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조남주 작가의 한국소설이다.

2017년 2월 7일에 민음사에서 출간되었으며, 모 인터넷서점의 2017년 1월부터 7월 17일의 베스트셀러 누적 판매량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혔다.

이 책은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기 첫 오찬 회동에 선물하기도 하였으며, 2017년 6월부터 봄바람 영화사에서 영화화를 준비중이다.

1 인용

  •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 /1982년~1994년, 2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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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박재헌 외, <확률 가족>(마티, 2015). 57~58쪽 & <여성 혐오의 뿌리는?> <<시사인>> 417호 참고).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서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 통계청). /1982년~1994년, 29쪽/
  •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정해진 직장을 가지고 출퇴근하지는 않았지만, 아이 셋을 돌보고, 노모를 모시고, 집안 살림을 온전하게 맡아 책임지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쉼 없이 찾아 했다. 형편이 고만고만하던 동네의 아이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다. 당시 보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처럼 ‘아줌마’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주부 특화 직종들이 붐이었는데, 대부분 회사에 직접 고용되지 않는 형태라 일터에서 분쟁이 생기거나 다쳐도 혼자 끌어안고 해결한다고들 했다(* 김시형 외, <기록되지 않은 노동>(삶창, 2016), 21~29쪽 참고). /1982년~1994년, 30쪽/
  • 어머니는 이 나이에 뭘 배우겠느냐고 손을 내저으며 웃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다. /1982년~1994년, 33쪽/
  • 손님을 뺏긴 미용실 아줌마에게 머리채를 한 번 붙잡히긴 했지만, 나름 동네 토박이인 데다가 평판을 잘 다져 놓은 덕에 민심은 어머니 편이었다. 고객층이 적당히 나뉘었고,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동네 미용실과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공존했다. /1982년~1994년, 34쪽/
  • 잠 깨는 약을 수시로 삼켜 가며 누런 얼굴로 밤낮없이 일해서 받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은 대부분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로 쓰였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딸들은 기꺼이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했다(* 박재헌 외, <확률 가족>(마티, 2015), 61쪽 참고). /1982년~1994년, 35쪽/
  • 어머니는 오빠들이 성실하고 반듯하고 공부를 잘하는 게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공장의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많이 했는데, 그 자랑스러운 오빠들이 경제려을 갖게 되자 막내 외삼촌을 뒷바라지했다. 덕분에 막내 외삼촌은 서울에 있는 사범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큰외삼촌은 집안을 일으키고 가족을 부양한 책임감 있는 장남이라고 칭찬받았다. 그제야 어머니와 이모는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는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82년~1994년, 35~36쪽/
  •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아이의 괴롭힘 때문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당해 온 것도 억울한데,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가 되기까지 했다. /1982년~1994년, 41~42쪽/
  • 특히나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밥을 조금 배식받는 것도, 남기는 것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식사 종료 5분 전부터 선생님은 남은 아이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왜 아직도 다 먹지 못했느냐고 꾸짖고, 얼른 먹으라고 재촉하며, 숟가락으로 식판을 탁탁탁탁 두드렸다. 먹던 밥이 목구멍에 컥컥컥컥 얹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진 아이들은 알약을 삼키듯 밥과 반찬을 입에 넣고 물과 함께 꿀꺽꿀꺽 삼켰다. /1982년~1994년, 42~43쪽/
  • 남학생이 1번부터 27번, 여학생이 28번부터 49번이고 번호는 생일 순서로 매겨졌다. 그나마 김지영 씨가 4월생이라 서른 번째라도 밥을 받았지 생일이 늦은 여자아이들은 앞 번호 아이들이 다 먹고 일어설 즈음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밥을 늦게 먹는다고 혼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었다. /1982년~1994년, 43쪽/
  •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해 버릇하지 않아서인지 푸념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1982년~1994년, 44쪽/
  • 선생님께 말한다는 건가. 감히 선생님께 할 수 있는 말인가. 김지영 씨는 잠깐 생각했지만 유나라면 해도 될 것 같았다. 유나는 공부를 잘했고, 유나 엄마는 육성회장이었다. /1982년~1994년, 45쪽/
  •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제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1982년~1994년, 46쪽/    

2 수상

3 출처

  1.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017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