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11:46
피해자의 이름이 붙은 사건 이 사건에 붙은 이름은 피해자의 것입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1] [2] 장자연 사건은 희대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으로, 힘없는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이 여러 번에 걸쳐 원치 않는 성접대를 강요받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 사건이다. 장자연은 죽기 전에 흔히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로 통하는 성접대 문건을 작성하였다. 여기에는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 영화 감독 등 의 유력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사건의 시작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채로 친언니에게 발견된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1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왔던 것을 계기로 경찰은 단순 자살사건으로 분류하여 수사를 종료한다. 다음을 참고할 것 장자연 사망 사건

전 매니저 유장호와 장자연 문건

유장호의 싸이월드 글 일부.

장자연의 죽음 이틀 후인 9일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가[주 1] 싸이월드에 장자연의 죽음은 단순히 우울증에 의한 자살사건이 아니라는 글을 올린다.[3] 유장호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달 28일 자연이가 찾아와서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지고 있어달라"며 심경을 담은 기록을 전달해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인물인 것으로 전해졌다.[3] 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유장호는 문건에 대해 연예계 성상납 혹은 소속사 이적에 따른 위약금 문제냐는 질문에 그런 것 아니다며 전화를 끊었다.[4] 유장호는 이 문건을 유족들에게도 보여준다. 해당 문건은 자필로 작성된 7페이지의 문건이었으며, 앞 2장은 타연예인에 대한 내용, 뒤의 5장은 장자연이 받은 부당한 처우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 한장에는 자신에게 접대를 요청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주 2] 유족은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유 씨에게 요청했으나 유 씨는 장자연의 영결식 다음 날인 3월 10일 이 문건을 공개한다. 유족은 분노하여 유 씨에게 해당 문건의 원본을 달라고 했으나, 유 씨는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며 이 자리에서 태워버리든가 내가 도로 가져가든가 하겠다고 말해서 결국 태워버리기로 협의를 하고 문건은 3월 12일 서울의 봉은사에서 불태워진다. 유족은 문건이 재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자리를 떴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유씨의 사무실 앞 쓰레기통에서 타다만 문건이 KBS 기자에 의해 발견된다.이로 인해 해당 문건의 내용은 9시 뉴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게 된다(2009년 3월 13일).[5] 많은 사람들이 이 문건은 사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문건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대표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했는지 셀 수가 없다.
2008년 9월경 CS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 방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
몇개월 뒤에도 김대표가 CS일보 방사장의 아들인 스포츠CS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다.
김대표는 나를 방안에 가둬두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리며 욕설과 구타를 했다.
OO감독이 골프치러 갈때 술과 골프 접대를 요구받았다.술접대뿐만이 아니라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다.
수입이 적은 신인배우였지만 매니저 월급 등 모든 것을 부담하도록 강요받았다.

이후 경찰은 인력을 늘려 재수사를 하였으나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기소된 20명 중 김대표와 유씨에게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떨어진다.

재점화

이 사건은 10년 동안 묻혔다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진상조사단)의 설립과 미투 운동의 압박 등으로 인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수많은 의혹들이 다시 떠오른다. 사망 10주기를 앞두고 이후 유일한 증언자인 윤지오 씨의 등장으로 인해 수사는 재점화되는데,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며 부디 자신과 함께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윤지오가 언급한 사건의 목격자인 5명의 배우는 모두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라고 밝힌 점에서 추가 증언자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타살 의혹

윤지오는 언론에 나와 2009년 공개된 장자연의 자필 유서를 보고 보통 유서에는 주민번호와 싸인, 지장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유서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살고자 해서 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장자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였다.실제로 장자연이 작성한 "성접대 리스트"는 같은 기획사였던 배우 이미숙이 강요에 의해 작성하게 한 것으로 의혹이 제기되었는데[주 3], 장자연 사건이 재점화되자 이미숙은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 필요하다면 추가 조사도 받겠다고 말했다.다만 이후 지인의 증언에 따라 이미숙이 아닌 유 씨가 성접대 문건을 작성하게 한 것이 밝혀지면서 이미숙은 누명을 한꺼풀 벗게 되었다.

