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109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7일 (화) 22:54

틀:무기 정보 메서슈미트 Bf 109나치 독일의 프롭 제공 전투기다.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에서 운용된 주력 기종으로 개전부터 종전까지 꾸준히 활약한 고성능 프롭 전투기다. 대전기 루프트바페를 상징하기도 한 전투기이며 3만대 이상이 생산돼, 전투기 중 최다 생산량을 자랑한다.

개요

Bf109는 제2차 대전기 나치 독일 루프트바페의 주력 전투기이며 이 기종으로 루프트바페는 항공전의 신화를 썼다 할 만큼 실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칭은 Bayerische Flugzeugwerke 109(바이에른 항공사 109)의 약자이며 병합당한 뒤 해당 기체가 메서슈미트 항공사로 넘어가며 비공식적으로나 일부 타국에선 Me109 라고도 호칭했다.[1] 그러나 이미 제식명이 확정된 루프트바페에선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Bf109를 유지하였다.

성능

화려한 비행 성능을 가진 기종으로 유명했던 109는 날렵한 유선형 기체와 작은 기체 외형으로 타 기종 대비 높은 추중비를 가져 고속 비행과 수직 기동에 강한 기종이었고 이 결과 상승 및 이탈이 중요한 에너지 전투에서 강자로 군림하였다.

추진 기관은 3엽 프로펠러와 이를 기동하는 1,000~1,400(+75)마력의 수냉식 항공기용 피스톤 엔진(DB 605)으로, 2,000마력에 도달하기도 했던 다른 상위급 기체들에 비해 객관적인 추력은 떨어졌지만 앞서 말한 109의 공력 특성 상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체급 대비 강력한 추력을 제공했다. 그 결과 전기 배치형인 E형의 최대 시속 550km 을 도달했고 보다 신형 엔진과 프로팰러의 면적이 증가한 후기형 G~K형에선 670km 까지 증가하며 2차 대전기의 보편 프롭 전투기 중 손꼽히는 비행 속도를 보유했었고[2] 수직 상승률은 G-6형 기준으로 17m/s 에 달했는데, 동 시기 적수였던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들과 동등하거나 근소한 우위를 달성하였다.

109의 주력은 속도와 수직기동 성능으로 선회력은 3순위에 둘 만큼 부가적인 요소로 취급했다. 이미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당시 복엽기들의 저속 선회전은 더 빠르고 더 높은 비행 성능을 추구하는 항공기의 발전 추세에는 맞지 않는 사상이었기에[3][4] 설계자 메서슈미트 박사를 비롯한 개발진들은 루프트바페의 요구대로 선회전 부분엔 많은 비중을 할해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대전기 단엽 프롭전투기 중 선회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알려진 스핏파이어와의 교전에서도 영국 조종사들은 109의 선회력이 자신들의 기종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고 평가할 만큼 의외로 괜찮은 선회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09의 비행 성능은 고도 5,000m 정도에서 최고 수치를 찍었고 저고도와 중고도에서도 날카로운 성능을 보여주었는데 본격적인 고고도 영역에선 터보 슈퍼차저를 단 기종들에게 뒤처지는 편이었다.

무장은 초기형에서 후기형 F형까지 엔진 상단에 7.92mm(MG 17)을 유지하여 대 전투기용 무장으로 애용되었다. 또한 E-3형부터 20mm 기관포(MG 151)가 양 주익에 장착되었지만 F형부터 기축에 1정이 장착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사항에 따라 7.92mm 두정 > 7.92mm 와 20mm 2정 > 7.92mm 2정과 20mm 기축 장착 순으로 변화하였고 이 구성은 최후기형인 G형에 이르러 7.92mm 가 13mm 로, K형에선 20mm 기관포가 30mm 로 증가했는데 고성능 전투기들과 폭격기 요격을 위한 화력 강화가 이유였다.

그렇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긴 했는데 바로 항속거리가 짧다는 것. 초중기형은 500km~700km, 개선된 후기형의 최대 항속거리도 850km 정도가 한계로 대개 900km 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작전반경이 도버 해엽을 넘어서자 전투에 제약이 생긴 것이며 나중에 보조 연료탱크를 보급하며 해결에 나섰으나 항공전이 종료된 뒤었다. 결국 강력한 조종 성능의 근본이었던 작은 기체가 가져온 한계라고 할 수 있으며 루프트바페는 Bf110 처럼 중(重)전투기들을 109대신 장거리 임무에 투입하였다.

내역

Bf109는 역대 가장 많은 격추 수를 달성한 항공기 중 하나로 대전기 기간 동안 2천명에 달하는 에이스를 배출하였다.

나치 독일이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면서 의용군이 명목으로 콘도르 군단이란 Bf109C 운용 부대를 투입시킨 것이 첫 실전이다.

