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Boys' Love) 혹은 야오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미소년들의 동성애를 다루는 만화, 소설 등의 서브컬처 장르 중 하나이다. 꽃미남들을 볼거리로 삼으면서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그려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퀴어 장르와는 구분되는 면이 있다.[1] 특히 일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은 BL물이 비퀴어들의 포르노에 불과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만 가중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BL의 향유자들이 비퀴어일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이 창작물의 판타지적 허용과 퀴어의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리고 BL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섹스 장면이 꽤 등장하지만, 이것이 실제 게이들의 성생활과 완전히 다른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게이들이라고 해서 항상 안전한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콘돔의 중요성을 안다고 해도, 동성 간 섹스는 임신 가능성이 없기에 콘돔을 끼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기 마련[2]이라고 2019년에 한 게이 유튜버가 말한 바 있다.
역사
일본
대한민국
동성애 소재의 만화들은 처음엔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3]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한국의 순정만화가 자생력을 갖고 있었기에 일본 순정만화는 재미를 보지 못하였고 새로운 소재인 동성애 만화만이 잘 팔려 출판업자들이 너도 나도 이런 만화들을 들여왔다고 해석하였다.[3] 이후 황미나, 김혜린 등의 만화에서 조금씩 선보이기 시작하다가 박희정의 마틴 앤 존, 이정애의 열왕대전기, 소델레니 교수의 사고 수첩 등의 만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1] 1990년대 동성애 소재의 만화는 장르의 특수성과 맞물려 시민단체의 눈총을 받으면서 만화인들 내부에서까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3] 공식적인 판매망을 갖고 있지 않은 일부 만화창작인들의 회지에서는 포르노에 가까운 동성애 만화를 찾아볼 수 있기도 했다.[3] 현재는 각종 웹툰 사이트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성인용 BL만화나 소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번역되어 해외로 수출되는 작품도 있고, 그 중에는 야화첩처럼 대박을 친 작품도 있다.
세계관
BL의 배경은 동서양과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팬픽처럼 다른 작품의 배경을 차용하는 2차 창작도 많다. 동성애나 동성결혼이 아직까지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수순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남성 간의 연애 혹은 섹스의 개연성을 보다 쉽게 획득하기 위해 섹스가 필연적인 세계관이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등이 있다.
키워드
공: 삽입하는 역할. 탑.
수: 삽입당하는 역할. 바텀.
- 광공: 수에 미친 공. 일반적으로 수를 너무 사랑하거나 소유하고 싶어하며, 질투는 물론 감금이나 폭력, 살인까지 저지르곤 한다.
- 집착공·수: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공이나 수. 집착공은 주로 광공이기도 하다.
- 자낮수: 자존감이 낮은 수.
- 다공일수: 공은 여러 명이고 수는 한 명인 경우.
- 일공다수: 공은 한 명이고 수는 여러 명인 경우.
- 일공일수: 공 한 명, 수 한 명의 독점적 연애 관계.
여성들이 BL을 소비하는 이유
- BL을 보는 여성 오타쿠를 보통 부녀자(腐女子)라고 부른다. ‘썩은 여자’라는 뜻. 일본어로는 후죠시(ふじょし).
- 여성과 남성이 출현하는 기존의 이성애 로맨스물이나 포르노는 그만큼 자신의 성별로 이입하기에 더 좋다. 그러나 여성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에 나를 이입하게 되면, "여성"이라는 성별로 겪는 현실이 같이 따라들어온다. 여성으로 현실을 살아온 나는 알고 있다. 여성으로 살면 끔찍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걸. 그래서 등장인물이 여성으로 설정된 인물에 이입하게 되면 쾌락 뿐 아니라 현실의 위협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강간당하거나 일방적으로 성적으로 도구화되는 재현물을 보면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여성이라는 제 2의 성별로 강하게 사회화되며 자라온 여성들은 창작물에 여성으로 이입할 때 현실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BL의 경우 등장인물이 나와는 다른 성별로, 완전히 이입할 수 없게 제한 장치를 둠으로써 적절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다. 필요할 때는 원하는 인물에 이입하되, 위협이 될 경우 이는 절대 현실로 구현될 수 없다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여 여성은 창작물이 투사하는 공격에서 회피할 수 있다. 내가 성적으로(만) 대상이 되는 재현물과는 달리, 누군가를 대상화하며 즐거움을 느끼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BL은 기존의 포르노나 NL과 달리 매력적이다.
