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tee Mountain Boy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7일 (화) 08:55


개요

아일랜드의 대중가요. 패치 핼로런(Patsy Halloran)이 작사, 작곡하였다. [1] 4절은 아일랜드 가수인 크리스티 무어(Christy Moore)가 덧붙여서, 보통 4절까지 같이 부르곤 한다.

1921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광복을 맞은 아일랜드는 동양의 싱크로율 무지하게 높은 나라마찬가지로 광복 직후에 겪었던 것처럼 [2] 1922년부터 23년까지 피 터지는 내전을 겪는다. 영국과의 협상을 통한 점진적 독립을 주장하는 온건파(자유국 주의자, Free-staters)와 끝까지 무력으로 맞서 싸워 광복을 쟁취하자는 강경파 사이에서 벌어진 아일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강경파 쪽 광복군으로서 아일랜드의 강산을 돌아다니며 끝까지 광복 투쟁에 헌신한 광복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이다.

가사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온건파와 강경파는 정말 문자 그대로 피 터지게 싸웠다. 내전 결과 온건파가 승리하면서 자유국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영연방을 탈퇴한 것은 1937년에 이르러서이다.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어서 영국이 인정하지 않았기에 완전히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한 것은 1949년이고, 이마저도 남북으로 쪼개지는 바람에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동양의 모 반도 국가와 싱크로율이 100%냐 진짜 소름 돋는다

아무튼 이렇게 이상주의자 오브 이상주의자였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차마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일랜드 광복군의 투쟁 일대기와 광복에 대한 열정을 담아내고 있는 곡이다.

가사

I joined the flying column in 1916

In Cork with Sean Moylan; Tipperary with Dan Breen
Arrested by Free-Staters and sentenced for to die,
Farewell to Tipperary, said the Galtee Mountain Boy

나는 1916년에 플라잉 칼럼에 합류하였죠.
코크에서는 숀 모일란, 티퍼레리에서는 댄 브린과 함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유국 주의자들에게 체포당해 사형 선고를 받았죠.
잘 있어라, 티퍼레리. 갈티 산 청년이 말했습니다.

We crossed through pleasant valleys and over hilltops green
Where we met with Dinny Lacey, Sean Hogan, and Dan Breen,
Sean Moylan and his gallant men, who kept the flag flying high
Farewell to Tipperary, said the Galtee Mountain Boy

우리는 즐거운 골짜기를 따라, 푸른 언덕 꼭대기를 넘어 횡단을 했죠.
그곳에서 우리는 디니 레이시, 숀 호건, 댄 브린을 만났습니다.
숀 모일란과 휘하의 용감한 열사들이 깃발을 높이 들어 휘날렸죠.
잘 있어라, 티퍼레리. 갈티 산 청년이 말했습니다.

We trekked the Wicklow mountains, rebels on the run
Hunted night and morning, we were outlaws but free men
We crossed the Dublin mountains; the sun was shining high
Farewell to Tipperary, said the Galtee Mountain Boy

우리 도망치는 광복군들은 위클로 산맥을 따라 오랫동안 걸어다녔죠.
밤낮으로 쫓겨 다니면서, 우리는 도망자였지만 자유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더블린 산맥을 횡단했고; 태양은 높이서 빛나고 있었죠.
잘 있어라, 티퍼레리. 갈티 산 청년이 말했습니다.

So I'll bid farewell:
To old Clonmel, that I never more will see,
And to the Galtee Mountains that ofttimes sheltered me,
And to the men who fought for liberty and died without a sigh.
May their cause be ne'er forgotten, said the Galtee Mountain Boy.

그렇기에 나는 작별인사를 했죠:
옛 클론멜을 향해,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리고 자주 날 숨겨 주었던 갈티 산맥을 향해서도,
또한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한숨도 없이 쓰러진 애국지사들을 향해서도.

그들의 뜻이 절대로 잊히지 않기를. 갈티 산 청년이 말했습니다.

  1. 하지만 자신이 지은 곡에 대하여 저작권을 포기하고 퍼블릭 도메인으로 발표하였다.
  2. 엄밀히 말해 6.25는 내전이라 하기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