소속사 김대표

김대표는 상해죄,폭력죄 등 8건의 범죄 전력이 있으며 자신의 연예인들을 이런저런 일로 고소했던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소속된 연예인에게 임금을 미지급하거나 CF를 찍고 확보된 돈을 미지급하는 등의 의혹으로 2000년대부터 논란이 많았다.김대표는 장자연 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검찰에 검거되어 국내로 송치되었으며, 소속 연예인들에게 재떨이를 던지거나 잔을 깨기도 하고 욕설을 심하게 일삼았다는 증언이 다수 확보된 상태다. 김대표 밑에 있던 여성 배우들이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대표는 사건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소속사 건물

소속사 건물 3층은 VIP 전용 접견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샤워실도 구비되어 있었다. 추후 장자연 씨의 다이어리에서 이 접견실과 1층 와인바에서 여러 번 성접대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건물의 쓰임새가 더욱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중식당 모임건

방호텔사장, CS스포츠 사장, ㅇㅇㅇ 한국지사장 한씨, 주한 ㅇㅇㅇ대사관 윤씨, 연예인 관련 여성사업가,김대표, 광고업체 대표 한씨,장자연까지 8~9명이 모인 모임자리가 있었다. 이 날 식대는 방호텔사장이 계산했으며, 장자연은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이 자리는 간단한 소개 자리로 생각된다. 검찰과 경찰은 이 모임에서 8~9명이 있던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최종 수사결과에는 김대표, CS스포츠 사장, 장자연만 있었던 것처럼 보고했다.

세부 골프 접대 건

2008년 1월 17일 박oo회장과 장자연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세부로 골프 여행을 갔고, 3일 후인 1월 20일에도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 또한 장자연 계좌 조사를 통해 박OO회장이 장자연에게 1000만원을 지급한 사실도 확인되었다.경찰은 해당 사항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관련 증거가 없어서 더 조사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김밥을 너무 잘 싸길래 김밥 값으로 천만원을 준 것 뿐이다.의미없이 용돈쓰라고 준 것일뿐, 너무 앞서나간다.

태국 골프 접대 건

20008년 5월 10일과 5월 16일 두번에 걸쳐 김대표와 장자연이 태국으로 함께 출국한 것이 확인된다. 이후 태국의 한 골프장에서 정PD와 함께 있던 것이 확인되었으며, 장자연과 정PD는 같은 숙소에 묵었으며 나머지 일행들은 50km떨어진 숙소에서 머문 것이 확인되었다.

나는 당시 김대표가 숙소를 옮긴 줄도 몰랐고, 오히려 전화를 해서 왜 옮겼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CS일보 사장 오찬

수사가 진행될 당시 김대표 일정표에 2008년 7월 17일 'CS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적힌 글이 발견되고 이후 경찰조사 결과 당시 실제 약속은 스포츠CS사장과의 만남인 것으로 2일 전 통화 내역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김대표는 스포츠CS사장을 CS일보 사장이라고 부르고 다녔으며, 이를 비서가 그대로 받아적어 혼선이 생긴 것 같다고 경찰은 발표했다.허나 김대표는 자신은 잘못 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대표 생일잔치

현재 유일한 목격자인 윤지오는 2008년 9월 김대표의 생일파티에서 장자연이 어깨가 파인 하얀색깔 짧은치마 드레스 옷(백상예술대상 때 입었던 드레스로 추정)을 입고 테이블 위에 올라갔으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CS일보 기자 출신 정치인 조모 씨가 장자연이 2~3번 거절했는데도 계속 강제로 무릎에 앉히고 성추행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윤지오는 그런 일을 그날 처음 본 것이라 너무 충격을 받아서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언급했다.이후 조모 씨는 그런 일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청담동 유흥주점 사건

