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래디컬 페미니스트들(New York Radical Feminists NYRF)'은 1900년대 뉴욕에서 생성된 래디컬 페미니즘 모임이다.

'강간 문화'의 정의

1971년 1월 24일 일요일, 맨해튼 세인트 클레먼트 성공회 교회에서 열린 최초의 ‘강간 피해 공개 발언’은 여성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었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맡길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12명이 강간 피해 경험을 증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그 자리에서 28명이 자신도 발언하겠다고 나섰다. NYRF는 이날에 이어 4월 17일 강간 피해 학회를 개최했으며, 강간을 페미니즘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이 행사를 개최한 NYRF의 목적은 명확했다. 강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반박하는 것, 강간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 피해 생존자를 돕는 것.

이때까지 강간은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일부 하층계급 남성들이 저지르는 일탈적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강간을 저지르는 이들은, 놀랍게도 일탈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인물이 아닌, 평범한 남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한 여성의 애인, 남편, 사촌, 이웃이었다. 임원이었던 수잔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는 특히 남성이 사회를 통제하고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강간을 활용한다고 주장해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또한 저서 『우리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간간(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1975)에서 강간에 대한 공포가 모든 여성의 삶을 휘두르는 권력 수단으로 활용되며 모든 남성은 소수가 저지르는 성범죄에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강간을 방관함으로써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포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단어가 ‘강간 문화(Rape Culture)’다.

이처럼 새로운 개념어를 정립하는 등 강간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헌신한 NYRF는 강간에 대한 미국 사법제도의 문제점에 관심을 높혔으며, 미국 전역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쉼터나 강간위기 센터를 설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