 유인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침팬지와 계통적으로 가깝다는 점 등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다.

둘째, 문화권에 따라 윤리 규범이 대단히 다르다는 인식 또한 윤리 규범의 생물학적 기반을 부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윤리 규범의 다양성 속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내제되어 있으며, 이러한 공통적 규범은 다른 사회적 동물들에게서 발견되는 행동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싱어는 혈연적 이타주의, 호혜적 이타주의, 그룹선택론을 다루고 있다.[주 4]

제3장. 진화에서 윤리학으로? (From Evolution to Ethics?)

1장과 2장에서 생물학적 이타주의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간략히 다루었으니 3장에서는 사회생물학과 윤리학의 관계에 대한 윌슨의 주장을 비판한다. 싱어가 이 책을 쓸 당시 출간된 윌슨의 관련 저서는 사회생물학(책)인간 본성에 대하여 밖에 없었으므로 이 책에서는 이 두 권을 다룬다. 윌슨은 이후 여러 대중서를 추가로 저술하였는데 특히 통섭(책)(Consilience, 1998년)에서 기존의 주장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싱어의 비판에 대한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싱어의 분석에 의하면 윌슨의 주장은 적어도 진화 자체가 덕이며 진화이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건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사회다윈주의와는 다르다. 윌슨이 주장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첫째, 도덕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이 우리의 행위가 야기할 궁극적 귀결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싱어의 비판은 이렇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해 생물학적 지식을 활용하기에 앞서, 도덕철학자들이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무엇이 선인지 모르는 채로 행동의 귀결에 대해 알아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학이 인간 행위의 궁극적 귀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정보는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도 않고 아무런 영향을 줄 수도 없다.

둘째, 자명하거나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던 기존의 도덕률에 대한 믿음은, 그 바탕에 깔린 생물학적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약화될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싱어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도덕률의 근원을 생물학으로 환원하건 문화로 환원하건, 그러한 환원으로 인해 어떠한 도덕적 규범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상의 모든 도덕 규범이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윌슨이 주장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어떠한 도덕 규범을 남겨둘 것인지 따져야 할텐데, 만약 그 기준이 생물학적 원리에 기반하는 것일까? 만약 이게 윌슨의 답이라면 이 주장은 윌슨의 마지막 주장인 세번째 주장과 이어진다.

셋째, 생물학은 새로운 윤리적 전제를 발견해내거나 기존의 전제들을 재해석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싱어는 이 주장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생물학적 지식들은 사실에 대한 명제들을 만들어낸다. 윤리적 전제들은 당위에 대한 명제들이다. 생물학적 지식이 근본적 도덕 규범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 명제로부터 당위 명제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새롭게 알려진 사실들은 내가 이미 가치 있게 여기는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줄 수는 있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치로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영향을 줄 수 없다.

윌슨은 라울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이 이론은 인간 행동에 대한 설명성이나 예측성을 높여주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윤리학이나 도덕철학자에 대한 깊은 오해를 보여줄 뿐이다. 라울스는 물론이고 당대의 어떤 도덕철학자들도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연구를 하고자 했다면 그들은 윤리학자가 아니라 과학자가 되었을 것이며, 여전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덕철학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p78

제4장. 이성 (Reason)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화론, 생물학, 심지어 과학의 어떤 이론도 윤리 규범의 궁극적 전제(premises)를 알려줄 수 없다. 서문에서 밝힌 입장에 따르자면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결국 윤리 규범의 궁극적 전제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텐데, 싱어는 이 규범이 완전히 주관적이거나 임의적이지 않고 합리적 요소(rational components)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4장에서는 이 주장에 대한 사변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싱어는 인간 이성의 특별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성이라는 능력은 우리를 스스로 예측하지 못했던 지점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능력이다. 이는 예를 들어 '타자를 치는 능력'과 대비된다. 타자를 칠 때 나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내가 머리속으로 생각하던 글자들이 종이에 찍혀 나올 뿐이다. 반면 이성이라는 능력은 예측가능성이 적다. 견고하다고 여겼던 논증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거나 전에 취하던 입장을 버리게 될 수도 있다. ... 이성은 에스컬레이터와 같아서 일단 한 걸음 올라타면 그 끝이 어디에 이를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다.