2008년 10월 28일 청담동 유흥주점에서 장자연과 여러 명이 모이게 되는데, 이들의 구성은 광고업체 대표 한 씨, 한 씨의 후배 최씨, 김 대표, 방둘째(CS일보), 장자연, 장자연의 후배 여배우가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당시 로드매니저는 김대표가 심부름을 시켜 양주 2병을 가져가니 룸에 남자와 여자가 몇명 섞여 있었고 술집 아가씨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로드매니저는 차량을 밖에 세워두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장자연이 갑자기 나오더니 누군가와 울면서 통화를 했고, "어머니 기일에도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니... 너무 속상하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이후 김대표가 00시 53분 경 술값으로 200만원을 결제한 것이 확인되었다.이 모임에 참석했던 방둘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나는 술자리에 늦게 갔다가 일찍 나왔다.장자연은 얼굴도 모른다. 이 사건은 전혀 나와 무관하다."

이에 로드매니저는 방둘째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왔으며,다른사람들이 배웅해주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 술자리 이후 김대표와 방둘째가 짧은 간격으로 여러 번 통화한 것이 확인되었는데, 항간에서는 청담동 유흥주점 관련 이야기를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통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추가적으로 김대표는 술자리 이후인 장자연에게 1시 22분에 "직원들 앞에서 말조심해"라는 문자를 보낸다.

방둘째는 이 통화에 대해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의 편집부장이 공석이라서 소개를 부탁했던 내용이었을 뿐이다."라고 추가증언한다.

방둘째 조사에 관한 논란

방둘째는 경찰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자신의 삼촌인 방호텔이 운영하는 호텔로 경찰이 직접 방문하여 총 35분간 한차례의 조사만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방둘째를 조사한 조사문에는 담당 경찰관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다.이를 보고 변호사들은 조사문에 경찰관이 이름이 아예 적혀있지 않았던 것에 대해 깊은 의혹을 품었다. 이에 일부경찰들은 "실수로 가끔 기재를 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조서내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MBC PD 수첩에서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지휘관이 당시 CS일보에서 자신들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며 애꿏은 조사를 진행하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증언도 확보되었다.이에 CS일보에서는 "경찰서를 출두하는 것 자체가 애꿏은 방둘째를 두번 죽이는 것이다.증거도 없는 억울한 수사를 방지하고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관련 언급만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장자연 통장에 송금된 돈

조사 결과 고위 인사 20여명이 장자연 계좌로 돈을 송금한 내역이 확인되었다. 모두 1억이 넘는 돈이었다. 각각은 이에 대해 다른 일로 준 것이다.용돈으로 준것이다 등으로 해명하였다.

분홍색 모토로라 폰?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자연은 사망하기 몇달 전부터 분홍색 모토로라 폰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하지만 경찰의 압수수색 증거품에는 색깔이 다른 모토로라 폰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조사내역 은폐 및 축소

예를 들어 사건관련 통화내역을 조서에 넣을 경우, 중요 통화내역만 앞페이지에 넣은 후 별첨으로 통화내역 전체를 넣어야만 한다.하지만 해당 문서에는 장자연의 통화내역 총 5만여건의 별첨은 아예 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중요 인사와의 통화내역은 모두 싹 다 빠져있는 채로 문서가 작성된 것이 확인되었다.나중에 재조사팀은 장자연이 사망하기 전 35차례나 통화를 했으나 조서에는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은 OO전자 임고문에 대해서 알아내었고 현재 추가 조사중에 있다.

소속사 싸움?

