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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0년 3월 14일 (토) 03:06

예술에서 남자다움과 남성 우위

제1차 세계대전 전의 10년간 유럽의 많은 사조는 ‘남성적’이고 힘차며 억제되어 있지 않은 화가의 성욕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예컨대 <a href="/dok/포비즘">포비즘</a>, <a href="/dok/큐비즘">큐비즘</a>, 독일의 <a href="/dok/표현주의">표현주의</a> 등으로부터 만들어진 수백의 여성이나 누드화가 그러하다. 이들은 자주 여성을 무기력하며 성적으로 복종되어 있는 상태로 묘사한다. 화가는 여성을 그와 같이 그림으로써 설령 화가 본인이 화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성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남성다움’과 성적 우위에 대한 주장은 특히 위에 언급된 제1차 세계대전 전의 10년 간 강력하고 빈번하게 나타나, 이후의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1]

19세기 후기

이 시기 유럽의 고급문화는 여남관계를 인간 존재의 중심문제로 다루게 되었다. 당시 미술은 사랑의 특질과 성적 욕망의 성질에 관심을 기울였다. 비교적 진보적인 문학과 연극이 여성의 소리를 표현하고 있던 것에 비해, 전위적인 회화는 거의 계속해서 남성의 영역이었다. 귀스타브 모로, 폴 고갱, 에드바르드 뭉크 등 대표적인 남성 화가들의 그림에서 인간의 고뇌는 오직 남성의 고뇌, 요컨대 여성 묹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즉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회화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1]

상징주의는 억제된 색채, 나른한 리듬, 내성적인 예술가 타입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보통 실재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하나 혹은 두 개의 보편적인 여성의 타입을 묘사했다. 상징주의에서 여성은 ‘치명적인’ 존재였으며 남성보다 ‘자연에 가깝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이브와 살로메, 스핑크스, 성모 마리아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1]

20세기

1905년 포브와 브뤼케로 대표되는 남성 화가들은 젊음과 건강의 예찬자였다. 그들은 현란한 색채, 산이나 태양의 빛남, 나체의 소녀 등 자신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그리고자 했다. 즉 세상의 사물에 대한 묘사보다도 자신들의 감정, 감각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은 상징주의와 같이 남성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삶>을 파악했다. 이들은 특히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구속과 맞서 싸우는 중산 계급 남성의 입장을 대표하고는 했다. 크고 시원스러운 붓질과 강렬하고 생생하며 산뜻하지 못한 색채 등이 이들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들은 성적·관능적 체험에 대한 반응을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화가는 모델의 바로 위에서 접근하고, 얼굴·가슴 그리고 극단적으로 화가 쪽으로 뒤튼 허리로 주의를 기울인다. 야단스러운 얼굴의 샞고는 태고의 바디페인트와 근대의 화장 양쪽을 암시한다. 이들의 색채는 이국적이며 원시적이고 동양적이다.[1]

예컨대, 케사 반 동겐의 <누워 있는 누드>(1905-06)는 여성을 완전히 동물적 육체로 환원시킨다. 얼굴이 없는 몸의 사지는 축 늘어져 있고, 손과 발 끝은 불명료하여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화가의 눈은 메일게이즈로서, 간단히 말해 성행위와 연관 없는 것은 모두 여과당해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1890년대 뭉크의 <VAMPYR>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대조에 가깝다. <VAMPYR>에서 흡혈귀로서의 여성은, 희생자인 남성이나 보고 있는 자에게 달려드는 듯하고 보는 자를 사로잡을 듯한 눈길로 응시한다. 여성의 ‘매력’에 빠진 남성(화가)은 수동적이며 무력한 채, 다만 공포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1]

그러나 키르히너나 반 동겐의 누드에서는 화가가 이 관계를 역전시킨다. 육체로 환원된 여성은 남성 앞에서 힘없이 늘어져 누워있으며, 여성의 몸은 남성의 성적 의지가 명하는 대로 비틀어져 있다. 남성을 초라하게 만드는 <VAMPYR>와 대조되는 순종적인 동물인 것이다. 뭉크의 <VAMPYR>와 <누워 있는 누드(1905)>는 이러한 역전성을 명실히 드러낸다. 화가는 자기 자신의 성적 의지를 관철하고자 여성의 인간성을 모두 무시했다. 요컨대 화가의 성적 지배라는 주장이야말로 이들 그림이 의미하고 있는 대부분이다.[1]

요컨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남성 화가들의 작품은 여성이 오로지 육체적인 물체로 강제적으로 환원당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인간성이 부정되고 있다.

큐비즘에서의 여성 누드

피카소는 <만돌린의 소녀>를 제작하던 시기 초상으로는 여성 이미지를 거의 만들고 있지 않다. 초상 형식은 오직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바꾸어 말한다면, 여성은 나체로 표현되거나, 혹은 거의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추상화되어 표현되든가, 모두 전형화(타자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볼라르>가 힘을 지닌 개인이자 당차고 당당한 존재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 비해, <마졸리(나의 귀여운 여자)>에서는 인물의 젠더와 역할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고 여성의 특성 또한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초상화의 형식이라면 마땅히 표현될 일 대 일의 인간으로서의 접촉의 존귀함도 표현되지 않았다.[1]

<span id="<아비뇽의_처녀들>"><아비뇽의 처녀들>

1904년에서 1914년에 이르기까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6-7)>만큼 여남의 이분법이나 이를 바탕으로 남성이 겪는 모순된 감정을 교묘하게 표현한 작품은 없다. 피카소는 여성의 양면성을 만들어내는 무섭고도 너무나도 매력적이기도 한 짐승을 끄집어내고 있다. 아가씨들은 창부이고 신이며, 퇴폐적이면서도 야성적이기도 하며, 사람을 유혹해서는 차버리고, 황공스러워하면서 동시에 음란하며, 크게 덮쳐 누르듯이 나타나는가 움츠러들고, 가면을 쓰고 있는 것과 동시에 벌거숭이이며, 위협적이면서도 무력하다. 이 정글과 같은 ‘창부집’에서는 남성 앞에서 스스로를 숨기고 혹은 노출시켜 보이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여성성의 여러 모습이 모두 나타난다.[1]

피카소의 이 작품은 서구 역사에서 “여성=자연”이라는 환영의 역사를, 이집트나 고대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그 역사적 원초인 아가씨들을 추적하고 재현함으로써 그 동일성을 명백히 한다. 태곳적 미술에서 여성은 이같이 반인간이며 또한 초인간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훗날의 많은 작품은 이 원초적인 어머니─창부─를 불러 깨운다. 그러나 근대 작품에서 이만큼이나 견고하게 성본능적이며 비인간적인 주의를 그 근저에 깔고 있는 작품은 없다. 또한 남성의 여성억압을 이만큼이나 강하고 깊게 정통화시켜 상찬한 작품도 없었다.[1]

그들은 여성의 <a href="/dok/타자성">타자성</a>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가장 높은 차원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남성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온갖 예술적 힘으로 호소하면서 주장했다. 더구나 피카소와 함께 이러한 작품들은 그것을 근대적인 형태 속에서 순수한 요소에까지 세련되게 하고 증류시키고 영원화시켰다. 이 시대의 누드는, 온갖 미술에의 의미 깊은 중대한 내용이 남성의 성적 에네르기라는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착각을 보여준다.[1]

각주

  1. 노마 부르드 저, 호승희 역, 『미술과 페미니즘』(동문선,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