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최근 편집: 2019년 4월 25일 (목) 19:55
낙엽1124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4월 25일 (목) 19:55 판 (→‎일지: 문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 장자연 사건(142325판)로 옮깁니다)
문건이 여러 종류임 "장자연 문건" 혹은 "장자연의 심경고백글"은 ①2009년 3월 10일 장자연의 지인 A가 조선일보에 보여준 문건과 ②유장호가 갖고 있다가 몇 언론사에 보여준 문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유장호는 동일한 글인지에 대한 확인에 "심경고백글에 대한 공개 여부는 전적으로 유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심경고백글과 같은 내용인지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내가 할 수 없다"고 밝혔고,[1] 이하 서술에서는 별도 표시가 없는 문건은 유장호와 관련된 것으로 합니다.

작성 이유

유장호는 문건 작성 이유에 대해 "장씨가 고민을 의뢰하고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 문건을 작성하게 됐다"고 주장했다.[2]

초안/원본/사본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2009년 3월 26일 오전 브리핑에서 '유장호가 원본을 작성하기 전 7~8장 초안을 작성했었다고 한다'며 '글씨를 알아볼 수 없고, 실명을 거론하는 게 합당치 않은 것 같아 다시 작성했다는 것이 유씨의 주장이다'고 밝혔다.[2]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에 따르면 "유씨는 '4부 정도 복사한 것 같지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말했으며 "유씨가 초안과 복사본은 찢거나 불에 태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며 KBS에서 입수한 문건(후술되겠지만 2009년 3월 13일 KBS 1TV 9시 뉴스가 불에 탄 것처럼 보이는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은 유씨가 쓰레기통에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2]

형태

유장호가 갖고 있던 문건

노컷뉴스의 서명 부분 보도 사진.

6장의 자필로 쓴 종이.[3] 혹은 12장 분량.[1] 맨 마지막에 "09.2.28"이라고 쓴 날짜와 자신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사인까지 했다.[1] 또한 자신의 이름 위에는 지장까지 찍었다.[1] 간인(함께 묶인 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서 도장을 찍음)까지 했다.[1]

지인 A씨가 2009년 3월 10일 조선일보에 공개한 장문의 문건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2.28'라는 글이 적혀있었고, 장자연의 주민등록번호‘800125-2******’와 함께 페이지 마다 지장이 찍혀 있었다.[3] 장자연의 지인은 "연예인이 된 후 얽힌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이 소상히 기술돼 있지만 원치 않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다 보여줄 순 없다"고 했다.[3]

목격자

문건은 유장호 본인과 유족 2명, 코디, 기자 3명 등 총 7명에게 보여졌다는 게 유장호의 진술이다.[2] 기자 3명에게 문건을 보여준 것에 대해 "문건 유무에 대한 논란을 풀어주기 위해 사무실에서 보여줬고, 장씨의 서명이 있는 일부분만 보여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2]

서명이 있는 일부분의 보도 :

일지

  • 2월 28일: 장자연 문건 작성해 유장호에게 전달.[4] 장자연의 절친한 언니 A씨 집에서 유씨와 함께 문건 작성 사실 알림.[4]
  • 3월 8일: 유장호, 장자연 오빠에게 문서 사본 보여줘.[4] 장자연 오빠는 원본 요구하며 돌려보내. 유장호 문서 존재 처음으로 언급.[4]
  • 3월 9일 새벽: 유장호 조선일보와 만나 문건 일부를 공개.[3]
  • 3월 10일: 유장호, 일부 언론사에 문서 일부 공개[4]
  • 3월 11일: 장자연 유족, 경호원 대동하고 장자연 집 찾아온 유장호 만남.[4] 유가족은 원본 받기로 하고 헤어짐.[4]
  • 3월 12일: 유장호, 서울 봉은사에서 장자연 오빠에게 문서 원본 전달.[4] 원본 및 사본 함께 소각.[4]
  • 3월 13일: KBS 1TV 9시 뉴스에서 일부 문서 공개[5]
  • (하략)

기타

  • 팩스 논란: 장씨가 사망 전 어디론가 팩스를 보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경찰은 "어제 확인한 결과 3월 2일 장씨는 출연료 문제로 소속사에 팩스를 보냈고, 다음날인 3일엔 주민등록증 신청을 위해 신청서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2]

출처

  1. 1.0 1.1 1.2 1.3 1.4 김대오 기자; 이지현 기자 (2009년 3월 10일). “故 장자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심경고백”. 《노컷뉴스》. 
  2. 2.0 2.1 2.2 2.3 2.4 2.5 김환 (2009년 3월 26일). “유장호 "장자연 문건 7명이 봤다". 《오마이뉴스》. 
  3. 3.0 3.1 3.2 3.3 강영수 기자 (2009년 3월 10일). “장자연은 왜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나…죽음 원인·배경 의혹 증폭”. 《조선일보》. 
  4. 4.0 4.1 4.2 4.3 4.4 4.5 4.6 4.7 4.8 김성의 기자 (2009년 4월 27일). “장자연 사망 한달, 지난 1개월동안 어떤 일이?”. 《중앙일보》. 
  5. “고 장자연, "성 접대 강요 받았다". 《조선일보》. 2009년 3월 13일.