2008년 10월경 장자연의 전매니저였던 유씨는 자신이 새로운 기획사를 차려서 독립한다.이후 11월 중 김대표 소속 30대 여성 배우가 유씨 쪽으로 이적을 하고 김대표는 이 여성 배우를 이적문제로 고소한다. 이후 2009년 1월 중에 40대 여성 배우도 유씨 쪽으로 이적을 하고, 김씨는 또 이를 고소한다. 이후 2월 경 김대표는 장자연에게 골프 접대를 위해 태국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으나 장자연은 이를 거부하고, 김대표는 그 즉시 업무용 차량을 빼앗고 지원을 중단한다.화가난 장자연은 계약 파기를 요청하나 김대표는 위약금 1억원을 요구한다. 2009년 2월 중 장자연은 유씨와 접촉해 이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이후 2009년 2월 28일 장자연은 유씨가 동석한 자리에서 소위 '장자연 성접대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다. 그후 장자연은 지인과 상담하며 해당 문서를 돌려받으려고 행동을 취하기도 했으며(지인증언) ,죽기 3일 전에는 김대표에게 계약법 위반 관련으로 소송을 냈던 김배우의 연락처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정황도 확인되었다.그리고 며칠 뒤 3월 7일 경 장씨는 같이 제주도로 놀러가자는 지인에게 세상을 떠나기 약 40분 전인 3시 15분 경 거절 문자를 보낸 사실이 확인되었다.

언니 저 그냥 집에서 쉴께요~^^ 영화 다운받아서 보고 좀 집에서 뒹굴라구요 꼭 담엔 같이 가용^^~♥

이에 장자연의 사망에 대한 의견은 둘로 갈렸다.

  1. 문서를 돌려받지 못해 고민을 하다가 목숨을 끊은 것 같다
  2. 김씨의 잦은 술접대 및 성접대 요구에 못이겨 생을 마감했다.

증거 인멸 정황

재조사팀이 조사를 하기 위해 장자연 사건 관련 증거품을 열어본 결과 당시에 조사를 완료했다던 장자연의 휴대폰 3개에 대한 통화기록, 문자메시지,연락처, 컴퓨터 분석내용, 다이어리, 메모장 복사본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검찰과 법원에서 옮겨가며 관리되던 해당 자료들이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해당 자료들이 자연유실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중간에 없앤 것으로 잠정 추정된다. 이후 사건조사에 난항을 겪던 재조사팀은 당시 사건을 진행하여 맡았던 검사에게 자신이 일을 하려고 구워 가지고 있던 CD(통화기록 엑셀파일)를 받아서 겨우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허나 엑셀파일의 최근수정일자와 초기 확보된 데이터 간의 시간상 차이가 있어 원본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이다. [6]

자필편지 50여통 공개?

왕첸첸이 공개하고 장자연의 것이라고 주장한 자필편지 50통은 장자연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왕첸첸은 자신이 장자연과 친분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1999년도부터 복역한 점, 면회 기록이 없는 점으로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족의 입장

2009년 인터뷰에서 장자연의 유족은 "(자연이를 괴롭힌 사람들을)벌 준다고 해서 자연이가 살아 돌아오겠나. 자연이는 시끄러운 세상 논란이 싫어 떠났고, 우리가 조용히 그냥 보내주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고 문건 내용 반대에 대해 답하는 한편으로도 "자연이를 괴롭힌 자들에게 확실히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엄밀한 수사가 이뤄졌으면 한다. 비록 자연이는 희생됐지만, 이유야 어떻든 무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7][8]

관련 연표

  • 2007년 10월 중식당 모임
  • 2008년 1월 세부 골프 접대
  • 2008년 5월 태국 골프 접대
  • 2008년 7월 17일 CS 일보 사장 오찬
  • 2008년 9월 김대표 생일잔치
  • 2008년 10월 28일 청담동 유흥주점 사건
  • 2009년 3월 7일 장자연 사망
  • 2009년 3월 8일과 9일 유장호 미니홈피를 통해 장자연 죽음 이유에 대해 공공의 적 언급[9][10]
  • 2009년 3월 13일 유장호 참고인 자격으로 분당경찰서에 출석해 5시간 동안 조사받고 오후 4시 20분께 귀가[10]
  • 2009년 3월 16일 경찰이 장자연 문건 필적이 고인과 동일한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수사 의뢰[11]
  • 2009년 3월 17일
    • 오후 6시 50분 경 유족측이 유씨 등 3명은 명예훼손, 4명에게는 문서 내용과 관련 있는 것으로 고소.[12]
    • 경기 분당경찰서 "장씨의 휴대전화에서 6건의 통화녹음 내용을 발견해 분석중"이라며 "이는 장씨가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녹음한 것"이라고 발표.[13] "녹음된 통화 내용은 한 명이 아닌 여러 명과의 통화로, 갈등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며 "장씨가 갈등 관계의 당사자와 직접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13]
    • 서세원이 유장호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가 40분간 면담[14]
  • 2009년 3월 18일 유장호 기자회견[14]
  • 2009년 3월 26일 소속사 대표 김모씨가 유장호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 명예훼손으로 고소[15]
  • 2009년 4월 9일 유장호 3개 언론사와 4인의 기자를 상대로 허위보도에 따른 명예훼손을 이유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를 제기[16]
  • 2009년 미디어운동본부 故 장자연 사건 대응을 위한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연대활동
  • 2010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개소[17]
  • 2011년 미디어운동본부 ‘故 장자연 사건 시민법정-분노의 목소리’ 개최
  • 2019년 13번째 증언 출간