작전중인 콘도르 군단

초기엔 직접 개입 배제 원칙에 따라[5] 수송기로 구성된 수송부대만 파견했지만 이들 수송기들이 소련제 전투기 Il-5,6 전투기들에게 위협받자 호위책으로 최신예 기종이었던 109를 파견하였고 스페인 공화군이 운용하던 소련제 전투기들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이 결정은 실전을 통한 문제점 개선과 개량형 개발을 위한 목적도 있었으며 성능 시험과 영향력 확보를 위해 내려진 판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공식적인 첫 실전이기도 한 폴란드 침공부터는 C형보다 발전된Bf109D~E형이 항공전에서 주역을 맡게 되었고 공중전에서 폴란드 공군의 전투기들을 압도하며 개전 첫 주만에 제공권을 장악하는 활약을 펼쳤다. 폴란드 전역에서 Bf109의 손실은 대부분 대공포화에 의한 것이었지만, 몇몇 초보 조종사들은 몰던 기체들은 낡은 1차 대전식의 선회전을 벌이다 저속 선회력이 우수한 구형 복엽기(P.7,11)들에게 격추되기도 하였다. 이후 덴마크와 노르웨이 전역을 거쳐 프랑스 침공에서도 적수가 없는 전투기로 군림한 Bf109는, 영불 연합군의 허리케인 Mk.1의 교전에서도 우위를 점했지만 이내 됭케르크에서 필생의 라이벌을 만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였다.

독일의 공습으로부터 영불 연합군을 엄호하였던 스핏파이어는 Bf109 못지 않은 신예기로서 호각의 격전을 벌였고 됭케르크에서의 조우는 영국 본토 항공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됭케르크 철수 작전이 완료된 뒤에도 소규모 Bf109 편대들은 10여대 안팤의 편대로 내습하는 양상을 이어가 7월 10일까지 호송전단을 공습하는 슈투카와 Bf109, 그리고 이들을 요격하려는 허리케인, 스핏파이어의 공중전이 도버 해엽에서 계속되었는데, 10일부터는 그 양상을 바꿔 70대 이상의 독일 항공기가 템스 강 어귀를 내습하면서 새로운 전투의 막이 오른다.

10일의 탐색전부터 1달 뒤인 8월 11일 까지, 도버 해엽에선 두자리 수의 항공기들이 뒤엉켰고 이 기간 동안 제공 작전을 맡은 Bf109는 110~115대에 달하는 영국 전투기[6]들을 격추시켰다. 물론 Bf109도 50여대가 격추되는 손실을 입기는 하였으나 더 많은 전투기 손실을 강요함으로써 독일 공군의 입장에선 판정승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영국 본토 폭격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Bf109에게 불리해져 갔는데, 본래 폭격기 호위를 맡은 Bf110이 영국 공군기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호위기를 Bf109로 교체하면서 본래 자유 요격을 수행했던 109들이 폭격기 밀착 호위에 묶이게 되며 강점인 상승력과 급강하 성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더욱이 폭격 범위가 영국 남부에서 내륙으로 확장되자 항속거리가 짧은 Bf109의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런던 대공습에서는 불과 채공 시간이 5~15분에 그치며 폭격기들을 목표까지 호위하고 이탈하는 방식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폭격기들의 피해가 급증했다. 이 때문에 이탈 대신 공중전에 돌입한 109들은 연료 부족으로 도버 해엽과 프랑스 해안선에 많은 수가 추락하였고 여기서 발생한 비전투 손실은 교전에서 격추된 댓수보다 많았다.

결국 루프트바페는 누적된 피해로 인해 영국 공격을 단념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600여대가 손실된 Bf109E형은 후기형들로 차차 교체되어 간다.

한편 영국 본토 항공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전선이 지중해와 아프리카로 집중되던 중반기, 루프트바페의 109들은 활동 영역을 지중해까지 확장하면서 영국 공군의 지중해 제공권을 위협하였다. 치열했던 몰타 공방전에서도 추축국의 제공기로서 활약했던 109는 북아프리카 전선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영국 공군기들을 괴롭혔다.

이 시기 북아프리카의 영국 공군은 P-40 토마호크가 주력으로 스핏파이어와 달리 109E형보다 열세인 기종이었고 영국군은 수세에 몰렸다. 비교적 떨어지는 기체를 가지고 러프베리 진영처럼 공중전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109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한계는 분명했고 이 시기 에이스 요하임 마르세이유가 몰던 겔베14(황색14호)는 영국 공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런 양상은 마침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나고 투입되는 스핏파이어에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 시점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Bf109 F형이 전선에 배치되던 시기와 겹치며 109를 상대로 한 고전을 이어졌다.

전황이 점차 불리해지는 후반부터는 점차 유럽 내부의 수세적인 방공 임무로 돌려지게 된다.

독일 본토로 날아드는 서방연합군의 항공기 대군을 상대로 요격전을 벌이는 게 주요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이 시기 배치되는 109의 무장에는 대구경 기관포가 포함되어 있었고 미군의 참전으로 폭격기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붙는 미제 전투기들이 새로운 적수로 떠올랐다.