- BL 장르에서 캐릭터는 흔히 공과 수로 구분되고, 수는 공에 의해 삽입당하는 바텀 역할로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는 이 때 (보지가 아닌) 항문, 장기 등으로 엄청난 쾌락을 느끼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떤 BL물은 애초에 세계관 자체가 특정 집단은 예민하고 더 강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정해놓기도 한다. 이 때 여성들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기관으로 성적 쾌락을 느끼는, 미지의, 어쩌면 더 쾌락적인 섹스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는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성의 성적 쾌락이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의 섹스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 한편,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BL을 보는 남자도 있다. 이들은 부남자라고 불린다.
역담론으로써의 BL
BL은 기존의 순정만화가 꽃미남들을 등장시키면서도 여성이 로맨스를 통해 구원받는 전통적인 플롯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비해 남성들만을 등장시키면서 과감하게 여성을 시선의 주체로 삼는 일종의 역담론이다.[1]
황미나는 "남자 동성애 만화는 '여성 독자들의 성적 즐거음 찾기'라는 측면을 반영한다. 남성들의 성적 세계를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를 동물적으로만 그리고 있는 남성작가들의 만화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있다"고 말하였다.[3]
평가
BL들은 단순한 젠더의 역전만으로는 성상품화의 문제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
- 남성간의 로맨스로 바뀌었을 뿐 그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지배/피지배 방식은 그대로 유지된다.[1]
- 강간에 가까운 성관계가 이루어짐으로써 성적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지배가 그대로 반복된다(소델리니교수의 사고수첩).[1]
- 파편화되고 과장된 성적 이미지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강한 힘이 성적 대상을 지배하는 현상이 열정으로 미화되기도 한다.[1]
또한 작가들이 실제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경우는 드물고 이성애적 사랑을 남자주인공들끼리 떠맡은 경우가 많으며 모호한 표현으로 위험부담을 피해갔다는 지적도 있다.[3] 박인하는 '흥미 위주의 수준으로 동성애를 전락시킨 만화는 결국 작가들의 뒷덜미를 잡을 것'이라고 말하였다.[3]
하지만 2023년 2월을 기준으로 BL 작품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읽히고 있다. 게다가 한꺼풀 벗겨보면 (아마도 독점적 연애일) 이성애적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상기의 지적과 다르게,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는 작품도 꽤 있다. 다공일수(여러 명의 공과 한 명의 수) 작품들이 그러하다. 대부분 폴리아모리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거나, 합의의 과정이 매끄럽지도, 또 때로는 존재하지 않고, 마지막에서는 1:1 독점적 연애로 끝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과정 혹은 결론에서 인물들은 사회에서는 ‘문란하다‘고 여겨지는 퀴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BL 작품은 이성애적 문법과 포르노의 남/녀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 BL은 스토리나 관계에서 전형성이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장르다. 생물학적으로 페로몬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에게는 서로에게 강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시기인 발정기가 있으며, 오메가라면 남성도 임신이 가능한 세계관인 오메가버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작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오메가버스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짝지어주는 대신, 알파/알파, 알파/베타, 베타/알파, 베타/오메가, 오메가/베타, 베타/베타, 오메가/오메가, 그리고 오메가/알파를 공수로 짝지어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오메가버스라는 세계관을 메타적으로 슬쩍 비꼬거나 살짝 가지고 노는 작품들도 있다. 예로는 회사 내에서 연애질을 하느라 업무에 지장을 주는 오메가 상사 때문에 고생하는 베타 김주혁이 주인공인 배타적 연애금지구역이 있다. 오메가버스 세계관에는 꼭 필요할 때 발정기 억제제가 없는 클리셰가 있는데, 김주혁은 그로 인해 불시의 성관계가 일어나지 않도록 비상용 억제제를 가지고 다닌다.
물론 이런 메타적인 작품의 존재나, 전형적인 공수 구도를 단순히 반대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성상품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BL이라는 장르가 반드시 성상품화에서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 또한 성상품회는 BL만의 한계가 아니다. HL, GL 등 모든 로맨스물도 마찬가지다.
마틴 앤 존은 서로 사랑하는 두 남자와 그중 한 명의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라는 조합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구원신화도 아니고 서로를 지배하는 강간신화도 아닌, 인간관계에 대한 성도 사랑도 이룰 수 없는 갈망을 그린다.[1]
단어 뜻
- 야오이는 야마나시(주제 없음), 이미나시(의미 없음), 오치나시(완결 없음)란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