기타

부연 설명

  1. 당시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 지금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2. 문건과 관련한 내용은 유족과 윤지오의 증언을 취합한 것이며 윤지오는 대표의 호출을 받고 해당 문건을 본 적 있다고 진술했다.
  3. 이미숙은 기획사와의 분쟁에 이 문건을 이용하려 했다고 한다

출처

  1. https://www.youtube.com/watch?v=wXI3hxX9oZk
  2. https://www.youtube.com/watch?v=j44rRdDAsOw
  3. 3.0 3.1 “장자연 전 매니저 "연예계는 왜 죽었는지 안다…단 한명의 공공의 적과 싸우다". 《조선일보》. 2009년 3월 9일. 
  4. 윤고은 기자 (2009년 3월 10일). “<탤런트 장자연 자살 배경 놓고 논란>(종합)”. 《연합뉴스》. 
  5. “고 장자연, "성 접대 강요 받았다". 《조선닷컴》. 2009년 3월 13일. 
  6. 이진희. “[단독] 장자연 사망 전 1년치 통화 기록 사라졌다”. 《한국일보》. 2022년 3월 7일에 확인함. 
  7. 송원섭 기자 (2009년 3월 15일). “[유족 단독 인터뷰 ①] “자연이는 매니저 싸움의 희생양””. 《일간스포츠》. 
  8. 송원섭 기자 (2009년 3월 15일). “[유족 단독 인터뷰 ④] “법이 못 밝혀도 세상은 누가 나쁜지 알것””. 《일간스포츠》. 
  9. 김성의 기자 (2009년 4월 27일). “장자연 사망 한달, 지난 1개월동안 어떤 일이?”. 《중앙일보》. 
  10. 10.0 10.1 홍정인 (2009년 3월 13일). “장자연 前 매니저 참고인 자격 5시간여 경찰조사”. 《서울투데이》. 
  11. 이현우 기자 (2009년 3월 16일). “경찰 "故장자연 사망전 갈등관계 있었다". 《매일경제》. 
  12. 진향희 기자 (2009년 3월 18일). “故장자연 유족 고소, 문건 관련 4명은 누구?”. 《매일경제》. 
  13. 13.0 13.1 성남/김기성 김성환 기자 (2009년 3월 17일). “장자연씨 자살동기 휴대폰이 말해줄까”. 《한겨레》. 
  14. 14.0 14.1 “서세원, 왜 장자연 전 매니저 만났나”. 《한겨레》. 2009년 3월 18일. 
  15. “고 장자연 소속사 대표, 유장호씨 명예훼손으로 고소”. 《조선일보》. 2009년 3월 26일. 
  16. 김환 기자 (2009년 4월 9일). “유장호씨 "허위보도 언론사에 명예훼손 소송 제기". 《오마이뉴스》. 
  17. http://www.womenlink.or.kr/affiliates/women_humanrights
  18. 디지털뉴스 (2009년 3월 17일). “김생민 "故장자연, 정말 죽음이죠" 멘트 논란”.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