동부전선

그 이후

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체코 생산형 Bf109(체코명 아비아 S199)로 아랍 연합군이 모는 스핏파이어 등과 중동 하늘에서 재격돌하며 2차 대전의 항공전을 재현했다.

변형

Bf109 시제기형(V형)

초기형

위 B-2형, 아래 C-1형

Bf109 최초기형(A,B,C,D)

처음으로 실전배치 및 참가 경험이 있는 기종들이나 그 비중은 크지 않았다.

E-4형

Bf109 E형(E-1~7)

전쟁 초중반 루프트바페의 주력으로 활발히 활약했던 형식이다.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점령,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까지 초기의 주요 전투에서 빠지지 않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Bf109와 루프트바페의 이미지를 확립시켰다.

Bf109 T형(함재기형)

109의 함재형으로, E형 중 E-7을 기반으로 익단을 확장하며 항모 운용을 위한 장비[7]들을 추가한 형식이다.
독일의 정규항모 그라프 체플린자이틀리츠 같은 호위항모의 함재기로 운용될 계획이었지만 바렌츠 해 해전의 패배로 크릭스마리네에 극대노한 그 총통 각하의 대형함 건조 취소 명령에 함께 나가리되었다.
해군용이지만 소속은 공군(루프트바페) 소속이었는데, 날개달린 것은 다 공군 것이라는 괴링의 어거지 때문에 해군항공대 대신 공군파견대가 창설되어 해군과 합동 작전을 할 예정이었다.

중.후기형

F-2형

Bf109 F~Z형

기수부 외형이 각없는 유선형으로 변경되고 날개 끝이 둥글게 마감되는 후기형 기체 구조의 시작으로, 기체 구조가 전면적인 재설계를 거치며 보다 매끄러운 유선형을 띠게 되었다.
미익 버팀목처럼 튀어나온 요철들을 제거하였고 엔진을 신형인 DB 601B로 교체되면서 출력이 증가했다. 거기에 기체 중량이 감소하며 결과적으로 기동성의 향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전 E형에서 간간히 장착되곤 했던 기축 15~20mm 기관포가 고정적으로 장착되기 시작했고 엔진 상단(카울링)에는 7.62mm 기관총이 주 무장으로 장착되며 주익의 무장들은 제거되었다.

Bf109 G~K형

후기형인 G~K형은 몰려드는 연합군 폭격기들에 맞서 요격기로의 특징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고고도 요격을 위해 F형보다 엔진 출력이 강화되었고 여압 기능을 갖추게 되었으며 주 무장도 7.62mm 에서 13mm 로 강화, 기축의 기관포도 K형에 이르러 30mm 로 증가한다.
또한 폭격기의 방어기총에 대비한 조종석에 방탄판이 장착되고 케노피가 방탄 유리로 교체되는 등의 개량점들로 인해 기체 중량이 증가하며 근소한 수준으로 기동성이 저하되었다.

Bf109 TL(제트기)

Me262의 실패를 대비한 쌍발 제트엔진 전투기. 262를 대신하려 했었던 만큼 구조는 bf109와 Me262의 특성이 혼합되어 있다.
262의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며 취소되긴 했으나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운용 국가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독일(나치 독일)

스위스 스위스
틀:나라자료 핀란드
체코 체코
스페인 스페인
틀:나라자료 루마니아(루마니아 왕국)
일본 일본

전후

이스라엘 이스라엘

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이 사용하였다.

스페인 스페인

자국 개량형을 1970년대까지 운용했다.

출처

  1. Bf109의 개발자인 메서슈미트 박사가 바이에른 항공사에서 독립해, 회사를 열었고 바이에른 항공사를 인수하면서 기체 소유권을 가져왔다.
  2. Ta 152 같이 시험기나 소수 양산기들은 더 빠른 속력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3. 복엽기의 특성을 이어받은 초기 단엽 전투기들이 기존 복엽기들의 비행 성능을 답습했었으나, 본격적인 2차대전형 프롭기들 중에서도 저속 선회전에 목메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기종이 바로 제로센으로(A6M, 혹은 영식함상전투기), 낡은 초기 단엽전투기와 아직 새로운 전투기들의 특성을 알지 못했던 미군 조종사들을 상대로 선전하였다. 그러나 전쟁 중반부터 새로운 항공전 교리에 적응한 미군 조종사들과 구형 기종들을 대신하는 신형기들은 제로센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리며 저속 선회전이 뒤처진 방식임을 교육해 주었다.
  4. 같은 이유로 복엽기에게 선회전을 걸다 격추당한 109도 폴란드 침공에서 종종 나왔다.
  5. 당시 유럽 국가들처럼 나치 독일스페인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피했으며 정책이 변화한 건 장갑함 도이칠란트의 피격 이후다.
  6. 허리케인, 스핏파이어 합산.
  7. 어레스팅 후크, 착륙 장치의 강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