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최근 편집: 2019년 4월 24일 (수) 21:07
낙엽1124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4월 24일 (수) 21:07 판

초안/원본/사본 작성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2009년 3월 26일 오전 브리핑에서 '유장호가 원본을 작성하기 전 7~8장 초안을 작성했었다고 한다'며 '글씨를 알아올 수 없고, 실명을 거론하는 게 합당치 않은 것 같아 다시 작성했다는 것이 유씨의 주장이다'고 밝혔다.[1] 또 "유씨는 '4부 정도 복사한 것 같지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1] "유씨가 초안과 복사본은 찢거나 불에 태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며 KBS에서 입수한 문건은 유씨가 쓰레기통에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1]

작성 이유

유장호는 문건 작성 이유에 대해 "장씨가 고민을 의뢰하고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 문건을 작성하게 됐다"고 주장했다.[1]

목격자

문건은 유장호 본인과 유족 2명, 코디, 기자 3명 등 총 7명에게 보여졌다는 게 유장호의 진술이다.[1] 기자 3명에게 문건을 보여준 것에 대해 "문건 유무에 대한 논란을 풀어주기 위해 사무실에서 보여줬고, 장씨의 서명이 있는 일부분만 보여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1]

일지

다음은 중앙일보가 2009년 4월 한 정리이다.[2]

  • 2월 28일: 장자연 문건 작성해 유장호에게 전달.[2] 장자연의 절친한 언니 A씨 집에서 유씨와 함께 문건 작성 사실 알림.[2]
  • 3월 8일: 유장호, 장자연 오빠에게 문서 사본 보여줘.[2] 장자연 오빠는 원본 요구하며 돌려보내. 유장호 문서 존재 처음으로 언급.[2]
  • 3월 9일: 유장호 미니홈피를 통해 장자연 죽음 이유에 대해 공공의 적 언급[2]
  • 3월 10일: 유장호, 일부 언론사에 문서 일부 공개[2]
  • 3월 11일: 장자연 유족, 경호원 대동하고 장자연 집 찾아온 유장호 만남.[2] 유가족은 원본 받기로 하고 헤어짐.[2]
  • 3월 12일: 유장호, 서울 봉은사에서 장자연 오빠에게 문서 원본 전달.[2] 원본 및 사본 함께 소각.[2]
  • (하략)

기타

  • 팩스 논란: 장씨가 사망 전 어디론가 팩스를 보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경찰은 "어제 확인한 결과 3월 2일 장씨는 출연료 문제로 소속사에 팩스를 보냈고, 다음날인 3일엔 주민등록증 신청을 위해 신청서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1]

출처

  1. 1.0 1.1 1.2 1.3 1.4 1.5 1.6 김환 (2009년 3월 26일). “유장호 "장자연 문건 7명이 봤다". 《오마이뉴스》.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김성의 기자 (2009년 4월 27일). “장자연 사망 한달, 지난 1개월동안 어떤 일이?”.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