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한남재기해의 토론 주제

해당 출처들은 모두 삼국유사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일종의 설화집으로서 그 내용의 신빙성은 일일이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선덕왕에 대한 다른 문헌인 삼국사기 자료를 한 번 봅시다. 원본은 여기서 확인 가능합니다.

王欲遜位 群臣三上表諫 乃止

위의 문장은 ‘임금이 왕위에서 물러나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글월을 올려 이에 그만두었다’라는 내용입니다.

寡人本惟菲薄 無心大寶 難逃推戴 作其卽位

또한 위의 문장은 ‘과인은 본디 박하여 임금 자리에 마음이 없었다. 추대를 면하기 어려워 그에 즉위에 이르렀다’라는 내용입니다.

두 내용 모두 ‘삼국사기 제9권 신라본기 제9 선덕왕’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만일 신라가 여성혐오적인 나라였다면, 여성인 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데 3번씩이나 상소를 써서까지 이를 막았겠으며, 그 이전에 왕으로 추대나 했겠습니까? 참고로 선덕왕은 진평왕의 장녀였습니다. 아들은 없었으나 외손자로 김춘추(이후의 무열왕)이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덕왕은 즉위를 했습니다. 물론, 김춘추는 성골이 아닌 진골이었으나 여성혐오가 잔존했다면 진골이라 할지라도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지 않았겠습니까? 더욱이 당시 왕의 이름을 표기함에 있어서 남성 임금이든 여성임금이든 동일하게 王이라 칭했다는 점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