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 알 가일라니

최근 편집: 2026년 8월 21일 (금) 12:51

라미아 알 가일라니(영어: Lamia Al-Gailani Werr, 아랍어: لمياء الكيلاني)는 이라크의 선구적인 여성 고고학자이자 메소포타미아 문명 연구의 권위자이다. 해외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최초의 이라크 여성 중 한 명으로, 이라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1]

생애

1938년 3월 8일 이라크에서 태어났다. 바그다드 대학에서 고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고향에 남아 결혼하고 정착하기를 바랐던 가족의 뜻을 거스르고,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편입하여 해외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최초의 이라크 여성이 되었다. 졸업 후 1961년 이라크로 돌아와 거트루드 벨(Gertrude Bell)이 설립한 바그다드 고대유물박물관(1966년 '이라크 박물관'으로 명칭 변경)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로서 그녀가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박물관이 소장한 메소포타미아 원통형 인장(cylinder seals)의 점토 인상을 뜨는 일이었는데, 이는 훗날 그녀의 평생에 걸친 관심사가 되었다. 이 시기에 라미아는 당시 보기 드문 여성 고고학 발굴 책임자로서 '텔 에드-디바이(Tell edh-Dhiba’i)' 유적지 발굴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60년대 이라크에서 여성 고고학자로 일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고고학자로서 나는 현장 발굴에 나서고 싶었지만, 보수적인 이라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점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여성 최초로 이 일에 도전하는 만큼, 나는 당국을 설득해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물국장이었던 타하 바키르(Taha Baqir)는 자신의 진보적인 방침에 따라, 바그다드 인근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수행한다는 조건하에 내가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가족들도 이 결정을 반겼는데, 이는 내가 계속 집에서 지낼 수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Curtis 2019, 4)"

라미아는 1970년대에 영국으로 돌아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이후 당시 런던 대학교 산하 기관이었던 고고학 연구소(Institute of Archaeology)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이라크 여성으로, 바바라 파커-말로완(Barbara Parker-Mallowan)의 지도하에 작성한 ‘고대 바빌로니아 원통형 인장(cylinder seals)의 편년 및 지역적 양식’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은 메소포타미아 원통형 인장 및 인장 조각(glyptic) 양식 연구의 초석이 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도 영국에 머문 라미아는 런던 대학교 동양·아프리카 연구학원(SOAS)의 근·중동 언어문화학과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이라크를 자주 방문하며,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 있던 이라크 고고학자들과 영국 고고학자들을 잇는 핵심적인 가교 역할을 했다. 그녀의 연구는 주로 메소포타미아 원통형 인장에 집중되었으며, 에디스 포라다(Edith Porada), 바바라 파커-말로완, 도미니크 콜론(Dominique Collon) 등 해당 분야의 다른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했다. 또한 그녀는 1999년에 아랍어로 집필된 저서 《최초의 아랍인들(The First Arabs)》을 공동 집필했는데, 이 책은 6세기부터 9세기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랍 문화의 고고학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딸에 따르면, 라미아는 이라크를 방문할 때마다 이 책을 가져가 이라크 지적 활동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무타나비 거리(Mutanabbi Street)의 판매상을 통해 책을 판매하곤 했다.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과 그에 따른 이라크 박물관 약탈 사태 이후, 라미아는 도난당한 유물을 회수하고 피해 상황을 파악 및 복구하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라크 내 문화유산과 박물관 파괴를 강력히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으며, 이후 활동의 상당 부분을 고대 유물의 보존과 보호에 집중했다. 또한 이라크 문화부의 자문역으로도 활동했는데, 특히 이라크 고고학계와 영어권 학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국제적인 노력을 결집시켰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도난 유물의 3분의 1을 회수하고 2015년 이라크 박물관을 재개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라미아는 바스라 박물관(Basrah Museum)의 설립과 발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전시용 원통형 인장을 직접 선별했으며, 딸인 누라 알-가일라니(Dr. Noorah Al-Gailani) 박사와 함께 박물관 직원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2009년, 라미아는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에 대한 탁월한 공헌"을 인정받아 영국 이라크 연구소(British Institute for the Study of Iraq)로부터 거트루드 벨 기념 금메달(Gertrude Bell Memorial Gold Medal)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녀는 이 메달의 다섯 번째 수상자이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이 영예를 안은 인물이었다. 이후 그녀는 UCL 고고학 연구소(UCL Institute of Archaeology)의 명예 연구원(Honorary Research Associate)으로 활동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객원 연구원(visiting fellow)을 역임했다.

라미아는 2019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녀는 요르단 암만에서 이라크 큐레이터들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타계 당시 그녀는 이라크 박물관(Iraq Museum)의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었다.

업적

전쟁 전 유적지와 박물관이 약탈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3년 이라크 박물관이 약탈당했을 때 당시의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잃어버린 작품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박물관과 문화유산 공간의 직원들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BISI 회장, 이란 헤리티지 재단 CEO, 이전에 대영 박물관 중동 컬렉션 관리관 존 커티스(John Curtis) 박사에 따르면 그녀는 이라크와 서방 사이의 "다리"로 간주되었다. 그녀의 노력으로 그녀는 2009년에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에 대한 뛰어난 공로"로 거트루드 벨 기념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