싱어는 이성의 특별한 속성을 보여주는 비유로, 숫자를 세는 능력과 수학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숫자를 세는 능력은 인간 진화의 초기 단계에 나타났으며 일부 영장류에서도 발견된다. 인간의 셈 능력은 결국 어떤 식으로건 수학 발달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셀 수 있게 되면 덧셈과 뺄셈 개념을 익힐테고, 곧 나눗셈과 곱셈을 알게 되며, 직각삼각형의 변의 길이에 대한 생각은 무리수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등 '셈'이라는 기본적 능력은 필연적으로 복잡한 수학적 체계의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싱어는 윤리 또한 이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혈연적 이타주의에 의한 가족 내 이타성, 호혜적 이타주의에 의한 소규모 집단 내 이타성은 '셈'과 같은 기본 원료이다. 이 원료를 이성이라는 에스컬레이터에 태우면 일종의 연역적 과정에 의해 윤리적 체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구체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지고, 이 설명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사심없음(disinterestedness)' 또는 '객관성(objectiveness)'이 중요해지며, 객관적 설명들은 집단 내의 윤리 규범으로 관습화된다. 여러 집단 사이의 교류가 생기면 내가 속한 집단의 관습과 타집단의 관습에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고, 이는 곳 관습의 절대성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책의 제목이자 핵심 개념인 확대되는 원(expanding circle)이란 '사심없음', 즉 어떠한 행동이 올바르다는 점을 설득할 대상의 범주가 확대됨을 뜻한다. 이성이라는 에스컬레이터에 의해 이 범주는 개인 간의 설득에서 집단 간의 설득으로, 또 전 인류에 대한 설득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궁극적으로는 동물을 포함한 모든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제5장. 이성과 유전자 (Reason and Gene)

2장과 3장에서는 생물학적 이타주의에 기반한 좁은 범위에서의 도덕성을 설명하였다. 4장에서는 이성에 의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도덕성을 설명하였다. 5장에서는 이 둘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윤리 체계가 이 충돌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생물학적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이타적 행동이 개체의 포괄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싱어의 가설대로 인간의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생물학적 이타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의 도덕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성의 이러한 측면은 개체의 포괄적응도를 낮춘다. 왜냐하면 전에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은 1) 그 사람이 내 가까운 친척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혈연적 이타주의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렵고 2) 그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호의를 되돌려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호혜적 이타주의의 범주에도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주 5]

결국 인간에게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를 포함하는) 자기 중심적인 욕구가 강하게 존재하며, 동시에 이성에 기반한 사심없는 판단에 따르고자 하는 욕구도 존재할 것이다. 싱어는 인간의 윤리 체계가 이 둘 사이의 긴장의 결과라고 말한다.

제6장. 윤리학의 새로운 이해 (A New Understanding of Ethics)

6장에서는 앞선 논의의 결론을 요약하고 결론에 따르는 함의를 이야기한다.

도덕 규칙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도 아니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임의적이거나 완전히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싱어에 따르면, 인간의 윤리 규범은 진화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사회성과 이성적 추론 능력에 의해 체계화되고 확대되어 왔다.

싱어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문화가 유전자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 논한다. 날씨, 식량, 포식자, 기타 자연적 힘들이 인간 진화에 영향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 또한 인간의 진화에 영향을 준다. 문화가 인간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잘 분석할 수 있게 된다면 1) 현행 세대의 윤리적 규범에 일치하면서, 2) 장기적으로 진화에 영향을 주어 인간이 더더욱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게끔 장려하는 방향으로 문화를 가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주장은 얼핏 듣기에 우생학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우생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현행 세대의 윤리적 규범에 일치할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근대 이후의 인권 개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자연권을 갖기 때문에 우생학적 인구 조절은 현행 세대의 윤리적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다.

싱어가 말하는 적절한 사례는 강간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임신중절 허용이다. 안전한 임신중절 방법이 없고 강간범에 대한 제재가 강력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강간은 성공적인 번식 전략이었을 수 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더이상 그렇지 않다.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강해지고 임신중절이 더 안전해질수록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 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정책은 장기적으로 강간 피해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강간 행위에 유전적 소인이 있다는 전제 하에 타당하다. 이 전제의 타당성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강간의 자연사를 참고하자.

부연 설명

  1. 윌슨 자신도 사회생물학(책)을 저술할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주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2. 다른 대부분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고전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3. 다윈의 진화론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사례. 정작 다윈 본인은 사회다윈주의자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부 과학사학자들은 이를 사회스팬서주의로 불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4. 값비싼 신호 이론을 다루지 않는 점은 아마도 책이 쓰여질 당시에 이 이론이 널리 수용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혈연 내 이타성, 소그룹 내 이타성, 전인류에 대한 이타성, 동물권 등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원을 다루는 이 책의 주제에서, 값비싼 신호 이론은 소그룹 내 이타성을 넘어서는 범주에 대하여 그룹선택론과 함께 소개될만한 주제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이성을 지녔기 때문에 얻게 되는 진화적 이득의 총합이 그 손해에 비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처

  1. Peter Singer (18 April 2011). 《The Expanding Circle: Ethics, Evolution, and Moral Progres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1-4008-38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